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가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밑에서 오빠들의 등을 넘고 어깨를 넘어
살금살금 기어올라가
주황색으로 익은 호박을 따서 밑으로 굴려주었지요
시간이 더 지나면 하얀 박을 땄습니다
지붕은 계절의 풍상을 모두 이겨낸 뒤라서
우리 집에서 제일 가벼운 막내인 내가
올라가는대도 발이 푹푹 빠져
금방 떨어질 것 같아 무서웠습니다
추수가 끝나고 짚을 이용해 하는일 중에서
내가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새끼 꼬는 일
여자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나봅니다
가는 새끼줄에서부터 굵은 것까지
수없이 두 손을 비벼가며 긴 새끼줄을 꼬았습니다.
어른들은 그 새끼줄로
멍석이나 곡식을 넣어 나르는 메꼬리?
소꼴 베러 다닐 때 쓰는 망태 등을 만들었구요.
용마루에 얹는 용구새까지는 못했지만
마람(이엉)이라고 그것도 제법 잘 엮었습니다.
썩어서 까맣게 변한 마람을 거둬내고
새것으로 리모델링하고 난 뒤
마을 뒷산에 올라가 보면
어떻게나 마을이 정갈하고 아담한지요?
새마을 운동이 농촌 구석구석까지
울려퍼지면서 울긋불긋 새빨강, 초록색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어 초가집 특유의
아담한 곡선은 없어지고
정체불명의 집들이 동네를 변화시켰습니다.
어렸을 땐 멋모르고 매년 갈아줄 필요도 없고
마냥 원색이 좋았지만
건강 측면에서나 미적으로 볼 땐
초가집만 하오리까?
특히 겨울엔 지스레미 밑으로
메달린 고드름은 일품이지요.
볏짚은 속이 비었기 때문에
그 안의 공기가 여름철에는
내리쬐는 햇빛을 감소시키고
겨울철에는 집안의 온기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지요.
또한 짚 자체가 지닌 성질 때문에 따뜻하고
부드럽고, 푸근한 느낌을 줍니다
내가 만약 회색 도시를 버리고
연어가 회귀하듯 내가 태어난 근원 가까이 간다면
벽은 흙으로 짓고 지붕은 볏짚으로
매년 새집 장만하는 것처럼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호박넝쿨, 박넝쿨도 올리면서요
마당엔 야생화를 심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