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의 일상/자운영 책을 읽다

등골 휘는 아버지, 손 갈퀴 어머니

올레리나J 2013. 11. 23. 06:39

 

 

11.23.

 

정글만리에 이어 박범신의 '소금'을 읽다가 

마지막  책장을 덮고 퇴근하는 길

잎이 다 떨어진 채로

찬바람을 맞고 서 있는 나목을 보니  

그들이 이 책 속의 아버지들 같았다.

 

“세상의 모든 소금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맛이 달라.”
짠맛, 신맛, 단맛, 쓴맛, 매운맛까지

인생의 다양한 맛을 담고 있는 소설!

가장이라는 멍에를 등짐으로 지고

폭력적인 자본주의에 내몰리고

'소비'라는 빨대에 저당잡힌 아버지들의 굽은 등,

 

  자본주의에 찌든 나의 굽은 등은

어쩜 잉여재산을 쌓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굽었을 것이다. 

 

모든 문제는 잉여재산으로부터 비롯된다.

잉여는 소비를 부르고

소비는 더 큰 욕망과

더 큰 잉여를 부르도록 운명지어 졌다.

 

아! 나도 벗어나고 싶다.

도심에서...이 거대한 소비문명에서...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바람불면 눕고 바람자면 일어서는 풀처럼...

나무처럼... 하늘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꼭 둘로 나눠야 한다면,

 하나는 스스로 가출을 꿈꾸는 아버지,

다른 하나는 처자식들이 가출하기를 꿈꾸는 아버지로 나눌 수 있다.”

이 책은 ‘붙박이 유랑인’으로 살 수 밖에 없는

그래서 ‘가출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버지가 되는 그 순간부터

자식들을 위해 ‘빨대’가 되어줄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

 선명우의 삶을 통해,

 늙어가는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과 삶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부둣가에서 일하는 아버지,

베트남전에서 다리가 잘린 채

안개 사이로 절름절름 걸어오는 아버지,

 “이게 다 너 때문이야”라고 소리치며

 술주정을 하는 아버지,

소금을 안고 엎어지는 아버지,

감옥에 간 아버지,

사우디아라비아 모래바람 속에서 일하는 아버지,

가족을 등지고 도망치는 아버지까지

세상의 아버지들은 자식을 위해

당신들의 꿈을 버리고 상처받고 고생하지만,

자식들은 아버지의 무능을 비판하고,

아버지가 해준 게 없다고 말한다.


‘젊은이들이 화려한 문화의 중심에서

 만 원씩 하는 커피를 마실 때,

늙은 아버지들은 첨단을 등진 변두리

어두컴컴한 작업장 뒤편에서

인스턴트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있는 게

우리네 풍경’이며,

우리는 생산력과 소비라는

 거대한 터빈 안에서 불안과 어지럼증을 느끼면서도

 그것의 단맛에 중독되어,

체제에 순응하며 살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회사나 사회에서 열심히 일했던

늙어가는 아버지들에게는 힘이 없다.

그러하기에 가족과 세상에 대한 섭섭함보다는

 ‘세상 끝에 혼자 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이 더 큰 존재들이 된다.

아버지들은.......

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