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박 9일의 여정으로 드디어 터키로 떠난다.
이번 여행은 한달 전부터
아니 3년 전부터 맘에 담은 터키다.
중딩 친구들과의 동행으로
더욱 더 기대와 설레임이 크다.
우리 아름다운 추억 만들어 오자.
터키의 수상한 매력에 빠져보자.
예정보다 20분 연착되어 오후 2시 45분 KE 955 터키행 여객기가 이륙했다.
밤새 반찬준비로 꼴딱 세웠더니 자리에 앉자마자 졸립다.
영화보면서 한숨 자고
승무원 대기실에서 친구들과 스트레칭도 하면서
12시간의 비행시간을 참아냈다.
검푸른 바다 위에 이따금 흰구름이 방점을 찍 듯이 지나간다.
>흑해를 지나고 나서부터 낮게 비행을 하는지
아랫쪽 마을들이 프레임 안에 들어온다.
49A 창가쪽 자리여서
자주 비행기 밖을 감상할 수 있었다.
드디어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시각 저녁 7시 7분
한국보다 6시간 느리다.
미 대통령 케네디가 포장비를 댔다는 케네디 도로를 달려
숙소가 있는 아시아 쪽으로 이동한다.
여기가 정녕 이스탄불인가?
외국의 지명들은 그 의미와 유래를 떠나
한글로 전이되고 한글의 울림에서 나름대로 이미지가 구축된다.
역사속에서, 영화 속에서 또는 뉴스를 접하면서
머릿속에 배경이 둘러쳐지기도 한다.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는 '하얀 산' 이라는 원래의 뜻과는 무관하게
조용필의 노래때문에 왠지 모르게 카리스마 있게 느껴지는 것처럼.
이스탄불은 터키석이 머금고 있는 색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오묘한 느낌의 힘이 느껴진다.
터키 여행을 꿈꿔온 3년 동안
아니지,세계 역사를 처음 접한 중학교 사회시간부터
이스탄불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신비한 이미지가 내겐 있다.
친구들에게 "이스탄불 하면 어떤 느낌이 드니?" 하고 물었다.
한 친구는 종교색이 짙은 도시,
또 한 친구는 못 사는 도시,
혹은 삭막한 도시의 이미지가 떠오른다고 했다.
이스탄불은 정말 어떤 도시일까?
짐을 던져놓고 우선 주변 산책에 나섰다.
맥주나 한 잔 할까 하고...
어라..편의점 같은 데를 가보니 맥주가 없다.
터키 사람들만 실컷 구경하고
휘이 돌아 호텔로 들어와 단잠을 잤다.
이스탄불의 아침이 밝았다.
울 친구들은 기분좋은 단잠을 잔 후
과일이 풍성한 호텔 뷔페에서 푸짐한 아침식사를 즐겼다.
와! 그 비싼 체리가 산더미처럼 쌓였네?
터키 여행 중 가장 많이 먹은 것은 수박
그 다음이 체리다.
오늘 일정은 사비아 곡첸 공항->앙카라(수도)->아타튀르크영묘 ->한국공원->소금 호수->카파도키아->
공항가는 길
이스탄불에는 공항이 두개 있는데
하나는 어제 도착한 아타튀르크 공항이고
오늘 앙카라로 가기 위해 국내선을 이용하는데
그 공항이 사비아 곡첸 공항이다.
아타튀르크는 터키의 영웅이자 국민아버지인
무스타파 케말 대통령의 이름이 붙었고
사비아 곡첸은 그의 딸 이름이란다.
국내선 앙카라행
보딩 후 손을 모았다.
빨강색 메니큐어로 통일하자 했는데
누구는 너무 튄다고 분홍색으로 하고
난 이쁘게 점박이를 넣었다.
발도 모아보니 예술이네...?
이런 것 하나로도 기분이 업될 수 있다니..후후후..
이럴 땐 여자로 태어나길 잘했단 느낌이 든다.
어쩌다 한 번씩 우리집은 나라와 수도 맞추기를 한다.
남편은 세계지도를 머릿속에 입력해 놓았는지 그쪽으론 척척박사고
둘째도 초딩사회시간에 달달 외우게 해서인지 국가,국기,수도는 달달 외운다.
난 벼락치기의 고수여서 한꺼번에 입력하고 한꺼번에 지우는 쪽이라 영 서툴다.
우리나라 서울처럼 '가장 큰 도시 = 수도'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들, 당연히 수도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진짜 수도는 따로 있는 나라들이 간혹 있다.
호주의 수도는 시드니가 아니라 캔버라이고
브라질의 수도는 상파울루가 아니라 브라질리아,
그리고 터키의 수도는 이스탄불이 아니라 앙카라.ㅎㅎ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기념관
아타튀르크 기념관은 터키 공화국의 國父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곳으로
앙카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가장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고대 신전을 본떠 설계한 기념관의 면적은
무려 658,000㎡ (199,000평)이며
1944년에 착공하여 1953년에 완공되었다.
이기념관은 터키 최대의 관광명소이며
터키인들의 성역으로 추앙받고 있다.
지구상에 존재한 인물중에 무스타파 케말 만한 영웅이 있었을까?
그는 터키 초대 대통령으로
무너져가는 오스만제국의 영광을
되살려낸 영웅 중의 영웅으로 불린다.
1차 대전 당시 연합국에 패한 오스만 제국이었지만
연합국측의 터키 분할 정책에 동조하는
술탄 왕정에 반기를 들고 독립전쟁에 돌입하여 나라를 지켜낸다.
전후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이슬람 문화권임에도 주변국과 달리
자유로운 종교문화를 개혁하였으며,
라틴형 문자를 창제하여 터키 언어문화를 개혁하므로서
성공한 대통령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
나라를 구한 이순신과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영웅적인 역할을
케말이 홀로 해냈다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케말은 터키 서구화에 심혈을 기울렸고,
이슬람 전통에 묶여있는 사회 전반을
근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급진적이고
강력한 개혁조치를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아버지란 호칭인 "아타튀르크"
자신의 성을 국민으로부터 받은 무스타파 케말은
근대화에 성공한 터키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역사에 드문 영웅 중에 영웅이다.
우리의 박정희 전대통령이 존경했던 인물이 바로 이분이시라고...
아테네 신전을 본떠서 만들었다.
이 아래 잠들어 있는 아타튀르크
언젠가 그의 평전을 읽어보고 싶다.
케말 파샤 평전...
앙카라 시내
여기는 아타튀르크 다음에 대통령을 한 사람의 묘
. 아타튀르크의 친구인 2대 대통령이
아타튀르크 묘와 기념관을 만들어주고,
자기는 이렇게 조그만 무덤 하나만 만들어달라고 했다는거지..
아타튀르크는 친구에게도 존경을 받은 사람이다.
터키 국민들은 지금 다시 아타튀르크 같은 영웅이
한 번 더 나와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아타튀르크가 생전에 타던 차와 배
6.25 참전 터키 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한국정부가 헌납한 한국공원
입구에는 한쪽은 터키어로,
한쪽은 한글로 한국공원이라고 적혀 있으며,
태극기와 터키의 국기가 양 쪽에 있다.
이 공원은 1973년 한국에 있는
터키 장병들의 묘에서 흙을 가져와
석가탑을 본 뜬 4층 석조 탑 안에 안치하여 만들어 앙카라 시에 헌납했다.
6.25 당시 터키는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1만 5천여 명의 전투병을 파견하였다.
탑 주위를 돌아가며 전몰자 773명의 이름과 사망 연도를 기록해 놓았다.
관광지라 하기엔 딱히 볼 것은 없었지만
어쨌든 먼 타국에서 희생된
773명의 젊은 청년들의 넋을 위해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터키가 우리 나라에 그렇게 많은 병력을
파견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자신의 국민들을 타지의 전쟁터에 보낼 때는
어쨌든 실리를 따지는 것은 당연한 일
지칠 줄 모르고 뻗어나가던 오스만 제국은
17세기 들어 기울기 시작한다.
그 후 형제들 간의 골육상쟁,
모후의 정치 간섭,
술탄의 개인적인 무능까지..
그러다가 1853년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 남하하는
러시아와 크림 전쟁을 치른다.
러시아의 세력 팽창을 우려한 영국과 프랑스는
오스만 제국의 편을 들었다.
이후 유럽 열강의 세력 다툼은 극에 달하게 되고
결국 1914년 제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다.
이 때 오스만 제국은 독일과 동맹을 맺고 참전,
패하게 됨으로써 제국은 영토가 분할 점령 되는데
여기에서 터키의 국부 아타튀르크의 활약이 시작된다.
그는 독립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내고,
1923년 7월 연합국과 조약을 체결하고
독립을 정식으로 승인 받는다.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때,
터키는 중립을 지켰고 이후 터키는 나토에 가입하기를 희망한다.
나토에 가입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인 국토의 안보가 보장되기를 희망하지만,
1차 세계 대전 중에 독일의 동맹국이었으며,
패전국이었던지라 나토 가입이 되질 않았다.
그 때, 6.25가 일어나고,
미국이 나토에 가입시켜 주겠다고 참전을 요구...
그리하여 터키는 우리 나라에 군대를 파견하게 된다.
토이기 부대라고 불리웠던 터기 부대는
부산으로 상륙하여 주로 평안북도에서 활약하였다.
참고로 터키는 월남전에도 참전하였고,
지금도 우리 나라처럼 국방의 의무가 있는 나라다.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우리 나라에 참전해 준 나라라는...
기차역
기차역 뒤
현지식으로 소고기케밥을 먹었는데
고기는 냄새가 심했고
밥과 스프는 짰으며....
식당은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도 없어 더웠다.
중딩 사인방
지금 우리는 옛날 중국 시안에서 시작되어
이스탄불에서 끝나는 사막 실크로드를 달려가고 있다.
바다 모래사장인 줄 알았는데 소금호수란다.
작년에 리튬이라는 원자재로 인해
볼리비아의 소금사막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볼리비아 유유니 소금사막,
헝가리에는 소금광산이 있으며,
터키에는 소금호수가 있다.
(이제 난 볼리비아의 소금사막만 가면
소금의 최대생산지는 다 가 본 셈이니 소금과 인연이 깊네)
한강의 세 배 정도 넓이에
흐르는 강인지 호수인지 모를 만큼 길게 펼쳐져 있다.
한 여름에는 그 호수의 물이 말라
호수 바닥이 온통 소금으로 이루어 진다.
그러면 정부에서 크레인으로 긁어모은다.
터키의 소금 수요를 이 호수에서 거의 충당한다고.
정말 소금일까?
맛을 봐야지...
음~~우리의 천일염보다 염도는 덜한 것 같고 알갱이는 더 굵다.
약간의 분홍빛을 띄고 있는 소금도 있는데 아름답기까지.....
입구의 shop에 여러 가지 모형이나 글자
색깔을 넣어 소금으로 결정시켜 상품화 하여 팔고 있다.
미용소금도 있구....
자야와 월이는 맨발 벗고 소금호수를 걸어다녔다.
쨍쨍한 햇볕에 달궈진 소금에
발바닥이 뜨겁고 쓰라려서 혼이 났지만
건강에는 엄청 좋았으리라...
소금호수 건너 마을은 물에 떠서 붕붕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소금호수가 어찌나 길던지
카파도키아로 가는 내내 버스를 뒤따라 왔다.
우리는 지금 전세버스를 타고 우주도시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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