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의 일상/자운영의 흔적

우연히 휴휴산방 주인을 찾았다.

올레리나J 2010. 10. 10. 14:13

 

 

 

 

 

 

 

 

10월 3일 일요일 MBC FM RADIO 7시~
아침 준비하면서 즐겨듣는 프로그램이다.
장진 감독이 진행자였을 땐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일어나 식탁에 앉아 그의 중후한 음성을 들으며
그가 권해준 책들과
그가 초대한 게스트를 만나면서 여유로운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언제부턴가 여자 아나운서로 바뀌면서
대면대면하다가 운명의 10월 3일 라디오를 켰다.

그날 게스트가 원광대 동양학과 조용헌 교수였다.
'여행은 걸어다니면서 읽는 독서이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다.'
내 취향에 맞는 이야기로 나를 사로잡았다.
조선일보에 조용헌 살롱이란 칼럼을 쓰는데
몇년 간 쓰면서도 한 번도 소재 고갈로
고민한 적이 없는 이유는 부지런한 발품 덕이라고도 했다.
집주인의 인생철학이 담겨 있는 전국의 집들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일주일에 세번은 속세를 떠나 휴휴산방에 가서 자연과 벗하니
이야기 소재가 무궁무진 하단다.


휴휴산방이라...어디서 봤더라?
순식간에 스쳐간 작년 중학 동창 모임 장소
장성 축령산...
전국의 친구들이 모여 떠들썩한 밤을 보내고
아침에 복자,동배,병국이와 함께 편백숲 산책하다
오디 따 먹으려고 들른 휴휴산방
작은 마당 아래로 펼쳐지는 경치가 한폭의 동양화였다.
집이 어찌나 예쁘던지 주인이 누글까
엄청 궁금했었다.
동배 얘기를 들어보니 '신문에 기고하는 시한부 환자 기자'였던것 같은데
이렇게 건강한 멋진 교수님이셨다니..


휴휴산방에 관한 글을 써야지 하면서
엄청 바쁜 일주일을 보냈다.
그 와중에 휴휴산방,휴휴산방,휴휴산방
휘파람처럼 입에 달며 그 단어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으로 힘든 나날을 이겨냈다.
그리고 놀토.
난 오늘 느긋하게 지난 번 모임 사진을 보며
휴휴산방의 추억을 되새김하고 있다.
방대한 동양학에 관한 지식과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는 조용헌 교수의 삶에 경의를 표하며
행복한 밤을 보내고 있다.




중학모임 후기에 올렸던 당시 휴휴산방의 사진과 글의 원문이다.



담장 아래 길로 가지를 뻗은 뽕나무가 검게 익은 오디를 주렁주렁 달고 있습니다..징검돌을 건너가니 아담한 토담집이 있어요.



예절 바른 동배가 주인님을 불러도 대답없는 걸로 보아 외출중인가봐요



어렸을 땐 익기를 기다리기가 너무 힘들어 설익은 오디를 따 먹었는데...



이게 웬 횡재랍니까? 주인이 오디 맛을 모르는지 익다못해 말라 비틀어진게 많습니다



어렸을 때 먹었던 오디보다 3배 정도 많은 오디를 따먹고 휴휴산방 구석구석 탐험..



휴휴산방이라..집 이름도 너무 맘에 들고 황토로 아담하게 꾸민게 자연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주인없는 집에서 주인노릇 좀 해보자 ..병국아.



툇마루에 앉아 찍은 휴휴산방 오른쪽



휴휴산방 왼쪽..어느 곳 하나 과하지 않은 소박함이 분명 멋을 아는 사람이 이 집 주인일 겁니다



너무 예뻐 휴휴산방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졸졸 흐르는 우물도 있고



연못도 있고



동배도 있고



뻐꾹이 소리도 끊임없이 들리고



하늘, 구름도 있고 갈퀴,빗자루,쇠스랑도 있었습니다



우정도 있었구요



오디를 너무 많이 먹어서 입술이 파랗게 변한 복자도 있고 흰고무신 검정고무신도 있었습죠



어릴적 추억도 있었습니다



대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낮은 대문 앞 우체통에 새알 4개가 다소곳이 어미새를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돌로 쌓아 올린 굴뚝
그때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걸 보면
주인은 잠시 숲에 산책나가지 않았나 싶다.
집필실로 쓰는 왼쪽의 마루방은
창문이 유리로 된데다 커튼도 젖혀져 있어
바깥에서 방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노트북이 놓여있었고.
별다른 세간살이는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 방도 창이 유리로 되어 있어 들여다 보니
간단한 취사시설을 갖춘 부엌이고
그 뒤로 방이 하나 더 있는지 그 곳만은 잠겨 있다
도독에게 미안할 만큼의 세간살이인지라
자신있게 문을 열어두고 외출을 하였나보다
기다려서 만나고 왔음 인생이 변했을지도(?) ....


휴휴산방을 누가 지었을까? 알아보니
28년 전, 탱화를 그리는 일지(一止) 스님이
한 획, 한 획 그림을 그리듯 공들여 지은 집이고
조용헌 교수와 딱 맞는 집이라며 그에게 왔단다.
시멘트 한 줌 섞지 않고
100% 황토와 돌, 나무로만 지은 집이라고 했다.
국내외를 통 틀어서 내가 정말 갖고 싶은
아니,살고 싶은 집이다.
산자락 전체가 나의 정원이 되는 그 호사스러움보다
밤이면 인공불빛 공해없는 하늘의 별도 볼 수 있고
달빛에 마루에 앉아 온전히 홀로 되는
완벽한 자연과의 합일
절대 고독과의 만남
욕심도 없어지고 급함도 없어지고
집착도 없어지고 고요함만 남겠지...
늘 그런 삶을 꿐꾸었다.
결코 로망으로만 끝내지는 않을게다



이 집주인 조용헌 교수님
休休山房은 조교수의 堂號다.
쉬고 또 쉬는 집이란다
그에 의하면 우리 현대인이 겪는 질환은 서두름, 급함에서 오는 것이란다
도종환의 집필실이 구구산방龜龜山房이던데 거북(龜)은 대표적인 느림보 동물.
자고로 도인들은 항상 느림의 생활철학을 깨우쳐준다.



주인 허락도 없이 감히 주인 행세를 하다니...
다시 갈 기회가 있다면 만나서 사과하고 싶다.ㅎ
편백나무 숲이 치료효과가 있다하여
많은 사람들이 축령산으로 모여든다고 하던데...
부디 자연이 훼손되지 않기를...



난 여행과 운둔,적당한 긴장과 이완으로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그는 입산과 하산을 반복하며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구나.
언제 시간내서 다시 한 번 휴휴산방에 가고싶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그날의 평온함으로
다시 나를 데려다준 라디오 방송국 & 조용헌 교수님께 고마움을 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