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TV에서 누렇게 익은 끝도 없는 넓은 보리밭에
한 점 작은 기계가 스스슥 지나가면
보릿대는 눕고 알곡들은 푸대를 부풀려
나가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겨울에 보리밭에 있는 김매기로 손이 꽁꽁 얼었고
봄에는 적당히 익은 보리를 불에 태워
손 후후 불며 비벼 먹고
깜부기 뽑아서 친구 얼굴을
까만 흑인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친구들과 밤에
파란 보릿대를 발로 밟아 눕혀놓고
그 위에 누워서 별똥별 떨어지는 것도 보고
간식으로 한 웅쿰의 쌀을 가져와 씹어먹으면
하얀 찔레꽃 향기도 코끝에 매달리곤 했습니다
보리피리도 만들어 불었군요.
구성진 보리피리 소리와
앞산 소쩍새가 구슬피 울어주어 그 설움으로
보리는 여물어 황금색으로 변했지요.
식구들 따라 낫을 들고 보리를 베러 가면
햇빛은 머리로 따가운 햇살을 사정없이 퍼부었고
지금은 조그마한 밭이 왜 그리 넓어보이던지....
베도베도 끝이 올 것 같지 않아
해찰을 부리다 혼나기도 했습니다
다 벤 보리를 새끼로 묶어 오빠는 지게로
어머니와 올케언니는 두세단씩 나는 한단씩 머리에 이고
집으로 가져와 동네에 있는 탈곡기가
우리 차례가 올 때까지
마당 한 가운데 커다란 보릿단을 세워놓았습니다.
숨박꼭질하는데 그만이었지요.
탈곡기가 돌아갈 때 보리 특유의 꺼칠꺼칠한 가시가
옷속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불쾌하게 따갑던지요.
탈곡한 후 몸 여기저기에 생채기가 났지요.
한때는 밀보리를 심어 그걸 오래 씹으면
껌처럼 쫄깃쫄깃해서 껌이 귀하던 시절을 대신하였습니다.
고향의 보리밭은 지금쯤
탈곡기가 돌아갈까요?
아님 기계가 스르륵 한 번 지나갈까요?
친구들은 보리밭의 어떤 추억을 갖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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