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캄보디아

동행......그리운 이들께 쓰는 편지

올레리나J 2012. 3. 4. 16:05

 

 

 

 

공항에서 S님께

한 때 간절한 꿈이 파일럿이었다지요?

못 다 이룬 꿈을 자식들이 대리해 주길 바랐건만

어찌합니까? 태생적으로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데 부모가 자식의

꿈을 설계해 강요할 수는 없으니...

그 아쉬움이 무척 컸다는 걸 압니다.

가족 나들이를 공항으로 자주 데려가면서 저건 747이고 저건 어디 가는 비행기라는 등등 마치 전문가처럼 말하곤 했지요.

요즘도 드라이브 혹은 싸이클링으로 공항 근처를 매번 서성이다 오시곤 하는데 그때 느꼈을 상실감에 이내 가슴도 시립니다.

못 이룬 꿈에 대한 동경을 아직도 갖고 계신가요?

 

당신의 절실함에 비해 나에게 공항은 지극히 감성적입니다.

나와 연을 맺은 사람들을 보내는 이별의 아쉬움과 만남의 기쁨이 공존하는 곳이지만 톤레샵 에어를 타는 날의 인천공항은 약간의 흥분과 설레임의 장소였습니다.

 

자동출입국 심사 시스템에 등록을 하고 줄서서 기다리는 수고로움 없이

바로 출입국을 할 수 있는 첫 경험을 했군요. 첫만남, 첫번째, 첫사랑, 첫인상, 첫출근, ‘첫’으로 시작하는 그 신선하고 강력한 첫경험.....

익숙한 것에 길들여져 매번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는 나로서는 시도해 볼 엄두를 내지 않았는데 당신 때문에 작은 성취감을 느꼈어요.

 

그러한 마음으로 직장에서도 훌륭한 관리자가 되길 바래요.

고지식하다거나 기득권에 길들여진 요지부동의 융통성 부재로 동료들의 참신한 생각을 싹둑 잘라버리는 꽉 막힌 관리자는 아닐거라 믿어요.

 

많은 모임 중에서 당신이 인간적이어서 제일 좋다는 그 분들과 함께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군요.

그토록 좋아하는 비행기이지만 인천공항에서 씨엠립 5시간 45분, 씨엠립에서 하노이 1시간 40분으로 이어지는 하루 동안의 비행은 당신도 지겨웠을 거예요.

하나투어는 어떤 이득을 얻고자 이런 스케줄을 짤 수 있었는지 정말 혀가 내둘러질 정도로 그들의 사업수완 대박입니다.

여행 떠나기 전 내 불평의 단초도 바로 이 스케줄 때문이었지요. 서로의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는 이런 소비자들이 있다는 걸 그들이 알았던 것이지요.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어디 한 두 가지겠습니까?

알면서도 모르는 척 모르면서도 아는 척, 그냥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그 이유하나만으로 즐거울 수도 있는 것이 여행이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씨엠립 공항에서 대기 중에 겨울 내복을 겹겹이 껴입어 너무 더워 혼이 빠졌던 기억, 하노이 공항 앞의 캐논 선전 광고, 캄보디아를 떠나면서 다시 찾은 씨엠립 공항에서의 긴 기다림 그리고 헛웃음 나왔던 캐리어 사건들은 모두 공항이야기네요.

   

 

하노이에서 c님께

학(學)은 채우는 것이고 도(道)는 버리는 것이라지요.

버리기 위해 떠난 여행이 늘 완벽하게 버리지 못하고 정작 돌아오는 길엔 가득 채워오곤 합니다. 넉넉해진 마음, 긍적적인 사고 방식, 새로운 시각 등등 그런 의미에서 道는 실천하지 못하고 직업병인지 學은 충만해집니다.

선생님은 어떠세요?

 

날씨복, 가이드복, 일행복 여행의 3대복(福) 중 베트남은 날씨복이 따라 주지 않았네요.

작은 빗방울 알갱이들이 쉼없이 우리들 마음 가장 낮은 자리로 스며들며 속삭였습니다.

어쩌면 베트남 전쟁 중에 무수히 낙화하여 스러져간 한 많은 영혼들의 속삭임의 언어가 안개비였을지도 모릅니다.

 

매사에 긍적적일 것 같은 온화한 미소를 보여주신 선생님은 천둥 번개치는 사나운 날씨 아닌 것이 행복했노라고 말씀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하노이 호암키엔 호수의 호화롭고 이국적인 야경은 여행 첫날의 기분을 만끽하게 해주었지요. 우리나라와 다른 기기묘묘한 나무들이 호수를 감싸고 조명이 호수 안에 해파리 떼를 풀어 놓은 것 같았습니다. 베트남인들이 국조로 생각한다는 리왕조의 이태조 동상 앞은 젊은이들의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인라인을 타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말로만 듣던 오토바이의 물결이 환타지 영화의 우주선 포격처럼 우르르 몰려오고 또 몰려갔지요.

 

여자들의 로망은 모피코트 입는 것이고 남자들은 할리 데이비슨 타는 게 로망이라던데 선생님도 그런 로망을 갖고 계신지요?

남편과의 첫 데이트가 오토바이 타고 산사에 가는 것이었어요.

남편의 허리를 잡았는데 그 촉감이 갑옷을 입었거나 철판을 두른 것처럼 단단하여 깜짝 놀랐어요. ‘이 사람이 복근에 무슨 짓을 한거여? 직업이 교사 맞어?’

운동으로 다져진 그때 그 복근은 다 어디로 가고 지금은 출렁출렁한 쿠션 좋은 배를 가진 평범한 아저씨가 되었을까요? ㅎㅎ

베트남의 교통은 사람과 오토바이, 자동차가 거대한 물결을 이루며 뒤엉켜 우리들 눈에는 무질서처럼 보이는데 그들은 숙달되어서인지 그저 물 흐르듯 흘러가니 종이 한 장 차이로 접촉하지 않고 서로 갈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문화수준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라는데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지요?

인도여행 갔을 때 사방이 쓰레기 투성이인데 사탕 먹은 작은 껍질도 버리지 못하고 쥐고 있다가 호텔에 와서 쓰레기통에 버린 기억이 나네요.

그럴 때마다 교육의 힘은 위대하다고 믿고 학생들에게 기본질서 교육을 철저히 해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답니다.

선생님도 동의하시지요?

 

바딘 광장의 호치민 시신이 있는 곳, 한 평이라도 농사를 위해 땅을 이용하라는 뜻으로 화장을 해달라는 유언을 했지만  베트남인들은 영웅인 호치민을 그대로 보낼 수는 없었는지 시신을 방부 처리하여 대리석으로 조성한 묘 안에 모셔 놓았다고 하는데 냉전시대에 교육 받은 나는 천하에 악독하고 잔인한 베트콩 우두머리가 호치민이라고 배웠어요.

많은 헐리웃 영화에서, 월남전에 참전한 우리나라 영화에서도 그렇게 그렸습니다.

베트남인들이 그토록 칭송하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훌륭한 서민 지도자였다는 걸 이번에야 알았습니다.

선생님도 저와 거의 동시대를 사셔서 저와 느낌이 비슷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알랑드롱처럼 멋지게 웃으면서 “맞아요.”라고 대답하시는 선생님 모습이 떠오르네요.

우리 나라도 지금의 난세에 이런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교육으로 이런 지도자를 길러낼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1975년 4월 30일 TV에서 보았던 베트남 패망소식 그리고 수많은 보트피플들이 각국으로 돌면서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죽기도 하고 부산 앞바다까지 흘러들어와 난민소가 생겼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피도 눈물도 없다고 호치민을 엄청 욕했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네요.

승리하는 쪽이 항상 반대파를 숙청하게 마련인데 그냥 탈출하도록 자유를 주었다니... 호치민은 정말 국민들을 사랑하는 지도자였음에 틀림없네요.

미안하게도 (누구에게 인지는 모르지만) 수상인형극 보면서 배경 음악을 자장가 삼아 달콤하게 졸았습니다. 처음 시작 5분과 끝 장면 5분을 제외하고는...

 

선생님은 하노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어떤 것인지요?

저는 그 옛날 베트남의 가장 중요한 운송수단이었던 호치민을 닮은 시클로  투어였어요.

베트남에서도 점점 사라져가는 정겨운 시클로를 마님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호사스런 시간을 가졌었지요. 하지만 아마도 우리 일행 중에 선생님이 가장 대감 포스에 어울렸을 것 같아요. 아쉬운 것은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 지금은 씨클로 대신 오토바이가 잠식해 그로부터 나오는 매연이 심하고 코스가 호수 주위 일주였음 더 좋았을 거라는 것... 아, 그리고 선생님 운전수는 음주 기사였다면서요? 또 운행 중 노상방뇨한 운전수도 있었다면서요?

 

굿바이! 하노이......

이번 여행에 같은 일행이 되었음을 감사드리고 항상 건강하시고 다음 여행은 사모님과 두 손 꼭 잡고 함께하시길 바래봅니다.

 

   

 

하롱베이에서 d님께 

여행 후 가장 바쁘실 선생님,

선생님 프레임 안에 우리들의 흔적들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요?

그것을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계시겠지요?

새벽 한시의 라디오에선 째즈 음악이 흐릅니다.

가족들의 평안한 숨소리가 그 선율에 가사로 입혀지고 지금 창밖의 온도는 몇 십년 만에 찾아온 한파로 인하여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따뜻한 거실 바닥에 엎드려 노트에 연필을 끄적거리고 있는 나는 선생님처럼 고요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항상 에너지 넘치는 열정으로 인생을 치열하게 살고 계신 선생님을 볼 때마다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평안함에 안주하지 말기, 게으름에 주저 않지 말기, 피곤함에 지지 말기, 내게 주어진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가기....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1,500제곱Km에 걸쳐 3,000여개의 작은 바위섬들이 펼쳐진 용이 내려온 바다 하롱베이를 회상하며 이 편지를 씁니다.

누군가를 떠나 보낸 사람은 늘 그 사람으로부터 날아오는 편지를 그리워하게 됩니다.

그 곳의 날씨는 어떠한지, 그 곳의 일상은 어떠한지, 과연 나만큼 나를 그리워하고 있는 건지, 과연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 중에 더 큰 그리움은 누구의 몫인지, 편지가 아니면 확인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오늘, 편지를 씁니다.

 

파도가 없는, 갈매기 없는, 갯내음 없는 3무의 바다 하롱베이는 오늘도 안개비에 휩싸여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병사들이 이런 목선을 타고 우리나라 바다를 침략했을까요?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은 이 배의 포스보다 더 웅장했겠지요?

수묵화와 같은 기암괴석의 아름다운 모습이 바로 눈앞에 다가섭니다.

호수같이 잔잔한 해면 위에는 용섬, 원숭이섬, 거북섬이 있고, 섬의 모습은 돌밀림, 돌선인장, 유령, 마법사, 들소, 코끼리 모양 등으로 시시각각 변합니다.

갓을 쓰고 유려한 곡선의 한복을 입은 최샘에게 하롱베이는 최고의 배경입니다. 아주 잘 어울립니다.

쉼 없이 눌러대는 셔터소리는 자연애(愛)를 노래하는 음악입니다.

프레임 안에 사람을 담는 행위는 인간애(愛)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오른 손 엄지 손가락이 저릴 만큼 사람을 사랑하겠지요?

자연을 사랑하겠지요?

선생님은 하롱만에서 몇 번의 셔터를 누르셨는지요?

 

선상에서 먹었던 다금바리회의 섬세한 미각과 식감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신지요?

하롱베이의 최고의 전망대 티톱섬에 올라 바다를 굽어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호치민의 절친인 구 소련의 우주비행사 티톱에게 바친 의리의 섬에서 나는 이런 절친이 있는지. 그런 절친이 되어줄 수 있는지를 생각합니다.

티엔 석회암 동굴의 신비는 동유럽 여행 때 포스토니아 야마동굴이 너무나 강렬해서 그 어떤 동굴을 데려와도 감흥이 새롭진 않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비극이지요.

선생님은 두 서양 미녀의 키스세례를 받은 곳이라 더 오랫동안 행복한 기억으로 남으실 테지요?

이번 여행의 시간과 공간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우리가 함께 보았고, 걸었던 길의 흔적들을 기다리면서....

 

 

 

 

 

앙코르톰에서 K님께 

캄보디아의 겨울은 뜨거웠습니다.

강렬한 태양에 몸을 내놓았다간 삶은 고구마가 될 형국입니다.

최선생님께서는 학생들과 캄보디아의 더위만큼 늘 뜨거운 열정으로 함께 하시지요?

캄보디아 여행 포스터에 붙어있는 인자한 미소의 주인공은 바이욘 사원에 있었습니다.

‘크메르의 미소’로 유명한 그 사진을 어디에선가 한번쯤은 선생님도 보셨을 거에요.

거대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 작아서 실망하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이 사원에 있는 동안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발걸음 내딛는 곳마다 온화한 미소를 보내주는 그분이 계셨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사원을 나오면서 ‘그래도 난 우리나라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미소가 제일 좋아.’ 되뇌었지만요.

최선생님은 우리나라 문화재 중에서 무엇을 제일 좋아하나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위대한 건축물이 자연의 섭리 앞에 얼마나 하잘 것 없는지 일깨워 주는 곳이 바로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의 극랑왕생을 비는 마음에서 12세기 말, 13세기 초에 바욘(Bayon) 양식의 타프롬 사원이지 싶어요.

선생님은 가장 단단하다는 석조물을 뚫어버린 스펑(Spung) 나무의 뿌리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뽕나무는 상황버섯을 암덩어리로 키우고 오디를 맺어 인간에게 사랑받아왔습니다.

뽕나무의 돌연변이로 환생한 스펑나무는 그 씨앗이 돌을 뚫고 뿌리를 내려 사원과 뒤섞여 한 몸이 되어 천년을 살아왔습니다.

사람들은 나쁜 유전자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사원을 망칠까봐 성장억제제를 투여해 스펑 나무는 성장을 멈춰야했고 거대한 사원을 짊어지고 오늘도 식물의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모두 다 돌과 싸워 이긴 그의 업보일 테지요.

쭉쭉 뻗은 단단한 나무처럼 보이지만 스펑 나무는 자르고 보면 속이 텅 비었다지요? 겉모습은 단단해 보이지만 소년의 심성을 갖고 계신 선생님과 닮지 않았나요?

학생들과 다정한 친구같이, 때론 자애로운 모정으로, 엄하신 아버지처럼 채찍과 당근, 올곧은 품성으로 제자들과 함께하시는 모습이 상상이 됩니다.

부정하시지는 않네요. ㅎㅎ

 

한낮의 더위를 이겨가며 15분 정도 걸어 낮은 산을 올라 프놈바켕 사원을 봅니다.

70도의 가파른 경사를 직립보행을 포기하고 네발로 기어 오릅니다.

사원이야 앞에서 봤던 여러 사원과 별반 다른 바 없으나 사람들이 이곳을 오르는 이유는 오직 하나 바로 지평선으로 떨어지는 아름다운 낙조를 보기 위해섭니다만 가이드는 인산인해의 피폐와 관리인이 내쫓는다는 이유를 역설하며 일몰 시간대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2007년에 이미 경험한 터이지만 다시 보고 싶었고 남편이 유달리 명품같은 일몰 사진에 목말라 했으므로 어쩜 오메가를 포착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기도 했었습니다.

선생님도 사원 넘어 하늘이 노을에 몸을 맞기며 붉게 타들어가는 고풍스런 일몰 광경을 보셨으면 이번 여행이 더 기억에 남으셨을 텐데 못내 아쉽네요.

 

남편과 나는 지금 캄보디아를 각기 다른 방법으로 회상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컴퓨터 방에서 사진 작업을 하고 저는 FM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감미로운 팝송 가락에 귀를 열어 놓고 노트북으로 단어 조합을 하는데 왜 이리 더딘지요?

맘속에서는 느낌이 꿈틀거리는데 알맞은 문장으로 되살리려니 뇌세포들이 뒤엉켜 한참을 멍한 상태로 있기 일쑤입니다.

 

선생님은 이번 여행이야기를 사모님이나 가족들에게 어떤 식으로 전달하시는지요?

아무리 말로 잘 설명해도 직접 보고 느낀 것만큼이야 하겠습니까?

다음 여행 때는 사모님과 꼭 함께였음 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소원성취하시길 빕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왕코르와트에서 s 선생님께

 

천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세계 최대의 석조 사원 앙코르와트는

캄보디아를 대표하는 유적지임에 틀림없어요.

선생님도 동의하시지요?

어쩐지 앙코르와트가 선생님 이미지와 참 잘 어울려 이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현대의 건축 기술로도 최하 100년을 걸릴 거라는 이 건축물을 크메르인들은 37년만에 완벽하게 지어 세계7대 불가사의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지요?

해가 지는 서쪽에 정말 사후세계가 있을까요?

선생님은 사후세계를 믿나요?

힌두교의 사후세계는 죄를 지은 자는 그 빚을 갚기 위해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해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고, 착하게 살다간 자는 자유로워진다고 합니다. 불교의 윤회사상과도 비슷하네요. 왕은 사후세계를 위해 앙코르와트에 집착하며 그렇게 빠른 시일 내에 3.6킬로미터 직사각형 해자를 파고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규모가 큰 이 사원을 만들었을 테지요? 크메르 건축의 극치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이 예술품을 완성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크메르인들이 울었을까요?

크메르의 장인들이 내려치는 정과 끌 소리가 어디까지 울려 퍼졌을까요?

메콩강은 앙코르와트를 이루는 돌들을 운반하느라 얼마나 세찬 물살을 내보내야 했을까요?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선생님은 양조위, 장만옥 주연의 잔잔한 멜로 영화인 <화양연화>를 보셨는지요?

보셨다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의미한다는 화양연화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나시는지요?

이웃의 여인 리첸 (장만옥)과 느리고도 아픈 사랑을 지우며 살아가던 차우(양조위)가 앙코르와트의 돌기둥 앞에 서 있습니다. 천년 세월을 견디고 있는 기둥의 작은 구멍에 대고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합니다. ‘지나간 날들을 기억한다. 먼지 낀 창틀을 통하여 과거는 볼 수 있지만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였다.’ 사랑을 영원히 가슴에 간직하기 위해 앙코르와트에 사랑을 묻고 나오는 그의 쓸쓸한 뒷모습이 아직도서늘하게 남아있습니다. 석벽들을 어루만지며 양조위의 흔적을 찾아보았으나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앙코르와트에 어떤 비밀을 묻고 싶나요?

 

우리는 미물계와 인간계에 머물다 왔습니다.

2007년 75도의 경사진 계단을 몸을 낮추고 낮춰 겸손한 마음으로 천상계를 올랐지만 범접할 수 없는 신의 영역에 발을 들여서인지 내려가지도 못하고 또 계속 머물 수도 없는 공포가 내 두 다리를 묶어버렸습니다. 1분에 한걸음씩 사시나무 떨 듯하며 겨우 인간계에 발을 내려 놓았지요. 결코 천상계를 탐하고 싶지 않습니다.

 

앙코르와트의 일출을 보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사진에서 보면 다섯 개의 탑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은 해자에 붉은 물감을 뿌리면서 위용을 나타내던데 말이지요.

 

선생님,

후드티에 모자 쓰신 모습은 10년은 더 젊어 보였어요. 선생님은 얼굴이 귀족적이어서 베레모나 중절모 등 모자 패션도 어울릴 것 같아요.

선생님 모습에서 사리분별력 정확하고, 반듯한 이미지가 느껴져요. 항상 건강하시구요,

지금 이 순간이 늘 화양연화이시길 바랍니다.

 

   

톤레샵 호수에서 M 선생님께

 

지금 라디오 FM에선 태양의 서커스 퀴담 노래가 흘러 나오네요.

선율이 한겨울 야심한 밤과 잘 어울리는데 선생님의 애마 오토바이 타면서 한강 주변 달리실 때 들으면 대박이실 거예요.

 

바이칼 호 다음으로 큰 호수인 톤레샵 호수는 동남아 최대의 호수라는데 정말 바다처럼 넓지요?

2007년의 톤레샵이나 5년 후인 2012년의 톤레샵은 달라진 것을 크게 느끼지 못하겠어요.

선착장이 새로 만들어졌고, 차량 입장료 받는 것 정도랄까요?

냄새도 그때 보다는 좀 덜한 것 같기도 하구요.

배를 탈 때 현지 아이들 2명이 선장을 도와 일을 하면서, 관광객 어깨 주물러 주고 팁을 받는 신종 직업도 보이네요.

그때도 있었는지 모르지만 수도인 프놈펜을 연결하는 수상 정기노선을 배낭 여행객들이 이용하고 (주로 구미쪽이었지만) 물이 차오르는 우기엔 시엠립, 캉폼참, 바탐방을 연결하는 노선도 증설된다는 이야기도 새로 들었어요.

 

2007년엔 톤레샵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로 충격을 받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캄보디아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이곳 사람들의 소득이 육지에 사는 사람들의 소득보다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풍부한 어획량과 찾아오는 수많은 관광객이 뿌리는 달러, 각국에서 지원된 편의시설 때문에 톤레샵 사람들의 형편은 땅 위의 사람들보다 오히려 잘 살구요.

 

하지만 아직도 유람선 가까이에 쏜살같이 배를 몰고 와 까맣게 썩어가는 몽키바나나를 내놓으며 달러를 외치던 소녀의 두 눈동자가 오래도록, 슬프게 기억에 남아 있네요.

 

씨엠립 공항에서 하노이행 비행기편을 기다리며 일본 작가의 캄보디아 사진첩을 보았어요. 톤레샵 호수에서 그물 던지는 소년의 찰라 모습은 멋지기만 하던데 그들의 삶도 이렇게 멋진 나날이었으면 좋겠어요.

 

까마득한 수평선으로 무지개가 뜨고 파란하늘에 흰구름 서넛 떠 있던 사진속의 청량함도 많은 관광객들이 언젠가는 느끼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뱀을 목에 두른 소녀, 린 아이를 담보로 1달러를 외치는 비정한 젊은 엄마의 구걸이 아니라 좋은 관광 상품을 만들어서 정당하게 장사를 하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어요.

 

 전쟁을 피해 여기까지 오게 된 베트남 사람들의 수상촌은 이제 톤레샵 호수의 명물이 되어 일반 가정집 뿐만 아니라, 학교, 교회, 가게, 관공서, 병원 등 다양한 시설들이 들어서서 수상촌 위의 사람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지만 그들이 정체성을 갖도록 호적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캄보디아는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싶어요. 권력층, 기득권, 공무원들의 부정부패가 만연해 성장을 위한 동력이 상실되어 있는 점, 캄보디아 입국 수속 때 경찰들이 웃돈을 공공연하게 요구해 많은 관광객들의 불만이 있던데 부디 훈센 총리가 호치민처럼 국민들을 위한 정책을 폈으면 좋겠어요. 훈센 이후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났으면 좋겠어요.

 

선하게 웃어주던 맑은 눈의 아이들이 풍족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행복지수’ 조사에서는 방글라데시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니 그게 다행인지, 달리 생각하면 불행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듭니다.

발전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없을 테니까요.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르 메르디앙 호텔에서 O씨님에게... 

오늘 O씨님에게 호텔과 의상에 대해서 편지를 쓸까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새울음 소리를 들어본 지 참 오랜만이었어요.

숲으로 둘러 쌓인 아담한 르메르디앙 호텔에서이지요.

사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기대했던 것이 하나투어에서 내세운 『호텔 감동 200% 쉐라톤 · 르메르디앙』이었어요.

아름다운 정원과 호수가 보이는 하노이 최고의 호텔 쉐라톤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이묵었고 대우 김우중 전회장님의 특별룸이 있다는 대우호텔로, 하롱만이 내려다보이는 하롱베이의 세련되고 깔끔한 로보텔에서 하노이로 슬쩍 바뀐 것이 못내 아쉬웠어요.

남편이 구글에서 로보텔을 검색한 후 호텔이 멋지다고 이번 여행을 마뜩찮아 하는 내게 “아침에 그림처럼 아름다운 섬들 사이로 일출을 보면 차원이 다른 감동을 줄거야.”라고 당당하게 말했거든요.

남편은 하나투어의 여행 상품에 낚였고, 나는 남편 말에 낚인 거 맞지요?

 

캄보디아의 르메르디앙 호텔은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머무른 그 어떤 호텔보다 멋졌어요. 호텔 주변에 널다랗게 드리워진 고풍스런 녹색 정원이 앙코르와트를 닮은 낮은 호텔 건물을 에워싸고 산소를 쑥쑥 뿜어내주는 것 같았지요.

그 아름다운 호텔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갖지 못했게 영 아쉽네요.

반 나절 정도 호텔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을 수 있도록 시간을 배려해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시간적으로 충분했을 것 같았는데요.

수영장 파라솔 아래 두 다리 쭈~욱 뻗고 편하게 누워 지나가는 구름에 눈길을 주고, 떨어지는 꽃잎에 인사도 하면서 일행들과 거대한 담론이 아니더라도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 나눴으면 두 최샘, 김샘과 더 가까워 졌을 텐데 못내 아쉬움으로 남네요.

O씨님도 그런 생각 하셨는지요?

 

한마디씩 대박 유머를 터뜨리는 은선씨가 떠올라 제 얼굴에 미소가 번지네요.

티톱섬 등산이 제겐 종아리에 알이 베고 심장에 무리가 들 정도로 부담스러웠는데 운동으로 몸 관리한 은선씨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니 많이 부러웠어요.

 

이번 여행의 O씨 의상 선택이 탁월했어요.

르메르디앙의 녹색 정원과 보색대비 붉은색이 세련된 은선씨와 참 잘 어울렸거든요.

베트남 바딘 광장에서 프랑스 할머니들 만났을 때 보라색 꽃무늬 상의에 진보라 알라딘 바지를 코디했는데 남편의 “이상해.” 한마디에 벗었지요. 사진에서 보니 뒷모습만 아가씨인 워스트 패션이 되어버렸어요. 특이한 걸 좋아하는 나의 패션감각과 반대인 남편과 의견 충돌이 잦지만 항상 내 생각대로 입는데 여행 중이라 맘이 약해졌나봐요. ㅋㅋㅋ

김샘은O씨님 패션에 대해 어떤 조언을 해 주시는 지 궁금해요.

 

 

 

 

 

 

 

 

 

여행을 끝내며 H씨에게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전 국토가 한파로 꽁꽁 얼어붙어버리네요.

한파 예보도 거들었지만 여행 후 얼마나 피곤하던지 연수를 포기했어요.

집안일도 밀렸고, 개학 준비도 해야 했고, 빌려온 책도 읽고 싶었고, 무엇보다 푹 쉬고 싶었어요. 그 이유를 대자면 끝도 없을 거에요.

전철도 멈춰 섰다니 포기를 아주 잘한 것 같아요.

H씨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몸은 괜찮지요?

여행이 낯설고 새로운 것들에 대한 맹렬한 호기심이 동력(動力)이라면 나의 두 번째 캄보디아는 내 마음으로부터 동력을 얻지 못했어요.

남태평양의 휴양지 뉴칼레도니아, 대한항공이 새로 취항한 필리핀 팔라우에 마음을 빼앗겨 거기 가자고 남편을 졸랐는데 요지부동이었지요. (남편은 이 모임을 너무 좋아한답니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두 번째는 맥이 빠져요. 아마 호기심이 없어지기 때문이겠지요.

완전 똑같은 여행 코스는 (일몰도 못보고 2007년보다 못했어요) 신비감이 없었지요. 여행 방법을 달리 하여 배낭여행이었다면 그 나라 문화를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또 다른 흥미가 생겼을지도 모르겠어요.

가이드의 말처럼 두 번, 세 번 가는 사람들은 문화를 접하러 가는 것이고,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이지 문화재 훑어보러 가는 것은 아닐 거예요.

 

 

하지만 남편과 함께 했고 또 일행이 좋은 분들이어서 재미있는 여행이었다고 마음속에서 속삭이네요. (크메르의 미소를 다시 보았잖은가?)

 

카메라 동호회 활동한 것처럼 사진 보는 재미도 쏠쏠할 거구요. 달진샘이 만들어 주실 책자는 두고두고 자산이 될 거에요.

 

H씨,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다음 여행 때는 그냥 모든 음식을 현지 적응하도록 합시다. 그게 진정한 여행의 묘미 아닐까요?

끝으로 저는 헤르만 헤세처럼 진정한 방랑자가 되고 싶답니다.

 

‘방랑자는 인간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향락을 누리는 사람이다.

기쁨이란 한 때 뿐이라는 걸 머리로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직접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방랑자는 잃어버린 것에 연연해하지 않으며 한때 좋았던 장소에 뿌리를 내리려 안달하지 않는다.‘

H씨는 어떤가요?

 

 

 

 

수끼(SUKI)를 먹으면서 J에게

 

베트남 전통 쌀국수, 호텔 뷔페, 국적을 알 수 없는 여러 요리들을 맛보았는데 J이는 수끼(태국식 샤브샤브)가 제일 맛있다고 했지?

인생을 살면서 수끼처럼 맛있는 것만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때론 짠 것도 먹어야하고, 매운 것도 먹어야 하고, 신 것도 먹어야 할 때가 있을거야. 하지만 욱이 인생의 밥상에는 항상 맛있는 것만 있길 빈다.

태국 여친과는 오랜만의 재회에 엄청 반가웠겠구나?

이번 여행 스타일이 맘에 안든다고 툴툴거렸지만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많을 거야.

와이파이 잘 터지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 깨끗하고 질서 잘 지키는 우리나라가 제일 좋다는 것도 알았다고 했지? 그렇게 좋은 우리나라 망신시키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 주관이 명확한 자욱이는 잘 알고 있어서 뿌듯했단다.

현재 우리나라 고교생인 너의 현실은 정규수업과 보충수업 그리고 야간자율학습으로 이루어진 고달픈 하루하루가 되겠지만 그럴 때마다 이번 여행이 조금이나마 너를 미소짓게 했음 좋겠다.

농담도 잘 하고, 윙크하며 멋진 포즈도 취하고, 누구하고나 대화가 되는 너의 사교성에 박수를 보낸다. 우리에게 비타민 같은 활력소가 되어 줘서 고맙고

앞으로의 삶에서 자신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면서 살아가기를.......

“와이파이 잘 떠요?”

 

 

 

 

추신(追伸) 

제 블로그에 초대합니다.

<자운영 그 여자> http://blog.daum.net/ahtpal/

작은 것에도 행복해하고, 소소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누군가를 만나면 설레이고, 하찮은 음식도 맛있게 먹을 줄 알고, 별 재능은 없지만 글을 쓰고, 비록 오토모드지만 사진을 열심히 찍고, 찍히는 것도 좋아하고, 평발이지만 걷기 좋아하고,

게으르지만 호기심이 많은 여자의 평범한 일상이 있는 곳 <자운영 그 여자>

불특정 다수가 찾아오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그 여자와 어떤 식으로든 인연을 맺은 지인들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