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이 만나는 터키

친구들, 로마의 역사속으로 스며들다.

올레리나J 2011. 8. 11. 09:54

도시의 삭막한 분위기의 호텔이 아니다.
산골마을의 조용한 리조트풍의 호텔이다.
주변 풍경이 남국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새소리에 잠을 깨다니...
내가 얼마나 원하던 자연의 알람 소리인가?
파도소리에 잠을 깨던 고향의 아침
옥수수잎 서걱이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던 고향의 밤
고향처럼 아늑하고 심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아침을
난 터키에서 맞고 있다.
친구들 중 제일 먼저 일어나는 나다.
그래서 나의 하루가 가장 길다.
혼자서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나의 아침이다.
빵, 쏘세지,햄 등은 거의 손대지 않고
이렇게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는데도
변비 때문에 고생을 했다.
여행 5일째를 넘어서는데도 소식이 없어
일행 중 의사가 있어서
약을 얻어 겨우 해결했다.
다음 여행 때는 변비약을 꼭 챙겨야겠다.



버스에 짐 실어놓고 멋진 호텔 풍경을 배경 삼아 사진찍기 놀이~~~



친구들과의 여행이 확정되자 깜짝 선물로
단체룩을 준비했다.
저렴한 가격이었지만 프린팅이 예뻐서 구입했는데
참, 다행히도 친구들이 만족해 하고
일행의 여자들이 넘 부러워 했다.
ㅋㅋㅋ 나의 센~스! ...에 내가 감탄...
외극인들도 우리가 지나가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워 주었다는...



프린팅 예쁘지? 드레스 코드명...'세련된 도시 여자'







우리의 숙소 1블럭 입구이다.
4층 정도의 아담 싸이즈의 1층
숙과 월은 2층..드라이 빗 빌리러
난 매일 아침 친구들 룸을 방문했다
드라이기는 호텔마다 있으니 다음엔 빗을 잘 챙겨야겠다..
여행 한 두번 하는 게 아닌데
갈 때마다 뭔가를 빠뜨리고 다닌다.
영혼이 육신을 데리고 다닌다면
난 육신을 이미 어딘가에 빠뜨리고 영혼만 왔을거얌~~



아니, 이건 웬 시츄에이션!!!
시원한 아침 나절에 유적지 보고
더운 한낮에 쇼핑을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녁도 아니고 댓바람에...
페키지 여행 특성상
쇼핑은 필수라는걸 안다.
또 어짤때는 고맙기까지 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우니까..
하지만 이건...



이 가죽샵은 패션쇼까지 보여준다.
프로급 모델들은 아니지만 나름 옷발이 잘 받는다.
친구들은 관심을 보인다.
남편 것도 사고...
나도 욕심 나는게 있었는데 그냥 패스!!!
카메라 둘러메고 맨손으로 나오는 날 보고
일행 아짐씨들이 한마디씩 한다.
"친구들 중 제일 많이 살 것 같은데 통 사질 않네요."
나 쑥스러워서 "전 가죽을 좋아하지 않는답니다."ㅎㅎㅎ



































우리의 친구 월이도 런어웨이를 걸었답니다.
와우! 멋져 부러...















일행 30여명 중 5명 정도가 가죽옷을 샀다는...
뜨거운 태양 아래 사도요한 교회로 가고 있다.







유적지 입장은 이렇게...지하철 입구처럼...




사도요한의 교회(Church of St.John)
전해져 오는 바에 의하면
이 곳은 기원후 37년-42년,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에서 나온 사도요한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살았던 곳이자
사도요한이 복음서를 기술하고
또 생을 마감한 무덤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사도요한의 무덤 위에 서기 4세기경 처음으로
나무로 된 교회가 지어졌으나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577-565 AD)시대에 재건되어
오늘날의 형태로 남겨지게 되었다.



에페소가 아랍민들의 지배하에 있었던 7, 8세기에
사도요한 교회는 20개의 타워와
3개의 문으로 이루어진 성벽으로 둘러싸이게 되었다.
현재 여행객들이 출입하는 곳이 주 성문인데,
나머지 두개의 문은 각각 동쪽과 서쪽에 나 있다.
기독교가 박해받던 초기 기독교 시절 당시
경기장 내의 사자들의 먹이가 된
기독교인들의 넋을 달래기 위함인 듯
성벽 축조에 사용된 돌은
에페소의 경기장에서 가져온 것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사도요한의 무덤은 중앙 돔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성스러운 기독교 성지의 하나로 여겨
많은 기독교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 곳에는
오늘날까지도 발굴과 복원이 계속되고 있다.















































사도 요한의 무덤 부근의 침례 장소 


 





사도 요한의 무덤 


묘지석 











내가 제일 사랑하는 구도로 사도 요한의 묘 유적지를 담는다.
 


꽃과 나무가 있어 삭막하지 않는 구도..


 
 지진으로 폐허가 되기 전의 사도요한 교회 모습
 










이 멋진 구도를 위해
통행금지구역인 줄 모르고 나 홀로 들어갔다.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셔터를 누르며 한참을 가고 있는데
날 부른다....
사람들이 쳐다본다.
나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나온다.
나와 보니
아주 작은 글씨로 들어가지 말라 표시되었고
새끼줄이 작고 낮게 둘려처져 있다.



머쓱!



머쓱!머쓱!



아쉬워 뒤돌아 한 방 더...



































다시 입구로 나오면서...











현지식당 입구의 보라색 꽃



케밥 중에서 제일 맛있는 양갈비 케밥











식당 근처의 올리브 나무와 익지 않은 올리브 열매







로컬 가이드가 아는 사람을 만났는지
오른쪽, 왼쪽으로 포옹하고 나서
정담을 나눈다.
한 발 늦어 포옹 장면을 놓쳤다.
아쉽다.
이럴 땐 번개처럼 셔텨를 눌러야 하는데...
항상 스탠바이 상태여야 한다는...



사도요한의 교회를 출발하여 쉬린제 마을로 향하는 길..
버스는 구불구불, 아슬아슬한 산길을 20여 분을 달려 도착...







터키어로 쉬린은 아름답다는 뜻이라고
셀축에서 8km 떨어져 있는 곳으로,
전통 가옥이 잘 보존되어 있는 예쁜 마을이다.
산악 마을로 약 1,500년의 역사를 가진 곳이란다.
본래 그리스인들이 살던 곳인데,
1924년 인구 맞교환으로 그리스에서 온 터키인들이 정착했다고...
그때 인구교환으로 그리스로 이주한 이곳 사람 중에는
미래의 선박왕 오나시스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여기서 계속 살았다면 선박왕이 되지 못했을까?



여유로웠던 쉬린제 카페의 모습들...
연인들의 모습이 참 부러웠다는...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을까?
가슴 뛰던 그 시절이.....있었기나 한거야?











소월











빛깔 고운 체리 와인 한잔씩 하며
여유로움과 평화로움이나 즐겨보자..
연인이 아닌들 어떠리
가슴 뛰진 않지만,
넉넉한 그대들이 내 옆에 있는걸...



눈 여겨 보아 오다가
처음으로 로컬 가이드와 사진 찍자고 요청했다
27세의 신체 당당한 청년이란다.ㅋ
그가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내 프레임 안에 참 많이 들어왔다
아주 작게나마...











자유시간이 주어지자 가만 앉아있을 내가 아니다.
"애들아, 동네 구경가자."
더운데도 흔쾌히 나서주는 고마운 친구들...























뒤쪽은 살림집~ 앞쪽은 가게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이어지는데
와인 마을답게 단연 와인 가게가 많다
와인 말고도 수제 비누,
레이스 달린 옷, 수제로 만든 조각품들..
다양하다.







이 샵에 들어오니 이쁜 것은 물론 향기가 난다.
향수를 뿌렸나?
향기의 진원지를 찾아서
내 코가 부지런해 진다.
찾았다.
바로 천장에 허브다발을 매달아 놓았던 거다.
내 사전 조사로는 이 곳에서
봄에 꽃화관을 만들어 판다했으나
여름이라 없었는데 그걸 말려서
장식해 주는 주인장의 센스!!
본 받아야지...암...
세계는 넓고 배울 것은 많다...ㅋ







내가 나이를 먹어서인가?
이쁜 것들을 보면 맘이 설렌다.
미칠 것 같다.











모델 워킹이 따로 없습니다.
멋집니다.
이런 프레임도 괜찮네요.
단체티의 위력..ㅋ



로마에도 없는 로마의 유적
셀축 남쪽에 위치한 고대 로마의 도시 유적지 에페스..
터키 전역을 통틀어 양과 규모에서 비할 데 없는
최고의 유적지라 칭해지는 곳이다.
그만큼 에페스에서는 많은 유적들이 있단다.




입장권



에페스 유적을 관람하는 방법은 두가지
언덕 아래쪽인 북문에서 시작하여
언덕 위인 남문까지 올라가면서 보는 것과
반대로 남문에서 시작하여 북문으로 내려오며 관람하는 법..
우리는 두번 째인 남문에서 시작하여
북문으로 내려가며 관람한다.
남문에 내려서면 맨 처음 볼 수 있는 안내판
삼성에서 만들었다하여 달려 가서 보았는데
앗! 그리운 한글이 아니로구나..
끝에 삼성로고만 보인다.



개야..넌 참 시원하겠다.
울 친구들을 어떡하니?
덥다고 버스에 있겠단다.
이 나이에 세계사 공부해서 어디에 쓰겠냐고...
맞는 말이다.
어디에 써먹겠냐..머리만 아프지...
그러나 여기까지 왔는데...
이 거대한 로마의 유적을 못본다면
필시 후회할 터..가자..뜨거운 햇빛 속으로...



< 남문 매표소 바로 앞에 위치한 바리우스 욕장>
1세기 경에 건립된 목욕탕으로
내부에 냉탕, 온탕, 미온탕, 탈의실, 사우나 등의 시설과
공중 화장실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 욕장은 하이퍼코스트라는 난방 시스템을 갖추었었다는데,
한국의 온돌과 비슷한 형태라고
1세기 경의 목욕탕이 현대의 목욕탕과
별 차이가 없었던 걸로 보아
로마인들의 목욕문화가
얼마나 발달했었는지 짐작 할 수 있다.
목욕 문화가 발달한 나라치고
퇴폐문화에 빠지지 않는 나라는 없다고 했던가?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인데....
옳지 않아!!



욕탕 앞쪽으로는 황토관들이 길게 연결된 수로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도시를 건설하고 유지하는데
물은 필수적인 것!
도시 곳곳에 건설되었을 수로 길 한쪽으로는
발굴된 붉은 색 관들이 쌓여 있다.
에페스 유적은 아직도 현재 발굴 중이라
주변에 유물이 그냥 방치되어 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목욕을 가장 즐겨하던 민족을 들라면
로마인을 꼽을 수 있다.
로마인에게 목욕탕은 단순히
몸을 청결히 하기 위한 장소만은 아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정치를 논하고
지성을 뽐내기도 하면서
제2의 사교의 장으로 활용했다.
그런데 그런 목욕탕 때문에 로마가 망했다는
야사를 들어 본 일이 있는데
이 말은 정설이 아니라네.
로마가 목욕문화 때문에 망했다는 추측은
중세 기독교인들이 로마인의 목욕문화를
폄훼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말이었다고...
항상 목욕을 즐기며 신체를 청결히 했던 로마시대에는
이전의 그 어떤 시대보다 전염병이 적었다고 한다.
그런 목욕문화가 그리스 로마교를 배척했던 중세 기독교인들에 의해
타락하고 퇴폐적인 문화로 치부되었던 것이라고...



오데온의 모습과 바실리카(시 청사에서 바리우스 욕장까지 뻗어 있는 길)의 모습















< 먼저 알아야 할 에페스의 역사>
지겨우시면 패스하시구요!
에페스는 B.C 2000년 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고대로부터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에게해의 중심도시였다.
B.C 11세기 경 이오니아인들이 이곳을 점령했으며,
B.C 5세기에는 스파르타의 지배를 받았으며,
이후 알렉산더 대왕과 그 부하장수인 리시마쿠스가
차례로 에페스의 주인이 되었다.
에페스가 가장 화려했던 시기는 로마시대,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소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항이 되었고,
당시 500여 개에 달하던
로마 소아시아 속주의 수도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전성기에는 인구가 무려 25만 명이었다고 하니
아시아 최고의 도시였으나
번영을 구가하던 에페스의 몰락을 가져온 것은
다름 아닌 자연~
7세기 무렵 강에서 유입되는 토사가 바다를 메우면서
항구도시의 기능을 잃자
도시는 급속도로 쇠락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아야술룩 언덕(현재의 셀축)으로 도시가 옮겨졌다.
1000년에 달하는 고대 도시의 영화가 막을 내리게 된 것다.



바실리카 Basilica
바리우스 욕장에서 시청사까지 뻗어 있는 약 165m 의 길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건립되었으며,
길 양쪽으로 이오니아식 기둥 위에
황소 머리 모양의 조각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기단 부분만 남아 있다.



친구들아, 움직이길 잘했쟈?



오데온의 객석 좌우에는 이렇게 아치형의 문이 있다
공연이 있을 때
로마인들은 이 문으로 들어갔다가 나왔겠지...
로마인들의 발자국 위에
내 발자국을 새기며 지나가고 있다.



<오데온>
에페스 유적의 북문 쪽에는 커다란 대극장이 남아 있으며,
(잠시 후에 찾아간다)
남문 쪽에는 음악당이었던 오데온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도시를 만들면
반드시 음악당을 만들었다고 한다.
오데온은 오락과 예술적인 측면에서 꼭 필요한 것이었으며,
또한 정치적인 면에서도 필요한 시설이었다.
1,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지붕이 있었던 소극장이라고 한다.
2세기 귀족 베디우스 안토니우스와
그의 부인 플라비아 파피아나가 세웠다고
이곳에서 음악회나 시 낭송회 등이 개최되었으며
정치적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모든 시민이 참가하는 대규모 의회는 대극장에서 열렸고,
이곳은 비교적 소규모의 공연과 대표자 회의가 치러졌던 곳이다.







나의 멋진 포스..ㅎㅎ
이렇게 앉아서 음악회를 보고
시낭송에 귀를 쫑긋하고
밤하늘의 별을 세고 있었겠지...
이따금 유성이라도 볼라치면 소원을 빌겠지...
'세계여행 완결하도록 건강을 주십사'하고...
맘에 드는 시인이라도 등장하면
브라보! 라고 소리쳤겠지...
왜냐구?
난 감정 표현에 진실하니까...ㅎㅎㅎ







3개의 도리아식 기둥



시 청사 (Town Hall)
에페스의 도시 행정업무를 관장하던 곳.
3세기에 완공되었으며,
중앙의 광장을 중심으로 도리아식 기둥의 회랑이 있었단다.
광장의 중앙에는 꺼지지 않는 성화가 있고
사제관과 쿠레티, 아르테미스 신전의 여사제들은
성화를 보존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고 한다.
1956년 발굴 도중 두 개의 아르테미스 여신상이
이곳에서 발견되어 현재 셀축의
에페스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무슨 용도였는지 알 수 없는 잔해들을 지나간다.
인구 25만 명의 도시였다고 하니,
오밀조밀 건물들이 많았을 테지...
머릿속이 바쁘다.
완전한 상태로 상상하느라고....
또한 심심하지 않다.
로마인들 사이로 긴 드레스 입고
물동이 이고 지나가는 나를 보았다.
공주나 왕비로 착각하지 않을 만큼...
이제 난 현실적이 되어 있다.











폴리오 샘의 아치

기원후 97년 유력한 귀족이었던 폴리우스가 건립한 샘터로
궁전과 함께 에페스로 공급되는 물을 관리하던 곳
당시 물을 관리하던 수관(水官)의 위치는 막강한 것이어서
많은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한다.



양을 몰고 가는 신의 조각도 만나고...



오른 쪽 우뚝 솟은 기둥이 도미티아누스 신전
1세기 도미티아누스 황제에게 바쳐진 신전으로
제 2의 네로라고까지 불리운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철권을 휘두르며 기독교를 박해한 인물로 유명하며
사도 요한을 밧모 섬으로 귀양 보낸 사람도
바로 도미티아누스 황제라고



여기서 잠깐!
나도 모르는 성경이야기
사도 요한은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은 제자라고 하네요.
밧모 섬에 유배되어 있으면서
요한 계시록을 저술하기도 하였고
유배에서 풀려난 후에는 에페스로 돌아와
10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고 하네요.



멤니우스 기념 묘 Tomb Of Memnius .
로마의 독재관 술라 Sulla 의 손자였던 멤니우스 형제는
쌍동이로 율리 시저와 동시대 사람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폼페이우스의 편에 섰다가 돌아서
시저의 편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시저와 관계가 나빠져서
아테네를 거쳐 에페스까지 쫓겨 났다고 한다.
완전 박쥐족의 표본이구먼..







멤니우스는 로마 시대를 살았지만,
그리스의 모델을 따르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조각상은 많이 마모되었지만,
곱슬머리의 얼굴에
옷은 가슴을 드러낸 헐렁한
로마 귀족의 복장을 하고 있다.
옆에 서 있는 석주는 미술시간에 배웠던 코린트 양식



폴리오 샘의 아치 옆은 물의 궁전~
샘과 함께 물을 관리하던 곳이라 붙여졌을까?



<승리의 여신 니케의 부조>
날개가 달렸으며 왼손에는 승리의 상징인 월계관이
오른손에는 밀다발을 들고 있다.
올림픽에서 승리를 안겨주고
축복을 주는 여신으로 섬겨졌으며
'승리의 여신이 미소 짓는다'의 그 여신.
왼쪽팔 모양을 본떠 만든 브랜드가 나이키라는 얘기가 있다.



천년의 세월을 넘게 견딘 바닥의 돌들을 밟고 간다
사도 요한이 걸었고
멤니으수가 걸었고
클레오 파트라가 걸었을 그 길을 내가 걷고 있다.



















헤라클레스 문에서 바라본 쿠레테스 거리
헤라클레스 문에서 셀수스 도서관까지 뻗어 있는 대로
로마에서는 행정실무와
종교적 업무를 담당하던 사제들을 쿠레티라고 불렀다.
줄지어 있는 원형 기중 사이사이에
에페스 중요 인물들의 석상들도 있다.



<내 목을 돌려줘!>
쿠레테스 거리에 남아 있는 석상 중 하나
얼굴도 사라지고, 이름도 보이질 않고..
로마 시대의 주름진 화려한 의상만은 그대로구나!



<헤라클레스 문>
헤라클레스는 힘과 용기 그리고 재치가 있는 영웅
그는 사자 가죽을 어깨에 두르고
에페스의 길을 지키고 있다.
원래 6개의 기둥에 아치가 있는 2층 문이었는데,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두 개 밖에 없다.
다른 문과 달리 폭이 좁은 것은
수레의 통행을 제한하기 위함이었다고...



셀수스 도서관 쪽으로 더 내려와 뒤 돌아본
쿠레테스 거리







<트라야누스 샘>
2세기 초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에게 바친 샘
12m 높이에 2층으로 된 이 곳은
트라야누스 황제의 석상이 있었고,
그 발끝에서 물이 흘렀다고 한다.
지금은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앞쪽으로 연못이 있었던 곳은 확인할 수가 있다.



12m 크기의 황제의 석상은 지진이 훔쳐갔다.
하지만 황제의 발만 남아 있는데,
그 크기로 보아 황제의 석상이
얼마나 큰것인지 짐작을 할 수가 있다고..
아래쪽의 단 위에 황제의 오른 발을 찾으셨나요?



줄지어 선 기둥들과 조각상들..
대리석 바닥들..
화려했던 시절의 에페스를 짐작하게 한다.



<시리아 풍으로 조각된 신들의 부조 하드리아누스(Hadrianus) 신전>
하드리아누스 신전은
도미티안 신전 이후
두번째로 로마의 황제에게 바쳐진 신전이다.
A.D 138년에 지어진 이 신전은
에페소 시민들에 의해 지어져
로마의 황제였던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바쳐졌다.
AD 117~138년 사이에
로마제국의 황제로 있었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로마의 오현제 중 하나로 추앙 받는 현황이였다.
선황의 조카였던 하드리아누스는 선황이었던
트라야누스 황제의 양자로 입적해 즉위한 황제였다.
속주들의 안보와 육성에 힘썼으며
국가의 내실을 다지는 행정,관료,군사 제도 등
제국의 기초가 되는 제도들을 다듬고 혁신했으며
학문과 예술 등의 학술적인 면의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그 또한 선황처럼 양자를 들여
자신의 양자이자 후에 황제가 되는
안토니누스피우스 황제에 의해 신으로 추앙받게 된다.
이 신전은 에페소 유적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유적이다.



최근에 복원된 이 신전은 신전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돌 담 위에 신과 여신들의 부조가 가득하며
4명의 로마 황제 Diocletianus, Maximianus, Galerius, Chlorus의 상이
꼼꼼이 들어차 있다.
또한 신전 전면의 4개의 기둥 중
2개의 기둥을 잇는 아치는
에페소 유적지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들어가는 입구 아치위에 새겨진 인물의 모습은
첫번째 문의 아치 위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운명의 여신 테티스가
두번째 문의 아치 위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두사의 모습이 부조되어 있다.











그늘에서















공중 화장실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쿠레테스 거리와 대리석 거리가 만나는 중간 지점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하수도를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었다.



사각의 공간에 이런 형태로...
좌변기 형태의 대리석 바닥에 구멍을 내어
대변과 소변이 아래의 하수도로 떨어지게 했고
오물이 경사진 하수도로 바로 떠내려가게 만들어 놓았으니,
위생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겠다.



거기다 화장실 바로 앞에는
깨끗한 수로가 지나가게 해 놓아
흐르는 물에 손을 씻을 수 있도록 해두기까지 !!!



또 변기 앞에 연못과 분수를 만들어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하도록 했단다.
용변을 보면서 쑥스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인 듯...
화장실 사방으로는 높은 벽을 쌓아 다른 공간과 분리 시켰다.
한꺼번에 50여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는 화장실..
세계 최초의 수세식 화장실이 아닐까 ?







고급 주택지의 입구



부자들, 고관들의 저택답게 바닥조차 아름다운 대리석이다.



로컬 가이드



우리는 지금 셀수스 도서관 앞에 있다.
에페스 유적의 백미...
에페스 유적의 상징.
아름다운 대리석 기둥들과 벽들로 이루어진
지혜의 산실....







에페소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셀수스 도서관 (Celsus Library)
에페소 유적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 중 하나로 손꼽히는 셀수스 도서관은
에페소 유적가운데 전면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에는 얼마나 화려했을까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여러 차례 많이 훼손되었으나 최근에 재건되었고
높은 초석 위에 세워진 이 건축물은
넓은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셀수스 도서관은 서기 135년,
C. Aquila에 의해 아시아 지역의 통치자였던 그의 아버지,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Celsus Polemaeanus)를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다.
이 도서관에는 세개의 문이 있는데
각각의 상단은 지혜, 운명, 지식을 상징하는
정결한 여성상들로 장식되어 있다.
셀수스의 무덤은
중앙 적소 아래 지하에 위치해 있다.
도서관 터에 남겨져 있는 비문에 의하면
도서관을 지으라고 명한 C.Aquila는
이 건축물이 완성하기 전에 숨을 거두었고
이에 그의 후계자에 의해 건축은 계속되었다고 한다.
Aquila는 도서관에 소장될 서적 구입비로
2만5천 디나르를 남겨두었다고 알려져 있다.



더불어 에페소는 사도 바울이
서기 53년 부터 이곳에서 2년간
전도활동을 하며 강론을 펼쳤다는 사실로도 유명하다.
사도 바울의 방문 이후,
이 곳에는 교회가 부흥하였고,
이것이 성경상에 나타나 있는데 바로
사도 바울이 로마에 투옥돼 에페소 교회에 보낸 편지들이
바로 '에베소서'이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이 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사도행전 19:9-10
사도행전에는 사도바울이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강론을 펼친것으로 나와 있어
이 셀수스 도서관이
바로 성경상의 두란노 서원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
또는 공공연하게 사람들은 이곳이 두란노 서원이라고 단언하기도 하지만
역사상으로 이 셀수스 도서관은
사도바울이 에페소를 방문한 시기보다 늦게 완성되어
신빙성이 없는 추측일 뿐이며,
사도 바울이 셀수스 도서관과 같이
도시 중심에 위치한 화려한 곳이 아닌 변두리에서
두란노라는 사람의 개인 서원에서 강론했을 것이라는 것이
좀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에페소는 이곳에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고,
교회가 세워져 부흥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성지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리석 기둥과 천정의 아름다운 꽃무늬



이렇게 아름다운 도서관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져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니
온몸에 전울이 옵니다.
~~~~~~~



내가 로마시대에 살았다면 일은 하지 않고
이렇게 매일 도서관을 들락거렸을테지...ㅎ



모두 16개의 코린트식 기둥들이
완벽하게 그 모습을 보여주는구나.
2층으로 밑에서 올려다 보면 그 웅장함에 압도당한다.











고대 세계의 3대 도서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페르가몬 도서관,
그리고 이 곳 셀수스 도서관
로마 제국 내의
최고의 도서관으로 손꼽히던 곳을
그대는 보고 계십니다.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의 문>
이 문은 셀수스 도서관에서 상업 아고라로 들어가는 문이다.
노예였던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가 자유의 몸이 되면서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그의 가족을 위해 바친 것으로 아우구스투스의 문이라고도 한다.
로마 역사서를 읽어보면,
돈이 많은 노예들이 자유의 몸을 얻기도 한다.



셀수스 도서관에서 너무나 많은 책을 읽었더니
머리가 어지럽다.
대극장 가서 연극이나 볼까나...



셀서스 도서관 맞은 편 지역에
유곽(매춘업소)이 있었다니 아이러니한 일.
4세기경에 지어졌고
창녀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며
매음을 하던 곳이라 하나
지금은 허물어진 집터에 벽들이 조금씩 남아있고
유곽으로 향하는 길에 매춘 광고판은
여전히 성업 중 ?...
아름다운 아가씨와 발 그림이 선명하다.
19세 이하 출입 금지를 발을 대어보고
이 정도 크기의 어른이 되지 않으면
출입할 수 없었다고 한다.
발 작은 어른은? ㅋㅋㅋㅋㅋ


상업 아고라를 지나,
대리석 거리의 끝에 이르니
거대한 원형 극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껏 터키에서 본 원형극장 중에서
단연 최대 규모인 듯 하다.




북문쪽 입구의 셀수스 도서관 안내판이 보인다.



안쪽은 긴 터널식으로 지어졌으며,
군데군데 출입구가 있는 걸로 보아
공연자들의 대기실로도 씌여졌을 듯...



원래는 B.C 3세기 헬레니즘 시대에 지은 것인데,
1세기 로마 시대에 대대적으로 증축되었다고...
피온 산의 경사면을 이용해 지어졌으며,
지름 154m, 높이 38m의 반원형 구조에
최대 수용인원 2만 4000명을 자랑하는 거대한 규모이다.
이곳에서 연극과 문화예술이 공연되었으며,
로마 시대 말기에는 검투사와
맹수의 싸움도 벌어졌다고...
총 3단의 구조로 이루어진 원형극장의 각 단은 모두 22개 계단
중앙의 홈에는 당시 바닥에 깔았던 대리석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에페소 대극장 근처에 성모 마리아 교회와
항구 목욕탕, 체육관 등의 시설이 있다고..
사도 요한이 성모님을 모셔와
에페소 지역에서 지내게 하였다고
431년 성모님이 예수님의 어머니인가에 관한 논쟁으로
유명한 종교회의가 열렸던 곳이라고..







내가 이 공연장에서 할게 뭐가 있겠나?
빙빙 돌거나 뛰어오르거나..
점프실력이 나날이 향상되고 있음...



일행들이 더워서 그늘에 쉬느라
별로 나오지 않는다.
첨철산으로 시작하는 교가나 부를까 했는데
아이고..걔네들도 오지 않았네...



북문쪽 에페소 입구



앞쪽으로 나오니 대극장이 한 프레임에 잡힌다



뜨거운 태양빛 아래에서
수천년의 역사를 거슬러 다녀온 길.
소나무 그늘 아래..
문득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소나무 숲을 지나 북문쪽에 있는 주차장으로 고고!!











그대는 지금 에게해를 보고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