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의 일상/자운영의 흔적

이 세상의 모든 밥

올레리나J 2013. 4. 3. 18:08

 

톳밥을 해보았다.

어려서 먹던 기억을 떠올려

톳을 살짝 데쳐

불린 현미와 함께 밥을 짓고

달래와 파 부추를 넣어 양념장을 만들어

참기름 듬뿍 넣고 비볐다.

 

요즘에사 건강 레시피,

또는 다이어트 레시피로

콩나물밥, 곤드레밥 등이 인기라지만

내 어렸을 땐

생존 음식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일하던 부모님은

해방 후 큰오빠와 작은 오빠를 앞세우고

무일푼으로 고향으로 돌아와

내가 태어날 때도 여전히 가난하였다.

 

 

초근목피의 궁핍을 나는 기억한다.

사시사철 땔감나무하러 가서

나무껍질 벗겨 부드러운 속살을 핥아 먹었으며

칡이나 도라지 더덕같은 알부리도 캐먹었다.

 

식량이 부족하니 가까운 바다나

들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넣어

부족한 곡식을 대신하여

밥 양을 늘렸다.

 

미끈미끈한 차조밥(싫어)

훅 불면 날아갈 듯한 모조 밥(싫어싫어)

보리 새싹으로 지은 밥

꽁보리밥

무우로 지은 밥...

바다에서 직접 캐와 지은 톳밥

굴밥...

이 세상의 모든 밥들을 섭렵했다.

 

 

하얀 쌀밥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다.

어..

쩌..

다...

명절날이나 제삿날 먹을 수 있었던 쌀밥 맛은

어쩜 그리도 부드럽게 살살 녹아넘어가던지......

반찬 없이도 그 풍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쌀 한 주먹 보리밥에 넣어

아버지만 동그랗게 한그릇 퍼주고

난 보리알만 탱탱하게 굴러다니던 밥을 먹으며

그것만이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했다.

 

그렇게 허기진 배를

개구리를 잡아 먹거나

고구마로 달래었고

진달래꽃잎, 버찌, 오디 따 먹기

양파껍질 벗겨먹기

 마늘 구워먹기, 생무우,가지 등등 

원시인처럼 산을 누비거나 들녘을 쏘다니기도 했고

남의 밭에서 서리를 해서 배를 채웠다.

 

 요즘 그 중에서 가장 먹고 싶은 것은

목화 솜 어린 열매를 '다래'라 불렀는데

바로 그것이다.

꼭지를 따서 4갈래로 벗기면

부드럽고 튼실한 하얀 육즙이

입안 가득~~~

 

그 어떤 과일이 그것보다 맛있으리오...

 

한 번은 하교길에 남의 밭에서 다래 따 먹다가

지나가던 주인에게 들켜 혼나기도 했다.

집에까지 쫓아와서 부모님께 일러

어린 가슴을 조리게 했다.

 

먹을 것으로 넘쳐나는 현재를 살면서

난 단지 오늘,

톳밥을 앞에 놓고

새삼 그때를 생각하고 있다.

돌아갈 수 없는 탓에 그립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