자운영이 지붕 위로 올라간 까닭은? 나는 초가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밑에서 오빠들의 등을 넘고 어깨를 넘어 살금살금 기어올라가 주황색으로 익은 호박을 따서 밑으로 굴려주었지요 시간이 더 지나면 하얀 박을 땄습니다 지붕은 계절의 풍상을 모두 이겨낸 뒤라서 우리 집에서 제일 가벼운 막내인 내가 올라가는대도 발이 푹푹 빠져 .. 자운영의 일상/자운영의 흔적 2009.10.14
이삭줍기와 추어탕 밀레의 이삭줍기 그림이 떠오르시나요? 그런 낭만적인 이삭줍기가 아니라 한톨의 낟알이라도 아쉬웠던 궁핍의 시절 보리수확 후 땡볕에서 고개가 댕강 잘린 보리를 한바구니 줍고, 벼 수확 후에도 시들어가는 풀빛만큼의 벼이삭을 주우러 논을 헤맸고 그나마 고구마를 캐고 난 뒤의 이삭줍기는 그 양.. 자운영의 일상/자운영의 흔적 2009.10.14
맛 있었을까? 맛있었을까? 요즘은 시골도 입식 부엌에 수세식 화장실. 거기까지는 아니어도 많이 깨끗해졌다. 우리 집은 한 때는 돼지우리와 화장실이 겸용이었다. 식구가 용변 보러 가는 기척이라도 나면 돼지가 입을 크게 벌리고 꿀꿀거리니 어린 마음에 얼마나 겁이 나겠는가? 그래서 화장실에 갈 때마다 막대기.. 자운영의 일상/자운영의 흔적 2009.10.14
진도 예찬 "아아, 그 보배로운 섬 단 하루라도 진도의 길을 터벅터벅 걸어본 이라면 어찌 그 영혼을 사랑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 것인가? 단 하룻밤 별 쏟아지는 진도의 밤하늘을 바라본 이라면 어찌 그 맑고 허허롭기 그지없는 사람들의 눈빛과 소리가락과 바람과 들꽃들의 깊은 영혼에 데지 않을 수 있단 말인.. 자운영의 일상/자운영의 흔적 2009.10.14
지은이와 경환이 ~~~~~~~~ 지은이와 경환이~~~~~~~ 작년에 1학년을 맡을 때 일입니다 교실 환경정리를 하려고 친구를 칭찬하는 글을 쓰라고 했더니 경환이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나는 지은이를 죽도록 사랑합니다." 어떻게 꼬맹이가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는지 어이없기도 하고 내가 1학년때 아니 그보다 더 커서도 사랑이.. 자운영의 일상/자운영의 흔적 2009.10.14
빨래하는 여자 이번 여름 휴가 때 고향에 3박4일로 다녀왔다. 그 중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은 빨래했던 일. 이곳에선 손빨래조차 힘들어 세탁기에 몽땅 넣고 돌려버려 상한 옷이 한 두벌이 아니고 그것조차 하기가 싫다. 그런데 고향에선 매일 아니 빨래가 생길 때마다 세탁기가 있는데도 손빨래를 했다. 수건과 속옷은 .. 자운영의 일상/자운영의 흔적 2009.10.13
기생충 박멸 ******기생충 박멸****** 사실 이런 징그러운 얘기는 쓰고 싶지 않지만 내 기억의 언저리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으니 이것마저 잊혀지기 전에 (치매라도 오면 어쩔 것인가?) 기록해 둬야겠다. 나의 약점은 기록은 잘 하는데 보관은 못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 때까지 일.. 자운영의 일상/자운영의 흔적 2009.10.13
모세미 앞바다의 가을 이팔청춘의 이맘때쯤이면 난 불면의 밤을 즐겼습니다. 이른 시각에 산 그림자가 집을 검게 덮고 낮과 밤이 교차되는 그 시간이 지나면 (서양에서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하더군요) 뒷밭에서 바람에 서걱이는 옥수수 잎들 앞다투어 짝을 찾는 풀벌레들의 울음소리 까만 밤의 별들은 날씨가 차가울수.. 자운영의 일상/자운영의 흔적 2009.10.13
태풍이 오면 난 울었다. 태풍이 오거나 폭우가 내리거나하면 제일 문제가 정제(부엌)였다. 바닥은 흙바닥이지 아궁이에서는 물이 나오지 이맘때 쯤이면 가을철에 해 놓았던 마른 땔감은 이미 바닥나 있지 아궁이에 가득찬 물을 바가지로 퍼내고 생솔가지로 불을 때서 밥을 지었다. 내가 제일 하기 싫은 일 중에 하나가 바로 .. 자운영의 일상/자운영의 흔적 2009.10.13
울 엄니 머릿카락 항상 추억의 제1순위는 어머니다. 오일장에 가시기 전날 어머니는 항상 가위를 들고 나를 부르셨다. 머리숱이 제법 많으셨던 어머니는 군데군데 손가락의 굵기만큼 머리를 솎아내라고 나를 부르신게다. 내가 빼꼭히 돋아난 배추나 무, 서숙을 솎듯 어머니의 칠흑빛 검은 머리끝을 솎아서 자르면 물로 .. 자운영의 일상/자운영의 흔적 2009.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