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ilk Road

Chapter 17. 문을 닫으며 또 다른 문앞을 서성이다.

올레리나J 2013. 9. 22. 05:54
 


1. 실크로드에 色을 입히다.  
~빛나는 색의 향연~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

석양 무렵 황홀하게 펼쳐지는 황금빛 쿠무타크 사막
새벽 여린빛 아래
몽환적인 베이지의 부드러운 표정을 지닌 명사산
천산천지의 하얀 구름과 설봉 그리고 푸른 물결
돈황 막고굴 벽화의 아프가니스탄산 화려한 채색 안료
바람이 빚어내고 파초선이 불을 꺼도 여전히 붉은 화염산
황톳빛 가득한 고창고성
교하고성의 절벽 아래 빛나는 초록
철광을 품고 있는 검은
투르판의 청포도밭 알알이 달려 말라가는 짙은 갈색의 건포도
마귀성의 음울한 회색빛
바리쿤 초원의 드넓은 연둣빛 곡선
그 위를 내달리는 갈색  말,
위구르족 노인의 구릿빛 주름살

우리네 인생. 우리의 삶의 모습도
다양한 실크로드의 색감처럼
기쁨과 행복 안에는 많은 시련과 고통을 숨기고 있고
불행안에도 기쁨과 행복을 품고 있는거지....
결국 희노애락의 연속적 반복이 인생인거지...





2. 세월이 다듬어 놓은 모험의 길에 서다.
길... 로드...
인간은 누구나 길 위에 서 있는 여행자다.
또한 인간은 누구나 길을 걷는다.
발로 걷는 길도 있고
마음으로 가는 길이 있다.
험한 길도 있고
융단처럼 부드러운 길도 있다.

인간이 걸었던 수많은 길 중에서
가장 장엄하고 고단한 길,
여러 민족의 흥망성쇠를 결정한 운명의 길
실크로드...

수천 년 전부터 동양과 서양을 이어준 길
온갖 산물과 문화, 종교, 음악이
이 길을 통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아시아로
서역끝 로마에서 동쪽의 빛나는 나라 신라까지
대상들에게는 먹고살기 위한 길
누군가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고행의 길.
위대한 길, 유리길, 비단길.......

실크로드를 걸었던 사람들
한(漢)무제의 명을 받은 대담한 장건이
흉노에게 두 번이나 사로잡혔다가
천신만고 13년 만에
서역의 놀라운 정보를 가지고 돌아온 길이요,

당(唐)의 현장이 국법을 어기면서
천축국(인도)으로 불경을 구하러 떠난 길이며

혜초가 천축에서 돌아오던 길,

동방견문록의 마르코 폴로가 13세기에 걸어온 길,

한시도 쉬울 때가 없었던 그 길을 따라
낯선 사람들, 낯선 문물이 오고 간 길,
장엄한 대자연을 배경으로
야망을 지닌 사나이들이 말을 거칠게 몰았던 길.

그 길 위에 내 발자국도 살포시 얹는다.








3. 감동한 순간에 셔터를 누르라.

카메라의 노예가 되지 말지어다.










4. 실크로드를 따라 음악이 흐른다.
~ 배경 음악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마라. ~
 
일본을 대표하는 음악인
실크로드의 기타로와 소지로의 오카리나 음악
그리고 첼리스트 요요마는 실크로드를 노래한다.

1985년 TV에서 한 무리의 隊商들이
불타는 사막의 노을을 배경으로
낙타를 타고 모래 파도를 따라
느릿느릿 걸어가는 배경 위로 
 실크로드 음악이 흐른다.
 
그 뒤로 많은 순례객들이 실크로드를 꿈꿨다.
음악은 마음을 움직인다.
 
"위구르인은 말을 할 줄 알면 노래를 하고,
걸을 줄 알면 춤을 춘다."  

 어디 위구르인들 뿐이겠는가?
음악과 춤은 신께 드리는 산 제사라고 하지 않는가?
음악이 실크로드를 만나면 감동은 배가된다.

내 여행기 음악 선곡도 꽤나 공을 들였다.





4.살아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적극적인 체험은 몸이 기억한다. ~

즐겨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천지 유람선 타고
맞아라, 고비사막을 가로지르는 침대열차에서 일몰과 일출을
느껴라, 혜초스님처럼 낙타를 타고
흔들려라, 사막랠리 짚차 타고
내달려라, 말타고 노마디즘
태워라, 불타는 화염산에 속세의 찌꺼기를...






5.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눈에 있는 것...
~ 실크로드의 아름다움을 보다. ~
고창고성의 폐허미
돈황 비천상의 우아미
돈황 막고굴의 경건미
명사산 월아천의 고독미
화염산의 숭고미
지평선 일몰의 장엄미
서러운 빨강꽃 낙타가시풀 비장미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는 광활한 지평선의 일망무제의 미 
 





6. 문을 닫으며 또 다른 문앞으로
~ 내일을 새롭게 하라,
또 다른 문앞에서 서성거릴 것이다.~

세계로 나아가는 문은 수도 없이 많다.
나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 나는 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고 나갈 때마다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한
고유한 개성을 뿜는 다양한 경험들을 만난다.

반복해서 다시 읽고 싶은 책이 있듯
다시 열고픈 문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너무 친숙해서 되돌아보지 못한 삶의 문을 닫고
추억의 맛이 희미해질 즈음
또 다시 문을 연다.

그렇게 여행의 문 앞에서
익숙함과 낯섬을 반복하며 삶을 윤택하게 닦는다.

이제 위대했던 실크로드의 육중한 문을 닫으려 한다.
언젠가 다시 실크로드의 문을 열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은 소멸의 시간이다.

"그립다 하여 모두 돌아간다면
그리움은 사라지고 말 것이옵니다.
때로는 가지 않고 그리움만으로 간직하고픈 일들도 있사옵니다."
소설 / 혜초







7. 세계기록유산이 많은 나라의 후예답게
~장인의 한 땀 한 땀의 정성으로 수 놓은 여행기~

나는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처럼
감성적 여행기를 쓰고 싶었다.

아시아에서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가장 많은 나라의 후손으로서
섬세한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소설가 김영하처럼 사진을 곁들여
단편소설로 꾸며볼까?
글쓰는 방법을 한번도 배우지도,
또는 타고난 재주도 없는지라
아서라 말아라...

그렇다면 내가 즐겨읽는 문학작품 속 글과
사진을 엮어서 여백의 미가 있는 여행기를 만들까? 하다가

내가 여행기를 쓰는 목적을 생각해 봤더니
시간이 흐른 뒤 여행의 흔적들이 내 기억에서 지워질 때
언제든 꺼내어 그 기분을 느껴보려면 그냥 감성적인
평이한 여행기로 가자고...
기억하지 않으면 애초부터 없던 일이 되어버리기에....

감성적 여행기는 지극히 주관적인 기록이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것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

  어떤 부분은 극적으로 미화했거나
내가 느낀 것에 비해 적절치 못한 어휘때문에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또 실제로 중요한 것은 무시했거나
사소한 것은 부풀렸을 지도 모른다.

감정을 단어로 콕 집어서 표현한다는 게
생각처럼 쉬운게 아니다.
단어 하나를 생각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때론 그냥 사진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멍~~~ 
필이 충만할 때는 시간 가는줄 모르고
술술 써내려가기도 했지만 
그런 행위들이 내겐 즐거움이었다.

여행기에 몰입하는 동안
탑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그 좋은 우리의 영화 한 편 관람하지 못했고
걷기 운동도 그쳤으며 겨우 책 2권을 읽었을 뿐이다.

내게 실크로드는 대장정이었다.
방학이 다가옴을 실감한 6월,
인터넷에 실크로드를 검색하며 설레었고,
7월에 구체적인 여행계획을 세웠으며
8월 초 아주 짤은 기간인 7박 9일 본여행 후
친구들과 여름 휴가를 떠났고, 근무를 했고
실크로드 감동의 무게가 너무 버거워
긴 소멸의 시간을 보냈다.

개학하고 나서야 사진을 들여다보고
분류하며 회상의 여행을 다시 시작했다.
사진을 보니 그때의 감정들이 되살아나고
다리도 아팠고, 미슥미슥 멀미도, 3급정도의 호텔들도,
같이 한 여행 도반들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렇게 틈틈이, 또는 온 밤을,
아직까지도 그 위대한 실크로드 위에 서있다.

벌써 잊혀진 섬세한 조각들을 다시 주워 수정하려면
나의 대장정은 언제 끝나지?

소설 혜초에서 스님이 말했듯이 나도 언젠가
여행기로부터 벗어나 모래알처럼,
솜털처럼 가벼워질 것이다.

"제 여행 이야기,
이야기 여행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소멸만이 남았고 다시는 여행을 떠나지 않을 것이며
기(記)와 록(錄)에 매달리지 않을 겁니다.
황하의 한 알 모래 알갱이로 돌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