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도심은 회색빛으로 둘러 쌓여있었어
오전 내내 이슬비가 내렸어
회색빛 매연은 비에 말끔히 씻겨내렸나봐
산에 갔어
숲에 발길을 놓기가 무섭게
아카시아 향기가 내 코끝을 향해 일제히 달려왔어
코를 킁킁대며 애써 맡지 않아도
진한 향수처럼 내 온몸에 향기를 뿌려댔어
어렸을 적 따 먹던 꽃잎하며
가위바위보로 이긴 사람이 한잎두잎 떼어내던
나란한 아카시아 이파리들과
하얀 찔래꽃도 한창이더군
엄마가 모내기한 집으로 저녁을 얻어 먹으러 가서
어른들이 한참 이야기 꽃을 피울때 난 잠들곤 했어
잠든 나를 업고 엄마는 달빛을 벗삼아 집으로 오곤 하셨지
하루종일 등이 휘도록 모내기를 하셨을테지
자꾸자꾸 걸어오시면서 나를 추켜세워 다시 업곤하셨어
그때 보았어
달빛에 새하얀 찔래꽃이 서럽도록
지천으로 피어있는 것을......
깨어 있으면서도 엄마등이 너무 포근하여
자는 척 했었지
지금도 난 아프면 남편한테 자주 업어달라고 하지
아프지 않아도
이젠 내가 업기엔 너무 커버린 아들 녀석에게도
자주 업어달라고 하고
새 칡넝쿨이 제법 줄기를 많이 뻗고 있었어
적당히 부드러운 부분을 꺾어 껍질을 벗겨 낸 다음
씹어 보았어
달큰한 물이 입안에 고일 때까지 계속 먹어보았어
옛날 맛은 아니었지만 산 중턱까지 오른 나에게는
물보다도, 2% 음료수보다 더 달콤했어
해발 395m 정상에서 온 몸으로 녹색의 푸르름을 받아들였어
이따금 꿩도 짝을 찾는지 울어댔고
소쩍새도 딱 두 번 울었어
산비둘기인지 부엉인지도 울었어
난 부엉이라고 우겼고
남편은 산비둘기라고 우겼어
그때였어
무지개가 떴어
시골을 떠난지 네번째 보는 무지개였어
아무도 보지 못했어.
내가 탄성을 지르니까 그때서야 사람들이 쳐다보았어
사람들은 하늘을 잘 보지 않아
나는 항상 하늘을 보며 살지
아침에 깨자마자 아파트 베란다에 나가서 하늘부터 올려다보지
운동장 조회 시간에도 난 하늘을 쳐다봐
하늘은 내 고향이야
그러면서 항상 산을 동경하며 살지
내가 최후에 갈 곳도 아마 산이 되겠지
무지개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어
그것처럼 허망한게 또 있을까?
무엇이든 아름다운 것은 잠깐이더라
미인박명이라는 말도 있잖아
내일은 날씨가 좋으려나봐
산을 내려오는데 산 뒤로 붉은 노을이 타고 있었어
또 일주일은 오늘 얻은 녹색으로 수혈된 피로
웃으면서 활기차게 살아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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