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 고개
오늘이 소만이라고 합니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보리가 익어가고
수확하기도 전에 곡식이 떨어져
주린 배를 움켜잡고 보릿고개를 넘어야했던
우리 조상님들 아니, 나의 어린 시절....
이 무렵 보리밭에서 친구들이랑
보리서리 해먹던 기억이 납니다.
적당히 여물었을 때 낫으로 보리 윗부분을 베고
근처 산에서 삭정이 나뭇가지를 주워다 불을 펴서
생보리를 통째로 구워 알맞게 익으면
두손으로 비비고 후후 불어 껍질을 날려버리고
한손에 가득 구운 보리를 입에 털어넣습니다.
쫄깃쫄깃한 맛!
아직도 그 맛의 기억을 잊지 못합니다.
손과 입은 숯검뎅이로 시커멓게 묻었지만
맛있는 것을 먹고 났을 때의 그 행복감을
무엇에다 견주리오?
콩이 나올 때는 콩서리, 고구마 서리...
동네 간 큰 오빠들은 닭서리까지......
지금은 절도죄로 고소 당한다지요?
그것보다도 나, 미자 ,땅기미 옥순이, 막내등과
보리밭을 돗자리 삼아 넓게 편 다음
쌀을 가지고 와 간식으로 먹으면서
저녁 늦게 까지 별을 보며,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하고
설핏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보릿대 때문에 옥돌매트에 누운 것처럼 약간 등이
배기던 것까지 생생합니다.
그 싱그러운 보리 익어가는 냄새며, 살랑거리며
살갗을 애무하던 바람결까지 다 느껴집니다.
지금은 비록 회색빛 도시에서 오염된 공기를 마시며
살지만 내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한 나는 아직도
옛날 그 시절을 다시 살고 있습니다.
비록 고통스런 기억일지라도 지금은 다 내 행복의
원천입니다.
바람에 출렁거리는 그 짙푸른 녹색의 보리밭이 눈앞에 선합니다.
200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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