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의 일상/자운영 책을 읽다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 그대, 류근을 만나다.

올레리나J 2013. 11. 29. 10:31

 

 

 

잘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이 세상에서

혹독하고 완고한 자기풍자와

철저한 자기조롱을 통해

세상과 타인의 아픔을 대신 앓는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노랫말을 쓴 시인 류근을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아름다워서,

슬퍼서,

외로워서,

부끄러워서

시도 때도 없이 울고,

낮밤 가리지 않고

술을 마신다.

 

전생에 술하고 웬수를 졌는지

 비 온다고 한 잔,

꽃잎이 진다고 한 잔,

반갑다고 한 잔,

헤어져 슬프다고 한 잔...

 

나 그런 사람 하나 알고 있다.

울 오라버니...

 

시인으로 등단한지 22년,

술 취하지 않을 때만 시를 써서

18년 걸쳐

시집 달랑 한권을 낸 시인

 

중학교때 장래희망을 '시인'이라고

적을 때부터 욕을 절대 하지 않았다는데

말끝마다 '조낸, 시바'다.

어쩐일인지 경망스럽지도 않고

거슬리지도 않는다.

 

그 욕아닌 욕이 조미료가 되어

오히려 감정선을 더 도드라지게 이끌어낸다.

 

궁핍의 이미지인 라면과 시래기로

허기를 달래고

어쩌다 수입이 생기면 주변 사람들 불러

술잔을 부딪치며

시와 문학을 안주삼아 궁핍을 즐긴다.

춥고 배고프고 졸리고

3종 셋트를 앓는다.

 

배부른 돼지에게선

절대로 이런 류근만의 울림 깊은 시어들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글 하나.

이 새벽에 울고 싶은 사람도 있다.

이 새벽에 울고 싶은데 꾹 참는 사람도 있다.

모퉁이를 돌아서 드로프스 하나 잘 견디 소녀처럼

맑은 뒷모습도 비스듬히 있다.

모든 게 내 탓 아니다.

너희의 탓도 아닌 곳에서 정확하게 꽃이 피기도 한다.

웃자고, 웃자고 약속하는 미래가 온다.

갑자기 하느님에게 엿을 대접하고 싶ㄷ.

다만 오늘의 하느님, 비가 안 와서 다행이다. 시바.

 

글 둘

 

어이,  시인!하고 부르시더니

출가한 지 50년 됐다는 노스님께서

혼잣말인 듯 노랫말인 듯 읊조리셨다.

 

나는 꽃들에게 말을 걸면

내 슬픔 때문에 꽃들이 죽어버릴까 봐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네

 

그래서 나는 스님의 슬픔 때문에 죽기는 싫어서

조용히 일어나 내 발밑에 물을 주었다.

 

 

글 셋

 

외로워지기에 딱 알맞은 날씨다.

하늘이 죽은 연인의 눈동자 같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느릿느릿 일어나 밀린 편지들을 읽는다.

소금사막에서 울고 있는 한 여자를 생각한다.

하필이면 소금사막에 가서 울고 싶다던 소망에 대해서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못하였다.

그녀는 이 땅을 버렸고, 마침내 그 울음을 내게 보내줬다.

소금보다 깨끗한 눈물, 소금보다 깊어진 눈물.

그러나 결국 사막보다 막막한 울음일 터였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아무런 감흥을 가지지 않기로 결심한다.

오늘 서울은 흐리고, 나는 조금 외롭다.

소설가 김언수 김중혁 이외수 정영문 박민규

시인 김도언 문정희 전영관... 

 

이외수는 이런 추천 글을 썼다.

"아니,

이런 개같은 시인이

아직도 이 척박한

땅에 살아남아 있었다니...."

 

그들의 술좌석에 나도 끼어 

꼭지가 돌더라도 호형호제하며

술잔을 주고받으며

자유롭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