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의 일상/자운영 책을 읽다

소멸해가는 살인자의 기억법

올레리나J 2013. 12. 2. 20:20

 

문체가 간결하다.

그래서 쉬 읽혀진다.

책 자체도 얇아서 부담감이 없다.

 

김영하는 내가 검증한 작가여서

쉬이 읽히지 않았어도

인내심을 발휘했을 터이다.

 

30년 동안 꾸준히 살인을 해오다

25년 전에 은퇴한 연쇄살인범 김병수.

알츠하이머에 걸린 70세의 그가 벌이는

고독한 싸움을 통해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공포 체험에 대한 기록과 함께

인생이 던진 농담에 맞서는 모습을 담아냈다.

잔잔한 일상에 파격과 도발을 불어넣어

딸을 구하기 위한

마지막 살인을 계획하는 그의 이야기를 그려내며

삶과 죽음, 시간과 악에 대한 깊은 통찰을 풀어놓는다.

 

반전이.......

그 반전 때문에 영화로 만들기로 했을까?

 

인간의 기억은 불안정하다.

왜곡하여 자기 유리한 대로 기억한다.

그래서 난 내 기억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서글프다.

가까운 기억부터 사라지기 시작하여

종래는 먼 기억까지...

 

어쩔 때는 우기기도 한다.

내 기억이 옳다고...

부질없는 짓임을 안다.

 

주인공은

시 쓰기에 재능을 보인다. 

살인자들은 감성이 메말라 시 따위와는

거리가 멀 거라 생각할 테지만

시에 대한 재능과 악과는 상관없나보다.

대체로 시인들은 감성이 풍요럽고

천진하고 순진하다고 믿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난 요즘 노화의 진행인지

치매의 진행인지 알 수는 없지만

 기억이 끊겨 블랙아웃 당한다.

늘 쓰는 카드를 어디에 놓았는지 모르고

온 집안을 다 뒤엎고

결국 찾지 못해 분실신고를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악행에 치를 떠는게 아니라

그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같이 안타까워했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그의 말처럼

가장 무서운건 악이 아니라 시간인지도 모른다.

 

나는 죽음보다 기억상실의 늙음이 두려워진다.

주름살이 두려운게 아니다.

블랙아웃이 두려운 거다.

 

차라리 이 소설의 말미처럼

하나의 점이 되고,

우주의 먼지가 되고,

아니 그것조차 사라지는 소멸이라면, 왜 두렵겠는가?

 

정신은 소멸되고 심장은
뛴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죽음보다 못하지....

 기억이 소멸되면 그 존재는 이미 존재가 아니지......

 

할머니가 살인범이라는 소설도 있다는데

그것도 한 번 구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