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의 일상/자운영의 흔적

밥에 대하여

올레리나J 2009. 10. 13. 16:12

♠가난했던 시절♠



쑥밥을 먹어본 사람있나요?


날씨가 오늘처럼 이슬비가 내렸다 그쳤다

흐린 날이 계속되면 유난히 옛 생각이 많이 납니다

지금 산에는 봄비에 놀란 고사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겠군요.


안개가 자욱히 낀 날 고사리가 더 잘 보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있나요?

모세미 바닷가 소나무 숲의 고사리가 아주 튼실했지요

모래가 적당히 섞여서 그랬나?


맑은 날은 쑥을 캐러 다녔지요

쑥을 캐놓으면 사러 다니는 아저씨도 있었고

주로 집에서 쑥국을 끓여 먹거나 아예 쑥을 살짝 데쳐

삶은 보리와 쌀 한줌을 넣어 밥을 지어먹었어요.

시커먼 쑥밥! 질리도록 먹었습니다

썰물때가 맞는 날은 바닷가 바위에 붙어있는

갈색 톳을 칼로 잘라와 그것으로도 밥을 해 먹었지요

겨울엔 풋풋하고 보드라운 보리싹을 캐다가

역시 보리밥도 해 먹었구요

주로 된장국을 끓여 먹었지만 식량이 부족한

우리집은 밥도 반찬도 같은 색깔일 때가 많았답니다

지겹도록 먹었습니다

하얀 쌀밥 먹어보는게 소원이었습니다

아니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어보는게 소원이었습니다

제사와 명절 때 먹었던 그 쌀밥은 입에서 사르르 녹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 식탐이 많답니다

무엇이든지 잘 먹지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많이 먹질 못한답니다

위가 고생을 해서인지 시원찮거든요

운명도 얄궂지요.

먹고 싶을 땐 없어서 못 먹고

먹을 만하니 소화가 안 되서 못 먹고....


그 지겨웠던 쑥밥이 오늘 따라 무척 먹고 싶네요

향긋한 쑥 내음이 그립네요

200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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