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청춘의 이맘때쯤이면
난 불면의 밤을 즐겼습니다.
이른 시각에 산 그림자가 집을 검게 덮고
낮과 밤이 교차되는 그 시간이 지나면
(서양에서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하더군요)
뒷밭에서 바람에 서걱이는 옥수수 잎들
앞다투어 짝을 찾는 풀벌레들의 울음소리
까만 밤의 별들은 날씨가 차가울수록 더욱 가까이 오고
작은 소리에도 민감했던 난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10권 이상으로 된 일본작가의 전집을 읽거나
일기를 쓰거나 누군가에게
장문의 편지를 쓰곤 했습니다.
집집마다 불빛은 모두 사위어가고
멀리서 한 두 번의 개 짖는 소리가 들릴 무렵
보름달이라도 떠 있으면
마당 앞의 큰 나무가 그림자가 되어
내 침실 가까이와 나를 엿보곤 하였습니다.
멀리서 파도소리가 나를 유혹합니다.
논 몇 마지기와 소나무 숲 앞에 바다가 있습니다
나는 참지 못했습니다.
바닷가로 달려나가 모래사장을 걸었습니다.
달빛이 사선으로 내려와
은빛으로 변한 잔잔한 파도가
작은 모래알들을 애무합니다
바다 빼곤 주위의 산들은
검은 천을 두른 귀신처럼 무서웠을 텐데
그땐 무서움이 없었고
오히려 엄마의 포근한 품속 같았습니다
어쩔 땐 새벽에 나가 걷곤 하였습니다.
스물 세 해 동안 8할의 바람이
미당 서정주님을 키웠다던데
스물 세 해 동안 아니, 결혼하기 전까지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다였습니다
그 바다에서 미래의 꿈을 키웠고
감성을 살찌웠으며
또 삶의 터전이기도 했으니까요
지금은 김양식, 전복 양식등으로
아름다웠던 바다는 상처를 입고
일년에 두 번 찾아가는 나에게
바다의 신음 소리만 애닯게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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