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의 일상/자운영 책을 읽다

꽃잎보다 붉던―당신, 먼 시간 속 풍경들

올레리나J 2015. 12. 21. 16:27

 

 

 박범신의 책 '당신'을 소개하는 라디오프로그램을 듣고

이틀에 걸쳐 서점나들이로 이 책을 읽었다.

오전시간 경인문고 안에는 나처럼 책을 둘러보는 이들이 서너명 있다.

질감은 블링블링 파리 낙상할 것 같고

색감은 휘황찬란한 새책들이 바닷가 모래알처럼 반짝거린다.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책을 들고와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오늘 반 내일 반, 이렇게 이틀에 걸쳐 읽었다.

 

사랑은 공평해야 된다는 작가의 말이 신선했다.

누구 한 사람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헌신도 사랑이라면 사랑이겠지만......

진정한 사랑은 공평해야 한다는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그래서 여자주인공도 공평해 지고자

자기를 위해서 온몸을 던져 케어해준 남편의 치매를

견뎌내고 또 인내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치매가 남의 일 같지 않은 요즘

남편의 치매를 또는 나의 치매를

견뎌내줄 수 있을련지~~

 

 치매에 걸린 노부부가 함께 죽어가는 이야기다.

한평생을 부인 윤희옥과 딸아이 주인혜에게 헌신하면서 산 가장 주호백은

두 차례 뇌출혈을 겪고 치매에 걸리면서 인생 말년을 맞이하게 된다.

주호백의 몸과 정신이 점점 통제 불가능하게 변하면서

그로서는 밝히고 싶지 않았던 한평생의 인내, 헌신, 사랑의 이면이 조금씩 드러난다.

 윤희옥은 자신이 평생 받아온 사랑을 깨닫고 뒤늦게나마 그 사랑을 돌려준다.



작가는 "최백호의 노래 '길 위에서'를 듣고 이 소설이 순간적으로 구상됐다"며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 자가 말년에 치매에 걸려서

젊을 때로 돌아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죽는다는 설정을

하니 플롯이 바로 결정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남자 주인공 이름은 '호백'이라고 지었다.

생전 처음 보는 남편의 거친 모습에 부인 윤희옥은

잊으려 했던 과거의 순간들을 복기하기 시작한다.

소설은 2015년에서 시작하고서 끊임없이 과거로 돌아간다.

10대의 주호백과 윤희옥이 처음 만나는 장면부터

이후 두 사람이 거친 인생의 굴곡을 짚어가면서

윤희옥은 남편의 진짜 모습을 다시 마주한다.

그 사이 윤희옥도 조금씩 삶의 끝을 향해간다.

"그는 두 개의 인격을 가지고 살아온 게 사실이다.

하나의 인격은 자애와 헌신과 인내로 시종한 관용의 얼굴이고,

다른 하나의 인격은 상처와 분노와 슬픔 등 보편적 희로애락을 날것으로 갖고 있는 얼굴이다.

거의 평생 나와 인혜에게 그는 첫 번째 인격으로 대응했으며,

이 방에 들어와 혼자 앉아 있을 때 비로소 두 번째 인격의 실체와 맞닥뜨리거나

 그것의 해방을 경험했을 터이다. 

 치매가 깊어진 다음 그가 보여준 그 본능적 반응들.

이 방에 간직된 것들은 그러므로 그가 환자가 되기 전

한사코 감춰온 그의 이면에 대한 생생한 증거들이다."(258쪽)

작가는 "책에는 아내나 자식, 고인이 된 부모님 등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너무나 사랑했지만

 과오도 많았던 사람들에 대한 나의 회한과 성찰,

반성 이런 것들이 담겨 있다"며

"죽음이나 존재론적인 한계가 아니라 '순애보'를 생각하며 썼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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