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캄보디아

타프롬 프놈바켕,자연은 위대하다.

올레리나J 2012. 2. 27. 15:40






고뿌라
8~9세기의 세월을 견디다
이젠 쇠심줄에 의지하여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입구탑
앙 다물고 있는 부처님의
근엄한 표정을 이루고 있는 조각들은
용케도 잘 버티었구나...




지뢰 폭발로 발목을 잃은 분들이
아리랑을 연주하신다.
곳곳에 이런 분들이 참 많았다.



입구에서 10여분 밀림속을 걸어 들어오면
거대한 나무들의 사열을 받는 느낌이 든다.
사원 가는 길은 어디든 비포장이라 먼지가 풀풀 나지만
주변의 숲이 주는 짙푸른 색감이
삭막함을 밀어낸다.




뼈를 온전히 드러낸 나무와 석벽들의 잔해는
둘 사이의 치열한 생존경쟁을 말해 주는 듯...
승자는 누굴까?
굳이 승자를 가려내려는 못된 내 발상은 직업병일까?
아, 나의 올해 교육 중점은
평가 결과보다 과정을 소중히 하리...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자신을 패배자인 루저로 생각하지 않게
자부심을 길러주리....

씨로 튕겨져 싹을 틔웠으니 어디서든 살아야 하는 나무와
자야바르만 7세의 어머니를 위한 효심으로
하나 하나 쌓아 올려진 석벽들
그들도 크메르인의 정성어린 손길을 끝까지 지켜내야 했으리...




이 나무의 우듬지를 보려면
고개를 어느 정도의 각도로 젖혀야 할까?









수많은 관강객들이 타프롬으로...
타프롬으로 밀려오고 있다....




타프롬 사원은 통행로만 만들어 놓은 것을 빼고는
복구를 하지 않는 사원이란다.
자연이 어떻게 사원을 무너지게 했는지
그 과정과 결과들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하여
일부러 복원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복구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닐련지...
열대 무화과인 스펑나무(Spung)들과
가지로부터 뿌리가 내려와
땅에 박힌 실크코튼(silk-cotton) 나무 등이
사원을 장악해버려서
이 나무들이 무너지면
사원도 무너지리라.....

자연의 생명력 앞에 무력해지는 인간을
그리하여 더욱 더 겸손하게 살라는 메세지를 주고 있는 곳,
Ta Prohm....




이 타프롬 사원은 12세기 중반부터 13세기 초반,
( 그 당시 캄보디아는
중국 원나라가 한참 세계를 무대로
여러 나라들을 정복할 때
원나라와 대등한 초강대국으로서
인구가 3000만에 달했고,
도성 인구만 150만에 육박했으며,
정예 코끼리병 12만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앙코르 와트를 짓는 등
문화적 측면에서는 당대 세계 어떤 나라와도
비교가 안될 정도로
강성한 시기였다.

또한 우리 나라는 원나라가 유일하게
무력으로 정복하지 못한 고려시대였다는...)
그 시기에 자야바르만 7세가
그의 어머니를 위해 건립한 불교사원이었으나
왕이 죽은 후에는 힌두교 사원으로 개조되었다.

비문에 의하면 이 사원에 고승 18명, 승려 2,740명, 견습승 2,232명,
압사라(신들의 무희, 현재 캄보디아와 태국의 전통무용)
615명을 포함하여
12,640명이 거주했다고 한다.




한때는 12,600여명이 거주했던
아름답고 웅장했던 타프롬...
인간이 만든 단단한 석건축물도
자연에 의해
서서히 다시 자연속으로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안졸리나 졸리의 툼레이더




타프롬사원 전 지역을 이 스펑나무들이
모래흙 성분인 사암벽들을 숙주삼아
뿌리를 계속 내리며 자라고 있다.





타프롬 사원은 라테라이트를 재료로 한 주벽이
700×1000m에 이르며
전체 사원면적은 60ha에 이른다.
제2 주벽에는 왕의 어머니를
바야바라밀타 보살의 모습으로 조각하여 안치하고
왕의 조상을 260여 개나 만들었다고 한다.




유네스코의 지원과 인도의 지본으로
복원을 시도했었으나 도저히 불가능해 중단하고
지금은 스펑 나무에 성장억제제를 투여해
단지 성장만 지연시켜
유지, 보수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한다.




여기저기 남아 있는 석벽들...
제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돌무더기들...
아아! 한때는 웅장한 사원의 일부분이였을 흔적들...
거기서 나는 내 이십대의
크고 작은 슬픔과 좌절을 보았네.




폐허의 아름다움이란게 있다면
이런 곳에서 느껴지는 것 아닌가?
타프롬 사원 곳곳에서
폐허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전쟁으로 인한 폐허가 아니라






고뿌라
8~9세기의 세월을 견디다
이젠 쇠심줄에 의지하여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입구탑
앙 다물고 있는 부처님의
근엄한 표정을 이루고 있는 조각들은
용케도 잘 버티었구나...




지뢰 폭발로 발목을 잃은 분들이
아리랑을 연주하신다.
곳곳에 이런 분들이 참 많았다.



입구에서 10여분 밀림속을 걸어 들어오면
거대한 나무들의 사열을 받는 느낌이 든다.
사원 가는 길은 어디든 비포장이라 먼지가 풀풀 나지만
주변의 숲이 주는 짙푸른 색감이
삭막함을 밀어낸다.




뼈를 온전히 드러낸 나무와 석벽들의 잔해는
둘 사이의 치열한 생존경쟁을 말해 주는 듯...
승자는 누굴까?
굳이 승자를 가려내려는 못된 내 발상은 직업병일까?
아, 나의 올해 교육 중점은
평가 결과보다 과정을 소중히 하리...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자신을 패배자인 루저로 생각하지 않게
자부심을 길러주리....

씨로 튕겨져 싹을 틔웠으니 어디서든 살아야 하는 나무와
자야바르만 7세의 어머니를 위한 효심으로
하나 하나 쌓아 올려진 석벽들
그들도 크메르인의 정성어린 손길을 끝까지 지켜내야 했으리...




이 나무의 우듬지를 보려면
고개를 어느 정도의 각도로 젖혀야 할까?









수많은 관강객들이 타프롬으로...
타프롬으로 밀려오고 있다....




타프롬 사원은 통행로만 만들어 놓은 것을 빼고는
복구를 하지 않는 사원이란다.
자연이 어떻게 사원을 무너지게 했는지
그 과정과 결과들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하여
일부러 복원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복구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닐련지...
열대 무화과인 스펑나무(Spung)들과
가지로부터 뿌리가 내려와
땅에 박힌 실크코튼(silk-cotton) 나무 등이
사원을 장악해버려서
이 나무들이 무너지면
사원도 무너지리라.....

자연의 생명력 앞에 무력해지는 인간을
그리하여 더욱 더 겸손하게 살라는 메세지를 주고 있는 곳,
Ta Prohm....




이 타프롬 사원은 12세기 중반부터 13세기 초반,
( 그 당시 캄보디아는
중국 원나라가 한참 세계를 무대로
여러 나라들을 정복할 때
원나라와 대등한 초강대국으로서
인구가 3000만에 달했고,
도성 인구만 150만에 육박했으며,
정예 코끼리병 12만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앙코르 와트를 짓는 등
문화적 측면에서는 당대 세계 어떤 나라와도
비교가 안될 정도로
강성한 시기였다.

또한 우리 나라는 원나라가 유일하게
무력으로 정복하지 못한 고려시대였다는...)
그 시기에 자야바르만 7세가
그의 어머니를 위해 건립한 불교사원이었으나
왕이 죽은 후에는 힌두교 사원으로 개조되었다.

비문에 의하면 이 사원에 고승 18명, 승려 2,740명, 견습승 2,232명,
압사라(신들의 무희, 현재 캄보디아와 태국의 전통무용)
615명을 포함하여
12,640명이 거주했다고 한다.




한때는 12,600여명이 거주했던
아름답고 웅장했던 타프롬...
인간이 만든 단단한 석건축물도
자연에 의해
서서히 다시 자연속으로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안졸리나 졸리의 툼레이더




타프롬사원 전 지역을 이 스펑나무들이
모래흙 성분인 사암벽들을 숙주삼아
뿌리를 계속 내리며 자라고 있다.





타프롬 사원은 라테라이트를 재료로 한 주벽이
700×1000m에 이르며
전체 사원면적은 60ha에 이른다.
제2 주벽에는 왕의 어머니를
바야바라밀타 보살의 모습으로 조각하여 안치하고
왕의 조상을 260여 개나 만들었다고 한다.




유네스코의 지원과 인도의 지본으로
복원을 시도했었으나 도저히 불가능해 중단하고
지금은 스펑 나무에 성장억제제를 투여해
단지 성장만 지연시켜
유지, 보수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한다.




여기저기 남아 있는 석벽들...
제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돌무더기들...
아아! 한때는 웅장한 사원의 일부분이였을 흔적들...
거기서 나는 내 이십대의
크고 작은 슬픔과 좌절을 보았네.




폐허의 아름다움이란게 있다면
이런 곳에서 느껴지는 것 아닌가?
타프롬 사원 곳곳에서
폐허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사원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거대한 대자연의 중력이라는 법칙에
거스르는 행위일 것이다.
중력의 법칙을 거슬러 이룬 인간의 위대한 승리가
세월을 지나면서
다시 자연의 품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이
폐허다.
자연과 융화되는 그 모습 때문에
거기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 않을까?
자연도, 인간도 세월이 흐르면
생자필멸 (生者必滅)인 것을.....














'밀림의 사원' 전체를 송두리 째
장악하고 있는 스펑나무들
자연에 의해 인간의 위대한 건축물들도 궁극에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이리라.









폐허의 돌 난간에 앉아 나는 너를 본다.
어떻게 하든 살아남아야했던 스펑나무를 본다.
석벽들도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고
나도 자연으로 돌아가고
옆에 앉아 있는 이방인도 자연으로 돌아가리라....




석벽으로의 삶을 마치고
너는 나무, 나는 이끼낀 돌
이제 자연으로 돌아가리...



























































타프롬은 들어가면 갈수록
비슷한 유적이 반복하여 나오므로
방향감각을 잃기 쉽다
이 사원의 엄숙한 분위기는
보석들이 박혀있었다는 보석방 등의 건축물 보다는
자연과 어우러진 무너진 폐허에서
더 쉽게 느낄 수 있다.
사원 전체가 여러 나무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어서
구석구석 마치 고대도시를 탐험하는 탐험가처럼
폐허의 장관들을 목격할 수 있다.
문 하나만 지나면
또 다른 세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꿈의 세계인지,
고대도시로의 시간 여행이었는지,
헛갈려하며 타프롬을 나와
하나투어 전용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67m 높이의 언덕 위에 위치한
프놈바켕 가는 길
프놈바켕은 야소바르만 1세가
룰루오스에서 앙코르로 수도를 옮긴 후
이 일대에서는 최초로 지은 사원이다.

위로 가는 것이 아니고
언덕을 끼고 산중턱으로 돌아서 가기 때문에
가파르거나 크게 힘들지는 않다.




5년전에 왔을 땐 저녁 무렵 올라가서
환상적인 일몰을 봤었는데
요즘엔 워낙 여행객들이그 시간대에 몰려와
안전상의 문제로 300명씩 끊어서 올려보내는데,
올라간 사람이 내려오지 않으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올라가지도 못한다고.
그런데 일몰을 보겠다고 올라간 사람이
해지기 전까진 내려올 리는 만무하고,
아래에서 몇 시간 줄 서 있다가
볼 일 다보기 때문에
일몰이 아름다운 프놈바켕을
일몰시간대를 피해서 올라왔다는....ㅠㅠㅠ























시바신이 타고 다녔다는 난디(소),
시바신을 보호하기 위해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단다.
프놈바켕이 세워졌을 당시
이 곳의 국교는 '힌두교'였다.
지금은 국민의 90%가 불교를 믿고 있다.




사원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은 가파르다.
1단에서 5단까지 오르는 계단은
경사가 70도에 이른다.




최상층 정중앙에 있는 신전은
108개의 탑들이 호위하듯 들러싸고 있다.
대부분의 탑들은 무너지고 훼손되어
원형을 잃었지만
탑이 가지는 위엄은 아지도 살아 있다.
하단에 총 44개의 석탑이 자리하고 있는데
동쪽과 서쪽에는 12개씩의 탑들이 있으며
남쪽과 북쪽에는 10개씩의 탑들이 있다.
1단에서 5단까지는 각 단마다
12개의 탑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전체적으로 총 60개의 작은 석탑이 있다.
그리고 최상층에는 동서남북
총 4개의 석탑이 중앙탑을 호위하고 있다.
프놈바켕 사원은 전형적인 5탑형인데
그것은 메두산 다섯 봉우리를 상징한다.
중앙탑에는 링가가 모셔져 있다.
링가는 시바신의 상징이며
프놈바켕은 시바에게 봉헌된 사원이다.




이 일대에서 최초로 지어진 사원이어서인지
훼손 정도도 가장 심했다.









프놈바켕 사원의 링가(남근석)
< br>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중앙탑




울창한 밀립의 끝 < br>저쪽으로 해가 진다.


































압살라 무녀도
이 부조 만큼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프놈바켕도 목하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




폐허 속에도 생명은 있다.
처연한 아름다움...


 

사원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거대한 대자연의 중력이라는 법칙에
거스르는 행위일 것이다.
중력의 법칙을 거슬러 이룬 인간의 위대한 승리가
세월을 지나면서
다시 자연의 품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이
폐허의 모습들일진대
자연과 융화되는 그 모습 때문에
아름다움을 느끼지 않을까?
자연도, 인간도 세월이 흐르면
생자필멸 (生者必滅)이요.
그것이 바로 폐허미이고 자연미일 것이다.














'밀림의 사원' 전체를 송두리 째
장악하고 있는 스펑나무들
자연에 의해 인간의 위대한 건축물들도 궁극에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이리라.









폐허의 돌 난간에 앉아 나는 너를 본다.
어떻게 하든 살아남아야했던 스펑나무를 본다.
석벽들도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고
나도 자연으로 돌아가고
옆에 앉아 있는 이방인도 자연으로 돌아가리라....




석벽으로의 삶을 마치고
너는 나무, 나는 이끼낀 돌
이제 자연으로 돌아가리...



























































타프롬은 들어가면 갈수록
비슷한 유적이 반복하여 나오므로
방향감각을 잃기 쉽다
이 사원의 엄숙한 분위기는
보석들이 박혀있었다는 보석방 등의 건축물 보다는
자연과 어우러진 무너진 폐허에서
더 쉽게 느낄 수 있다.
사원 전체가 여러 나무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어서
구석구석 마치 고대도시를 탐험하는 탐험가처럼
폐허의 장관들을 목격할 수 있다.
문 하나만 지나면
또 다른 세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꿈의 세계인지,
고대도시로의 시간 여행이었는지,
헛갈려하며 타프롬을 나와
하나투어 전용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67m 높이의 언덕 위에 위치한
프놈바켕 가는 길
프놈바켕은 야소바르만 1세가
룰루오스에서 앙코르로 수도를 옮긴 후
이 일대에서는 최초로 지은 사원이다.

위로 가는 것이 아니고
언덕을 끼고 산중턱으로 돌아서 가기 때문에
가파르거나 크게 힘들지는 않다.




5년전에 왔을 땐 저녁 무렵 올라가서
환상적인 일몰을 봤었는데
요즘엔 워낙 여행객들이그 시간대에 몰려와
안전상의 문제로 300명씩 끊어서 올려보내는데,
올라간 사람이 내려오지 않으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올라가지도 못한다고.
그런데 일몰을 보겠다고 올라간 사람이
해지기 전까진 내려올 리는 만무하고,
아래에서 몇 시간 줄 서 있다가
볼 일 다보기 때문에
일몰이 아름다운 프놈바켕을
일몰시간대를 피해서 올라왔다는....ㅠㅠㅠ























시바신이 타고 다녔다는 난디(소),
시바신을 보호하기 위해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단다.
프놈바켕이 세워졌을 당시
이 곳의 국교는 '힌두교'였다.
지금은 국민의 90%가 불교를 믿고 있다.




사원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은 가파르다.
1단에서 5단까지 오르는 계단은
경사가 70도에 이른다.




최상층 정중앙에 있는 신전은
108개의 탑들이 호위하듯 들러싸고 있다.
대부분의 탑들은 무너지고 훼손되어
원형을 잃었지만
탑이 가지는 위엄은 아지도 살아 있다.
하단에 총 44개의 석탑이 자리하고 있는데
동쪽과 서쪽에는 12개씩의 탑들이 있으며
남쪽과 북쪽에는 10개씩의 탑들이 있다.
1단에서 5단까지는 각 단마다
12개의 탑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전체적으로 총 60개의 작은 석탑이 있다.
그리고 최상층에는 동서남북
총 4개의 석탑이 중앙탑을 호위하고 있다.
프놈바켕 사원은 전형적인 5탑형인데
그것은 메두산 다섯 봉우리를 상징한다.
중앙탑에는 링가가 모셔져 있다.
링가는 시바신의 상징이며
프놈바켕은 시바에게 봉헌된 사원이다.




이 일대에서 최초로 지어진 사원이어서인지
훼손 정도도 가장 심했다.









프놈바켕 사원의 링가(남근석)
< br>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중앙탑




울창한 밀립의 끝 < br>저쪽으로 해가 진다.


































압살라 무녀도
이 부조 만큼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프놈바켕도 목하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




폐허 속에도 생명은 있다.
처연한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