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여행의 시작,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올레리나J 2009. 10. 15. 16:18
2004.7.30

14시 30분 대한항공으로 인천 출발
10시간의 비행끝에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현지 시간으로 18시 40분 도착
썸머타임이어서 한국보다 6시간 늦다
비가 온 뒤의 날씨는 쾌적하고 상쾌하며
우리나라 9월말쯤의 가을 날씨이다.

800명을 수용하는 대형 호텔에 묵었는데
관이 오래되어 녹물이 나오고
화장지도 누렇고 뻣뻣했으며 물은 계속 사먹어야했다
샴푸나 린스, 드라이기 다리미 등 부대시설이 엉망이어서
호텔의 느낌이 없었지만 비교적 깨끗했다.
백야의 절정은 아니었지만 10시가 되었는데도
우리나라의 7시처럼 환해서
두꺼운 커텐을 치고 잠을 청했다.

제2일째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나 빵과 치즈 햄 등
호텔 뷔페식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위장약을 든든히 준비해갔으므로
안심하고 딱딱한 빵을 쨈에 발라 먹고
(햄,치즈 종류가 무지 많았으나)
우유랑 요플레랑 과일을 곁들여 식사를 했는데
염려한 만큼 거북스럽지는 않았다.
진정한 여행가라면 현지 음식에
적응할 줄도 알아야하지 않겠는가?

9시에 전세 버스를 탔다.
시내 관광을 하기 위해서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으로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문화유산 도시다.
발레 전공 박사코스를 밟고 있다는
자그마한 체구의 가이드는
이영진이라고 자기 소개를 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울 땐 레닌그라드였다.
국민소득 2천달러에 어울리는양
거리의 차들은 중고차들의 물결이었고
어쩌다 고급차도 보이긴 했지만...
여기저기 고장나 서있는 차들이 많았다
고장차를 여럿이 밀고 가는 모습도 보였다.
주 교통수단은 전차,전선 버스, 택시는 어쩌다 한 두대 보일 정도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자가용이 택시 기능을 해도 법에 저촉되나
단속이 엉성하여
흥정만 잘되면 택시로 이용한다고 했다.
뻬쩨르부르그는
러시아 사람들은 애칭으로 '빼째르'라고 부르기도 한다.
1703년 러시아의 황제 표트르 1세에 의해
발트해 연안의 늪에 건설된 계획도시로
건물들이 두께가 1미터 이상으로 튼튼하게 지어졌고
건물 전체가 200~300년 된 것이고
자세히 보니 우리나라처럼 비슷한 건물이 눈에 뜨지 않고
저마다 고풍스런 특징들이 있다

낙후된 러시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유럽과의 교류가 중요하다고 여긴 표트르 대제는
유럽으로 나가는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뻬쩨르부르그에 요새를 세우고
모스크바에서 수도를 옮겼다.

이로부터 약 200여년간 뻬쩨르부르그는
러시아의 전제 정치 발전의 핵심이 되었고
우랄산맥을 넘는 대영토를 차지한 것도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 후였고,
유럽에서 제일 낙후된 국가에서
19세기 중반 부터는 유럽의 곡창지대란
이름을 얻게 된것도 이 도시의 번영과 관계가 있다하겠다.

모스크바가 러시아의 심장이라면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머리라는 말이 있다
실제 외국인 뿐만 아니라 러시아인들이
생전에 꼭 한번 가고보 싶어하는 도시이자
살고 싶어하는 도시 1순위로 꼽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유럽의 베니스라고도 불리며
어떤 이는 프랑스의 파리보다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약 500만의 인구를 가진 러시아 제2의 도시인 빼째르는
문화 예술의 도시이며 도시 자체가 하나의 문화유산이자,
역사가 숨쉬고 있는, 낭만이 살아있는 도시다.

백야,안나 까레리나,닥터 지바고, 러브 오브 시베리아 같은
예술적이고 낭만적인 영화들의 훌륭한 배경이 되었고
도스토예프스키가 넵스키 거리를 걸으며 죄와 벌의
작품구상을 하거나 차이코프스키가
악상을 떠 올리려 걸었을 그 거리를 내가 걷는다.
입을 크게 벌리며 맑은 공기를 쉴새없이 마셔대며
작은 두 눈 크게 뜨고 ......

왕녀의 연인인 장교 브론스키와
대지주의 정숙한 아내인 안나 까레리나가
불같은 불륜의 사랑을 나누던 곳이
여기 어디쯤에서 일까? 가늠해 보면서......
그 생각을 하니 아름다운 사랑이 미치도록 그립다.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고리끼, 체호프, 푸쉬킨 등
단 한권이라도 이들의 책을 갖고 있지 않은 집이 있을까?
이 아름다운 곳에서 그들이 살았으니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말이 실감난다.

다음날
밤사이 비가 내렸는지 도로가 젖어있고
우리나라의 가을 날씨처럼 청명한 하늘이
나를 맞이했다.
얼마나 그리던 상큼한 날씨인가?
쾌쾌한 공기만 마셔대던 나 살판 났네.

러시아는 길거리에 사람들이 얼마지나다니지 않고
사람들의 표정도 굳었으며 쭉쭉빵빵 아가씨들과
나이든 뚱뚱한 사람들이 대조적이었다.
순간 미인이라고 하던가?
처녀때는 미인이었다가
기후와 생활습관 때문에 금방 뚱보가 된다는 것이다.
러시아인들은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니고
하루에 5킬로 이상 걷고
걷는 사람들의 손에는 거의 비닐 봉지가 들려 있다.
정장을 한 신사도, 교수도, 예쁜 숙녀도,남녀노소 구분없이...
편해서 그런단다.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지...
더구나 남자가 어디 시장바구니를 하면서......

여름궁전 가는 길에
농촌시장을 들렀다.
잣,호두,과일 말린것, 특히 체리가 제일 달고 맛있어서
주인의 눈을 피해 계속 시식을 했다.
일행들은 아주 싸다며 이것저것 사느라
가이드가 바빠졌다.
상인들이 영어를 모르기 때문이다
여름 궁전!
러시아의 '베르사유' 러시아 '분수들의 수도'라고 불리는
여름궁전은 핀란드만 해변가에 위치해 있었다.
분수를 따라 내려가니 바로 바다가 보였다
역시 표트르 대제의 명령으로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본따서 만들어졌는데
20여개의 궁전과 삼손분수지역이 중심포인트로
140개의 화려한 황금빛 계단식 분수들,
7개의 아름다운 공원은 푸르름으로
눈을 뜰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어쩌다 일행과 떨어져 일본 남자로 보이는 핸섬한 남자가
나를 쳐다보길래 please 하며 카메라를 내밀었더니 기꺼이 찍어주었다.
thank you 두마디로 해결한 셈이다.

순양함 오로라호
페트로프스카야 강변로에
회색의 대형 선박이 닻을 내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1917년 러시아혁명을 알리기 위해
황제의 겨울궁전을 향해 발포했던
역사적인 순양함이다.
현재는 해군중앙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단다.
이 도시에서 삼성과 엘지 간판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는데
순양함 앞에서 커다란 삼성 간판을 볼 수 있었다.

넵스키대로
19세기 중엽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중심가이다.
네프스키대로의 명칭은 바로 ‘
네바강의 거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거리에는 수많은 운하와 박물관, 극장 등이 있으며,
러시아의 대문호들이 자주 찾던 레스토랑 등이 있다고.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고골리 등의
문학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이 거리.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모든 길은
넵스키로 통한다는 말이 어룰릴 것 같다.
무질서하게 되는대로 길을 만든 것이 아닌
계획된 도시임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네바강
네바강은 페테르부르크의 요람이다.
길이 28km의 강변이 각양각색의 화강암으로 장식돼 있으며
각 나루터와 다리에는 항아리 모양을 한
이국풍의 조각이 즐비하다.
그중에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스핑크스상도 있다
토끼섬(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는
표트르 대제가 1701년 스웨덴 정벌과
수도 방어를 위해 만든 요새로
페테르부르크 건설의 모태가 된 곳.
이 요새 안에는 높이 12m, 두께 4m의 성채가 6개 있으며
문학가, 예술가를 가둔 감옥이었으며
처형 직전 네바강 거너편에 세워 놓고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성 이삭 성당. 베드로 성당등의 유적지)
보게 한 다음
처형했다고 해서 돌아오지 않는 문이란
별칭을 얻게 되었다한다.
원래는 네바의 문인데 말이다.

페테르부르크 현지 교민들은
"쉽게 올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오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곳이 페테르부르크”라고 말한다.
페테르부르크는 아시아와 유럽,
동방과 서방 사이에 끼여 이들 모두의
문화적, 예술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일까?
풍광은 이국적이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서만큼은
한국인과 놀라우리 만큼 닮아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고풍의 도시, 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하고
이곳에서 대학도 다녔다는
페테르부르크에 더 남아 거리를 샅샅이 탐험하고 싶었다.
적어도 일주일 코스를 잡는 것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