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소도 사료로 키운다구요?
연한 풀들이 한창인 요즘, 소가 좋아하는 풀밭이
지금도 모세미 어디인지 꿰뚫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하는 일은 나도 다 했지만 하기 싫은 일 중의 하나가
바로 소 풀 먹이러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미자네 재철네 우리집 세 가호 중에
미자네는 소가 없었고 재철네는 남자 형제들이 많아
일도 아니었겠으나
나는 늘 혼자였습니다.
그 시절 소는 사람보다 더 소중하게 키웠습니다.
노동력의 원천이었고
송아지는 목돈 마련의 유일한 길이었으니까요.
학교에서 조금 놀다 올라치면
그날은 야단과 핀잔의 날입니다.
혼자 소를 몰고 그 긴 오후를 밭두렁 논두렁 돌아다니며
호시탐탐 맛있는 농작물을 먹으려고
기회를 엿보는 소도 감시 해야하고
오늘은 어디로 끌고 갈까 고민도 많이 해야했습니다.
특히 여름철 잠도 부족한데 아침 일찍 깨워
밖으로 내보내는 식구들 원망을 많이 했습니다.
고무신 신고 잠도 깨지 않은 상태에서
이슬을 털며 풀밭을 걷는 느낌은 오싹했으니까요.
나중에는 바지 가랭이까지 축축해져서 그 느낌이
정말 싫었습니다.
그러고는 아침을 게눈 감추듯 바삐 먹고 학교에 갔습니다
하루는 하도 지겨워서
아마 봄햇살이 따스한 요즘이지 싶어요.
모처럼 산등성이로 갔는데 잠이 스르르 오는 거에요
그래서 소를 나무에 묶어놓고 실컷 자고 일어났더니
어둑어둑해져 집으로 돌아왔지요.
내 딴에는 그래도 배를 불린다고 물 있는 곳으로 데려가
물을 마시게 했지만요.
그런데 이놈의 소가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집으로 오자마자
코를 킁킁대며 오빠가 베어다 놓은 깔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
또 배가 홀쭉한 것을 오빠가 알고는 또 죽도록 야단맞았습니다.
한번은 제법 깊숙한 숲으로 갔는데
졸다가 고삐를 놓쳤나봐요.
울며, 두려움에 떨며 집으로 와서 또 야단 맞고
식구들 모두 향동으로 가서 소를 찾아 왔습니다.
이 놈의 소가 평소에 살갑지 않은 내게 복수랍시고
산을 넘어 향동으로 도망갔나봅니다.
난 울먹이며 가슴을 쓸어내렸지요.
5,6학년 때는 항상 옆에 책을 끼고
다녀서 별로 심심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소가 길 옆 남의 농작물 맛있게 먹어치우는걸
눈치로 알면서도 모른척 하기도 했지요.
내 위로 언니 오빠가 나이 차가 많아서
집에 소 관리할 사람은 나 뿐이었습니다
그 땐 소도둑도 참 많았지요.
잠 자고 일어나 외양간에 소가 없으면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맨 먼저 벽파로 달려갑니다.
배를 타고 가야하니까.
설마 같은 진도 사람이라고는 생각을 아니 하셨던 것 같아요.
용한 점쟁이한테 어느 쪽으로 가야 찾을 수 있는지
물어보러 가는 사람도 있었구요.
우리집 소 나한테 많이 얻어맞기도 했습니다.
내가 오빠나 엄마한테 꾸중듣는 만큼,
내가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은 만큼,
내가 낮잠 자고 싶은 만큼,
내가 새벽에 이슬 털고 풀밭을 걸은 만큼......
화풀이를 해대었으니까요.
언젠가 이중섭의 작품집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나한테 맞은 그 소가 나를 째려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큰 두 눈을 뜨고
나에게 달려올 것 같아서
얼른 대충 감상 아니, 훑어보고 말았지요
지금 생각하면 참 미안한 일이지요.
참으로 외롭고 쓸쓸했던 나날이었습니다만
덕분에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요즘 등산 다닐 때 소가 잘 먹던 나무순이나
연한 풀잎을 보면 꼭 소가 생각난답니다
얼마난 잘 먹을까하고......
2004.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