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의 일상/자운영의 흔적

손가락이 길어 슬픈 자운영

올레리나J 2009. 10. 13. 16:36

아버진 향동마을의 조씨 어느집의 3대 독자셨대
귀하게 크셨겠지
일제 시대때 지막리 엄마와 결혼하여
일본에 건너가 막노동을 하셔서
큰 오빠와 작은 오빠를 낳으시고
해방이 되자 가진 것 아무 것도 없이
한국으로 나오셨대
한량이셨던 아버지 때문에 그때부터
어머니의 고된 삶이 펼쳐진거지
날품팔이하며 수저부터 장만하고
밭이랑 논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샀고
나를 낳고 지금의 모세미 집을 지으셨다는군.
나는 촌부의 딸답게 일도 야무지게 잘하고
부지런해야 했으나 이상스레 남보다 일을 못했어
미자랑 나물을 캐러가도 미자 바구니는 가득 찼는데
내 바구니는 초라했고
나무를 하러 가도 그앤 산더미 같이 하는데
나는 홀쭉했고
바다에 굴을 캐러 가도 양푼에 가득 딴 그애 걸 보면
주눅이 들곤 했어
최근에야 이유를 알았지
1년전 방학 때 시골에 갔는데 마침 미자가 와 있었어
바로 우리 뒷집이어서 동짓죽이 먹고 싶다니까
우리 올케가 동지죽 새알을 만드는데
그애랑 같이 만들게 되었어
미자가 다섯개 만드는데 나는 3개를 만들고 있더군
그때서야 알았지 미자 손은 엄청 크고 빨랐어
내 손가락은 너무 길어
중학교때 국어 선생님께서 예술가 손가락이라곤 하셨지만
쉽게 말하면 선천적으로 게을러 터진 손이지
밭일, 논일, 산나무하러 다니는 일, 안 해 본일이 없지만
시간에 비해 얻는 것은 아주 조금이었을거야
아직도 일하는 게 서툰것 같어.
지금 이 나이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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