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ilk Road

Chapter 13. 타고 남아도 붉은 화염산으로 들어가다.

올레리나J 2013. 9. 11. 10:24
 




투루판은 4가지 색이 존재한다.

붉게 타는 화염산의 레드
화염산 위 하늘의 블루
파란 하늘 위 흰구름의 화이트
베제클리크 협곡의 그린
고창고성의 기어서 자라는 야생 수박의 초록

투루판은 4개의 타이틀이 있다.

첫째, 가장 더운 곳
둘째, 제일 건조한 곳
셋째, 도시 중 제일 낮은 곳
( -280m)
넷째, 과일 당도가 제일 단 곳

세계의 도시 중에서 가장 낮은
위그루인들의 도시,
여기는 투루판! 




# 1

선선 ~ 화염산 64킬로미터
312번 국도의 좌우에 펼쳐진
화염산(火焰山)을 따라 간다.

화염산은 총길이가 98Km이고
폭이 9Km에 이르는 거대한 산이다.
불꽃처럼 붉게 타오르는 산을 따라
가자! 서역으로, 서역으로.......





# 2
길이 심심하지 않았다.
오아시스도 드문드문 보이고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는 계곡도 만난다.





# 3





# 4
흰구름도 서역으로 가는가?



# 5
전체적으로 붉은 기운이 감도는 화염산은
바위로 이루어지지 않고
모두 붉은 흙으로 형성되어 있다.
화산 활동에 의해
오랜 세월동안 침식되어 형성된 협곡과 산으로
용암이 녹아서, 산 아래 길을 내었고
불타는 형상을 갖추었다.



# 6





# 7
내가 본 화염산 자락 중에서
이 모습이 가장 아름다웠다.

붉디 붉게  골이 파인 모양이
마치 불꽃같다하여 생긴 이름에 딱 맞는 곳,,,
자연이 빚어 낸 예술작품이로고!





# 8
화염산 View Point
버스가 잠시 멈추었다.




# 9





# 10





# 11





# 12

바위처럼 거칠거칠한 산봉우리 옆에
수밀도처럼 보드라울 것 같은 봉우리가 있고




# 13
농담도 다르고
선의 형태도 다른 봉우리들...
해발 500미터 정도의 각기 다른 산의 형상이
나의 미적감성을 일깨운다.



# 14





# 15
협곡 아래 푸르른 오아시스...
붉은 불을 뿜는 화염산도
오아시스를 숨겨놓았구나.




# 16





# 17
화염산은 소설 서유기에서
아주 인상적으로 표현된다.





# 18
삼장(현장)법사 일행이
서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화염산을 넘어야 하는데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더워서
산을 넘어 갈 수 없었다.

사방 800리 화염산이
온통 불이 붙어 화염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불타는 화염산을 넘지 못하자
손오공이 해결사로 나선다.

불을 끌 수 있는 ‘파초선’이라는 부채를
어렵게 구한 손오공은
화염산을 향해
파초선을 49번 흔들어 댔다.
그제야 그 무섭던 불이 완전히 사라졌다.

얼마나 더웠으면
명나라의 걸출한 소설가인 오승은(吴承恩약 1500- 1582)은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을까나?




# 19





# 20





# 21





# 22





# 23





# 24
협곡 아래 계곡에는 물이 흐른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구루 없는 붉은산
푸르른 계곡의 절묘한 조화!
우리 나라에서 신물이 나도록 본 초록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옆에 있는데
그 소중함을  모르고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는지......




# 25





# 26
알몸으로 잠시만 서 있어도
화염산 열기에 갈색 통닭구이처럼 될 판이다.
소설 서유기 표현대로 마치 불이 붙은 산자락에
서 있는 것처럼 후끈하다.

지금은 한낮 태양이 작렬하고 있으니
모래산의 온도가 80도까지 올라갔을 것이다.
실제로 모래 속에서 구운 달걀을 팔고 있었다.





# 27
외지의 새가 아무 것도 모르고
뜨거운 화염산 위를 날아가다
구이가 되어 떨어졌다고......
믿거나 말거나~~~

그러고 보니 하미-선선-투루판 이 지역에서
날아다니는 새 구경한 적이 없는 것 같다.





# 28
베제클리크 천불동 매표소 입구




# 29
베제클리크는 위구르어로
'아름답게 장식된 집'을 뜻한다.
한 때 이곳에서 번성했던 고창왕국의 석굴사원인
베제클리크 천불동은
물도 흐르고 나무와 풀도 자라는
화염산의 낭떠러지 밑에
6∼13세기에 조성된 불교 유적으로
전체 80여개 석굴 가운데
50여개의 석굴 내부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둔황(敦煌)석굴 벽화와 함께
실크로드를 대표하는 문화재이지만
최악의 약탈자 독일 ‘폰 르콕’과
1960~1970년대 문화혁명 시기에
홍위병들의 난동으로
굴 내부에 남아있는 유물은 거의 없다.
독일로 간 문화재들은 세계대전으로 모두 소실되고
사진으로만 남아있다고 한다.

여기서 떼어간 일본인 오타니의 약탈 유물 중 일부는 
용산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 30
베제클리크 사원이 
하천에서 산으로 연결되는 절벽에
굴을 파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들을 보려면 산중턱 입구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가야 한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 하천변에는
옛날 고창국 왕궁터가 보인다.
나무 사이로 벽과 지붕 등
남아있는 건축을 확인할 수 있다.
흙벽돌 집에
둥근 천장을 가진 독특한 형태이다.





# 31
베제클리크 천불동은 고창고성에서
약 13키로 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불교가 융성하던 시기에
왕실사찰이나 다름 없었지만
13세기 이후 고창왕국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천불동은 버려졌고,
20세기 들어 고고학자들에 의해 재발견되었다.





# 32
동굴로 들어가 보니 불화인 것은 분명한데
긁히고, 뜯기고, 파괴되거나
흙덩이를 던져 훼손시키기도 하는 등
한마디로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 33
한 때 고창왕국의 불교의 성지였고,
수 많은 승려가 살았으며
많은 시주와 공양인들이 있었을 거고
승려들의 독경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불상은 온데 간데 없고
벽면의 불화에도 흙칠을 하거나
대부분 눈이 패인 흉칙한 모습이라
여행자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스님의 독경소리 대신
위그루 악사의 연주 소리가 울려퍼진다.





# 34





# 35
화염산 불더위를 피해 그늘로...그늘로....





# 36 
입구의 화염산 표지석



# 37
누구를 기다릴까?
살이 빠져 훌쭉하고,
불더위에 지친 낙타들이 졸고 있다.





# 38
삼장(현장)법사 일행의 조형물에 다가간다.





# 39
현장법사와 소설 서유기는
중국에서 인기가 높다고 한다.
험난한 과정을 거쳐
불경을 구해 오는 
구법 여행기가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파초선을 든 손오공이 앞장서고
그 뒤를 삼장법사와 저팔계,
사오정이 따르고 있다.





# 40





# 41
화염산의 불도 꺼졌으니
우리도 손오공을 따라 서남쪽으로 향한다.
그곳에 현장(삼장)법사가 들러 설법을 펼친
고창고성이 있다.





# 42
고창고성은 투르판에서 동남쪽으로 40㎞ 떨어져 있다.




# 43
우리를 태우고 갈 나귀마차




# 44
흙먼지가 심해서 이런 복장은 필수



# 45





# 46
고창고성에는 <서유기>의 주인공이 된
26세의 청년 승려 현장(602~664)과
그를 끝까지 잡으려 했던
고창국의 왕 국문태의 애절한 일화가 전한다.

국문태는 현장이
그의 나라에 남아 불법을 가르쳐주기 바랐지만,
인도로 불경을 얻으러 장도를 떠난 현장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국문태의 위협과 구금에 현장은 단식으로 맞섰다.
결국 현장의 뜻을 꺾지 못한 국문태는
현장에게 여비로 쓸 많은 보물을 제공하고
그를 떠나보냈다.

인도에서 불경을 구한 현장이
다시 고창고성을 찾았을 때
국씨의 고창국은 당에 망해
폐허로 변해 있었다.





# 47





# 48
벽돌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
버들가지나 마른풀을 섞어 흙벽돌을 만들고
토담을 쌓아 성을 지었다.

고창국이 멸망한 후
주위 농부들이 벽돌을 깨서 비료로 쓰는 바람에 
폐허가 더욱 심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온전한 건물은 하나도 없다.





# 49
현장이 한 달 동안 설법했던 돔 모양의 사원 터에서
여행자들은 설법 대신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다.





# 50
남편이 그림자 놀이를 하길래



# 51
우리도 했다.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 52





# 53
고창국은 인구 2만명 중 승려가 2천명인 불교국가였고
고창고성의 가장 중심부에 대불사 유적이 남아 있으며
그 때 당시 승려들이 살았던 승방터도 볼 수 있다.





# 54
흙먼지만 풀풀 날리는 옛 왕국터에
바닥을 기어서 자라는 야생수박이
열매를 맺고 있다.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넌,
불심이 깊은 어느 불자의
환생일지도 모르겠구나!





# 55





# 56





# 57
화려했던 옛 왕국은
허물어진 성터로 남아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려 하는걸까?





# 58
설법당엔 빈 하늘이 들어앉았다.
허망하고 또 허망하고, 쓸쓸한지고...





# 59
현장법사의 설법당 앞에서



# 60





# 61





# 62





# 63
 저녁 8시가 가까워질 무렵
아스타나고분군으로 이동했다.
아스타나고분군은 당나라 때
이곳 투루판을 지배하던 관리들의 무덤이다.   



# 64
 아스타나고분군의 상징이라 볼 수 있는
머리가 둘 달린 복희여와상이
일몰 직전의 태양빛 아래 
십이지신상과 함께 서 있다.

 



# 65
관람객은 우리팀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무덤들은 봉분으로 되어있지 않고
땅속으로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동굴속으로 들어간다.
서너개의 작은 무덤들을 휘~이 둘러보고 나왔다.


 



# 66
화염산 불더위에 지치고
폐허의 흙더미,
고창고성의 황량함에 마음까지 휑해졌으나
고창국의 불심은 어느 나라보다 더 깊었으리라......

오늘 일정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투르판 외곽 속소로 향해 간다.

포도의 산지답게 포도밭이 지천이고
포도 저장고도 많이 보인다.




# 67




# 68
포도저장고



# 69





# 70



# 71
어릴 적 따 먹던 다래가
목화의 어린 열매였었어.
투루판의 초록은 포도나무이거나,
목화밭이거나
뽕나무 밭이었지.



# 72
 


# 73
투루판 외곽의 이슬람 사원같은 호텔 로비.
앞으로 이틀 동안 머무를 멋진 호텔에 도착.
 
 
 
나는 지금 위대한 사막의 길 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