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벅찬 느낌들 때문에 심신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폭발 일보 직전에 버스는 조그마한 시골마을에 도착했다.
내일의 목적지 로텐부르크 가는 길에 있는 마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그냥 잠만 자고 이동할 거라 생각했다.
6시쯤 마을 입구에 들어서는데 내안에 있는 새로운 호기심이 또 발작 수준에 이른다.
평온하고 이뻤다.받아들여야할 것들이 너무 많은 프라하를 본 다음이라서일까?
여행도 강약 조절이 때로는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자그마한 일들이 이뤄지는 순간이기도....
이 작은 마을에서의 몇시간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독일의 테네스버그...
버스가 골목길을 헤집고 들어온다
호텔이 섬처럼 홀로 있는게 아니라 마을과 어우러져 있다
뒷뜰에 어린이용 놀이기구는 있는데 아이들은 없다
이곳 호텔을 이용하는 가족들을 위한 시설인가보다
알록달록 이쁜 놀이터에서 한참을 이러고 있었다
저녁 셋팅하는 동안 호텔 앞에서 삼총사 기념촬영...
이 지도를 보기 전까지 마을 이름이 무엇인지 몰랐다.
어느날 부턴가, 어느 팀에서부턴가 맥주를 번갈아 가며 한잔씩 돌리기 시작하여
오늘 마지막으로 우리 팀에서 한턱 쏘았다.
골고루 맛있게 먹은 저녁....
본격적으로 마을 탐험에 나섰다
내일의 목적지 로텐부르크 안내도가 마을에 떡 하니 붙어있는 걸 보면 지척이겠다.
내 잔까지 원샷하더니 남편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네.
오늘 우리들의 밤을 평안하게 해줄 호텔과 10일동안 정든 버스
참 편히도 쉬고 있구나..
베스트 드라이버인 기사 아저씬 어디서 무얼하고 계실까?
마음이 여유로우니 기사 아저씨까지 챙기고 있는 나..ㅋ
공기 좋고 마을 이쁘고 새 힘이 솟아오른다
난 항상 독수리처럼 비상하고픈 꿈을 갖고 있다.
호텔 앞에 있는 자그마한 성당에서 울림이 깊은 종소리가 마을 전체에 울려퍼진다.
이럴 땐 하느님에 대한 경이로움이 저절로 든다.
나도 모르게 성호를 긋고 있다
웅장한 교회안에 들어서도 그렇고..십자가를 봐도 그렇고 ....
고즈녁한 산사앞에 서면 저절로 불자가 되어 부처님에 대한 경외심에 두 손 합장하게 되고
이슬람의 교리도 이해하기도 하고...
난 극단적인 것은 싫다. 억메이는 것도 싫다.
모든 종교의 근본교리는 무엇일까?
바로 사랑과 지혜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최고의 지혜는 사랑하는 지혜이고 최고의 사랑은 지혜로운 사랑이다
정말 참혹하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종교 전쟁이다
많은 유서깊은 교회와 이슬람 사원들을 돌아다니며 본 나의 종교에 대한 결론은 사랑과 지혜
저녁이 되자 날씨가 싸늘해졌다.
안에 반팔 폴라를 입고 남방을 걸친 이 복장이 딱 어울리는 그런 날씨다.
이 마을을 닮은 귀엽고 깜찍한 천사
맘이 급할 것도 없고,
태양도 남은 빛이 넉넉하여 발길 닿는대로
쉬엄쉬엄 모처럼 느림의 미학을 맘껏 즐겨본다.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여기 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호기심을 채우는
내 여행 스타일에서 잠시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다.
마음이 가는대로 걷고,
촉각이 쏠리는대로 손바닥을 갖다 대고,
눈이 행복한대로 눈동자가 움직이고.
향기로운 곳으로 후각신경을 집중시킨다.
분주함은 프라하로 충분하다.
카프카를 따라가기엔 내 가방끈이 따라주질 못했고
'서울의 봄' 한복판에서 광주항쟁의 참상을 기억하는 내 머리는 '프라하의 봄'을 고통으로 느꼈고
나라 전체가, 또는 온동네가 유네스코 등록 문화유산이어서
셀 수도 없다는 그 나라들을 애써 외면한채
학생들에게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우리 문화재를 가르치며
우리 조상들의 위대함을 알려 자긍심을 심어주어야 했던 이율배반적인 정체성
그런 것들이 떠올라 조금은 괴로웠던 프라하
그런 것들이 정말 거짓말처럼 잊혀지는 여유있는 산책길이었다
넓은 초원을 볼 때마다 초원 위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맘껏 뛰어다니고
들꽃을 꺾어 화관을 만들어 쓰고
잠시 알프스 소녀 하이디처럼 동화속으로 들어가고픈 나의 꿈,
그 소박한 꿈을 이뤄준 동네 테네스버그...
자연은 인간에게 꽃을 주고 인간은 그 꽃으로 예술 작품을 만든다
테네스버그는 나에게 꽃을 주었고 난 그 꽃을 꺽어 꽃다발을 만들었다.
작품이름 ' 자운영의 미소 '미완성인 그 작품을 들고 다시 초원에 뛰어든다
지천으로 깔린 들꽃들....
'선택의 영광을 나에게도 달라.'는
그들의 외침에 처음엔 노랑꽃을 데려온다.
거기에 하일라이트로 보라색을 선택한다.
다른 꽃들을 외면한다.
낮은산 너머로 태양은 점점 멀어져가고
그 빛이 카메라 렌즈를 교란시킨다.
역광, 초원의 초록색이 잘 담아지지 않는다.
인간의 눈만큼 정확한 렌즈가 어디 또 있을까만..
그건 망각이라는 단어가
렌즈의 상을 더 이상 오래오래 기억되게 하질 않는다.
꽃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본다.
머리에 꽂아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귀뒤에도 꽂아보고,그들의 촉감도 느껴본다.
살랑살랑 그들의 웃음소리도 들어본다.
50미터 쯤 뛰어도 보았다.
숨이 찼다.
귀국해서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
누가 보든지말든지 이 순간 만큼은 자유로운 영혼이다
어찌 사랑하지 않을쏘냐..이 멋진 풀꽂들을...
그들도 내게 머무는 동안
짐승에게 먹히기 전의 화려한 삶이었을게다.
누가 언제 이들을 거들떠 보았겠는가?
그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보내는 나말고는....
열바퀴 정도 돌았나? 어지럽다. 반대로 돌아본다
이럴 때 남편은 연속사진으로 제일 행복해하는 그 순간을 좀 남겨주지
버스 타는 동안 피우지 못했던 담배만 뻑뻑 피우며
역광 운운하면서 내 하는 꼬라지를 보고 있다
초원 위에서의 나의 행복을 저장기억장치에 완벽하게 저장하고
마을로 다시 돌아오면서 남편과 그림자 놀이를 한다.
가운데 나의 작품 '자운영의 미소' 가 돋보인다
석양이 많이 길어졌다.
누구네집 담벼락인지 벽화가 노을지는 석양빛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이 마을의 작은 교회를 알리는 그림같다.
한참을 돌고 있는데 인솔자를 만났다.
다른 일행과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내 작품 '자운영의 미소'를 들려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카페도 있고, 필름 가게도 있고, 조그마한 마을에 없는 것이 없다
자전거를 탄 아이들이 씽씽 옆으로 지나갔다가
다시 또 마주친다.
손을 흔들어 주니 답례를 한다.
고 녀석들 건강하게잘 자라겠다.
이들의 삶은 도시의 화려함은 없을지라도
이렇게 멋진 자연과 소박한 풍요로움으로 사는 그들...
어떤 삶을사느냐는 결국 한 개인의 선택일게다.
나는 내 삶의 선택을 잘하고 있는지
노을 지는 시간속에서 되돌아본다.
큰 후회없이,하고 싶은거 하면서 그래도 잘 살았다.
만족하는 삶이다.
그러나 약간의 긴장은 있어야 하고
나이의 숫자가 아닌, 주름살도 막지 못할
끊임없는 호기심과 열정은 절대 잃지 말기를...
하나,둘 일행들을 만난다.
그들은 돌아가고 있었지만 우린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따뜻한 양지 쪽에 오릴조밀 모여있는 작은 마을을
낮은 숲이 보듬어 주고 교회의 종탑이 호텔 위치를 알려준다
평화롭고 평온한 마을이다.
경사가 있는 골목길을 내려온다.
남아있는 풍경들이 내 발목을 잡지만
앞에선 어서오라고 노을이 부른다
노을지는 테네스버그의 어스름한 저녁은
내가 운동을 끝내고 돌아오는
도시의 화려한 불빛에도 결코 가려지지 않을게다.
횡단보도가 너무나 넓어 한 번 신호가 끊어지면
다음 신호까지 약5분간의 기다림도
이젠 지루하지 않을게다
난 그때마다 이날 저녁을 회상하며
그 노을을 보고 있다고 착각하고 살테니까....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처음 보았을 때 충격이었다
프라하의 야경도 멋졌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을 야경은
바로 오늘 나무 사이 렌즈로 보았던 교회의 종탑과 테네스버그 일게다.
삼총사 숙소가 반지하였다.ㅋㅋ
정문에서 보면 지하고 이쪽 놀이터에서 보면 1층이다.
베란다가 바로 뒷뜰과 연결되어 탁자와 의자가 셋팅되어 있다
흩어졌던 탁자들을 다 모아서
'자운영의 미소' 를 꽃병에 꽂아 손님맞을 준비를 했다.
가져와서 그동안 먹지 않았던 한국 음식들과 소주로 가든 파티를 하자고
산책하면서 몇 팀과 의기투합....이런 자리가 마련되었다.
내가 가져간 커피포트에 물을 세 번이나 끓여 컵라면을 익히고
김,고추장,깻잎,멸치볶음을 안주 삼아 밤은 깊어가는데
2층에 묶은 외국인의 불평소리로 가든파티는 끝이 났다
그렇게 아쉬운 밤이 흘러갔다.
여행의 마지막 밤...
서글프고, 피곤한데도 잠이 오질 않는다
남편은 코를 골고 난 단편 '필름'을 다시 읽는다
샴페인 잔에 꽂아둔
'자운영의 미소'에서 국화꽃 향기가 난다.
이혼한 아버지의 안좋은 기억들로
우울한 시간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아버지가 남긴 한통의 필름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는다는 소설 '필름'
내 렌즈에 담긴 모든 사람들이 오늘밤도 행복하기를...
8월 5일 마지막날
날씨 ; 검은 구름 서 넛, 흰구름 약간...
서유럽은 열차시각 등의 이동 특성상 4시 모닝콜, 5시 조식, 6시 출발
조식은 도시락, 5시 출발도 있었는데
이번 동유럽 여행은 끝까지 버스투어이기에
아침 시간이 넉넉했다.
오늘은 투어이래 가장 이른 시각인 7시에 출발했다
오늘 가는 로텐부르크는 2004년 북유럽 여행시에 한 번 들렀다.
백작의 저택을 개조한 호텔에서 자면서
지가 무슨 성의 공주라도 되는 양
목에 힘을 주고 뻣뻣하게 굴었던 곳으로
성벽을 따라 아침 산책하면서 느꼈던
약간 쌀쌀한 공기를 아직도 기억하는 곳.
마지막밤을 로텐부르크에서 보냈고 하이델베르크를 구경하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아웃했던 기억이 새롭다.
왜 보통의 사람들은 마지막은 힘들고 가족들도 보고싶고
친구들의 근황도 긍금하고,
지치고 그런다하던데 난 왜 눈물이 나려할까?
왜 돌아가고 싶지 않을까?
내게 심한 현실도피증이 있는게 아닐까?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삘삘 싸돌아다니는 그런 병....
시간이 흘러도 치유되지 않는 그런 불치병....
고치려 하지도않고 오히려 즐기고 있는 그런 병..
역마살이라고?
근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한 번 집에 틀여박혀 있음 며칠동안 현간 문 열지않고 죽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역마살과 칩거, 그 둘이 시줄과 날줄이 되어 내 인생을 이끌어가고 있는 셈이다.
오토 캠핑장,
남편은 돌아오는 길에 어느 노부부의 초대로
안에까지 들어가 구경했는데 끝내주더라고...
모두 다 캠핑카로의 여행을 꿈꾸나
이런저런 이유로 실천에 옮기기는 사실 넘 어렵다
그러기에 그들이 더 부러운게다
로텐부르크는 독일의 유명한 로맨틱가도의 중심에 있는 대표적인 도시다.
로맨틱가도란 주변 풍경이 낭만적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나?
사실 첨에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광장히 낭만적이어서 그냥 휙 지나면 안되고
천천히 달리면서 멋진 곳에서 잠시 쉬어가는 그런 길...
하지만 진짜는 독일 아우토반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에
독일 중남부의 뷔르츠부르크에서 남쪽으로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에 가까운 퓌센까지의
약 300km에 이르는 도로의 호칭이다.
우리 나라로 치면 호남고속도로..이런 이름...
이 길로 알프스를 넘어가면 성대했던 시절의
이탈리아 로마로 이어진다 라는 뜻이며,
2차 대전 이후엔 관광을 위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중국의 실크로드가 비단장사를 위한 길인 것과 비슷하겠네...
로텐부르크는 남부 독일 바이에른 주에 속한 도시이며,
뷔르츠부르크에서 퓌센에 이르는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 도시는 2차대전 때 도시의 절반 가량이 파괴되었으나
지금은 거의가 복구되었다고 하는데
12세기에 축조되었다고 하는 옛 성벽으로 둘러쌓인 구시가지에는
전통적인 독일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간직한 수많은 건축물들이 있어
볼거리가 풍성하였는데 이미 1274년에 ‘자유 제국 도시’라는 명칭까지 들었던
유서깊은 도시로 우리 나라에 굳이 비교하자면 규모가 큰 민속촌?
오토 캠팽장이 있어서 캠핑카들이 줄지어 몰려온다
부러워서 차가 보이지 않을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구시가로 들어가는 입구중 하나인 갈겐문
로맨틱 가도의 하이라이트로,
성벽으로 둘러싸인 중세 거리가 즐비하여
마치 중세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제 2차 세계대전으로 도시의 약 4할정도가 파괴, 소실되었으나
완전하게 중세도시를 복원시켜놓은 곳으로 오랜 시간을 뛰어 넘어
근세에 그 가치를 인정받은 '중세의 보석'이라 칭송되는 고도이다.
서구의 유서깊은 도시와 같이 이 도시에서도
오래된 유물들이 산재해 있는 구시가 지역은
문화재의 보존을 위해서 대형 차량의 출입이 통제되기 때문에
구시가지 관광은 도보로 진행된다.
방금 성안에서 나온 공주 같지 않나요? ㅋㅎㅋㅎ
갑갑한 성안은 싫다고 평민복장을 하고 가출한..ㅋㅋㅋ
신,구시가지의 경계는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성곽이며
비좁은 성문을 통과하여 구시가지에 들어서면
동화속의 마을같은 구시가지 모습이 눈앞에 전개된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과일들을 보는 순간
공짜로 즐기는 이 香!!!!
와! 체리다,블루베리다,산딸기다....
북유럽 여행 후 가장 오래도록 남은 곳 중의 하나가 이곳...
무슨 복인지 두번씩이나 오게 되었는지..ㅋㅋ
길거리 간판도 어찌나 예쁜지요?
골목 골목길마다 비슷하나 아주 사랑스럽다.
호텔 간판도 매우 운치있고 기품있어 보인다.
사실 저런 식의 매달린 간판들이 유명한 곳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게트라이드 거리다.
내가 따로 간판들만 찍은 사진을 모아두었다.
가서보면 저런 간판들이 모여있는 것도 일종의 장관인데,
여기서 저 간판을 만나보니 이쪽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 접경지역의 문화로 저런 간판이 세워지는구나 하고 느껴진다.
실제로 잘츠부르크의 경우 정확히 독일과의 국경도시인데다,
그 접경지역도 이쪽 바이에른 지방이니,
저것이 오스트리아 문화든 바이에른 문화든
하여간 둘이 서로 연관관계가 있는 것임이 틀림없다..
1550년부터 있었던 호텔이라...
여긴 무엇을 파는 가게일까?
크리스마스 종? 아님 학교 종?
30년 전쟁이 발발하면서 로텐부르크도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데,
무엇보다도 뉘른베르크와 가까워 마르틴 루터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열렬한 루터교측의 개신교 도시였다고 한다.
문제는 이곳이 뉘른베르크,
즉 루터교의 본거지 도시로 들어가는 관문중에 하나였던 것.
그래서 카톨릭 군대가 이 도시를 공격했고,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져버린
(당시 카톨릭 군대는 단 300명의 군사만 잃고 이 도시를 함락시켰다고 한다.)
로텐부르크는 그때부터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전쟁이 끝나자 곧바로 이 도시에
흑사병이 돌기 시작해서 결국 모든 재난이 끝나고나서부터는
거의 사람이 살지않는 유령도시처럼 남아버린 곳이었다고 한다 .
이후 전쟁과 흑사병을 피해 이주했던 지역민들이 돌아오면서
다시 도시가 부활하게 되었으나
2차 세계대전시 공습을 당하면서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되었다.
뉘른베르크를 비롯한 이 일대가
특히 히틀러가 사랑한 도시고,
그만큼 독일군이 주력해서 지키려고 하다보니
전쟁 막바지의 공습에 엄청난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당시 미군과 독일군이 이 도시에 대치에 있었는데,
이 도시의 아름다움이 무참히 망가지는 것을 본
독일군 소령과 미군 장군이 서로 협의를 보아,
결국 이 도시는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재건하여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역사를 듣고보면, 마르틴 루터부터 해서 히틀러에 이르기까지,
이 도시도 참 바람잘 날이 없었던 것 같다.
하기사 오히려 그런 사연들과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서
지금에 이르러 이 아름다움을 더욱 빛내는 사연들로 남게 되었을지로 모른다.
2004년 아침에 일어나 성안을 산책하면서....
그 날 그러니까 8월 9일 아침은 무지 싸늘했다
두꺼운 겨울 점퍼를 지퍼까지 올리고 있었으니...
로텐부르크시의 중심인 마르크트 광장(Martplatz)이다.
중요한 볼거리들은 대부이 광장 주변에 모여있다
뒷쪽이 마이스터 트룽크 시계로써 이 도시의 대표적인 명물로 여겨지는
'술 마시는 시장 시계'라는 뜻의 'Meistertrunk'는 시의원연회관 벽의 벽시계 인형인데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매시 정각마다 시계 창문이 열리면서 인형극이 공연된다.
이 사진은 내가 2004년 북유럽 여행 중에 야경으로 찍은 9시 시계탑 공연이다.
9시 정각이 되자 뻐꾸기 시계처럼
양쪽 문이 열리면서 시장님이 와인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문이 닫힌다
이 인형은 독일과 프랑스의 종교전쟁이었던 30년전쟁 당시
이 도시를 점령한 캐톨릭 세력의 프랑스 장군으로부터 포도주 한 통을 단숨에 마시면
시민을 학살하지 않겠다는 제안을 받은 당시의 시장이
시민들의 생명과 도시의 보존을 위해서
커다란 병에 든 포도주를 원샷해서
시민들과 유적들을 구해 낸 시장의 이야기를 재현하고 있다는데
인형이 나올 시간이면 시계밑 광장은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 도시관광의 하일라이트
그러한 역사적 사실 덕분에 매년 5월만 되면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마이스터트룽크(Meistertrunk)축제가 열린다고 하는데,
일종의 성령 강림제로, 그때를 재현하는 연극과 같은 행사를 벌인다고 한다.
심지어,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이스터트룽크 시계탑까지 있어 실제로 술마시는
뉴슈 시장의 모습을 조각해둔 곳까지 있을 정도라고 하니,
그 사건이 이 도시에서는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가 있는 사건이기는 했었던 것 같다.
(하기사 정확하진 않지만, 짐작컨데,
마이스터트룽크라는 뜻도 술꾼 마스터... 뭐 대강 그런 의미가 아닐까?
역시 술로는 바이에른 사람 못당한다는 말이 사실인가보다.)
오늘은 아침 일찍이어선지 사람들도 많이 모이지 않는다.
왼쪽 건물이 시청사로 1250년 고딕 형식으로 지어진 이후
1572년 르네상스 양식으로 마무리되어 완성된 건물이다.
그래서 시청사의 뒷부분은 고딕 양식,
앞부분은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양식을 찾아볼수 있는데,
오히려 이렇게 뒤섞인 건축의 느낌이
더 아름답게 잘 어울려진 로텐부르크의 상징 건물이기도 하다.
중세시대부터 연방주의 체제에 이르기까지 쭉~~
이 도시의 정치적 핵심 건물로 이용되어졌으며,
사실상 이 건물을 중심으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을 위한 시설들
호텔이나, 레스토랑, 카페와 같은 건물들이 많이 세워져 있다.
실제로는 여기 로텐부르크 사람들의 일상은
오히려 이 성밖에서 더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따지고보면, 사실 이 건물도 로텐부르크의 지리적 핵심위치는 아니지만,
어쨌든 오랜 세월을 견뎌온 성곽 안쪽에 있어서는
분명 중심적인 위치라는 것은 분명하다.
시청사의 부속건물인 종탑은 그 높이가 60여m 로 좁은 계단을 통해
나무계단을 올라 종루 꼭대기 전망대에 오르면 시가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는데 ㅠㅠㅠ .
종탑 꼭대기에서 노래소리가 들린다. 손을 흔들었다.누군가는 내게도 손을 흔들었으리...
로텐부르크는 단순히 독일의 중세시대 시골의 정취만을 가지고 있는 도시는 아니다.
이렇게 작고 부분부분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그리고 귀여운 색감으로 온 마을이 구성되고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 도시의 매력을 뿜어내는 곳이다.
나무로 된 창문덮개부터 시작해서 간판들이나 표지판,
그리고 건물의 색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이 적절하게 자신의 입장에서 최대한 그 매력을 발산하면서
이 도시 전체를 일종의 테마파크와 같은 느낌으로,
마치 환상속을 경험하 듯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캐테 볼파르트(Kaethe Wohlfahrt)라는 유명한 크리스마스 용품점
일년 내내 크리스마스에 관한 모든 물품을 파는 가게다.
일행들도 몇 개 사던데...
녹색의 트리
흰색의 트리
이거 방안에 갖다 놓으면 완전 력셔리하겠다.
지붕의 다락면과 건물의 벽에 나무를 붙여서
독특한 문양을 나타내는 독일 전통 양식의 집들이 이채롭다.
동화책에서 수없이 보아왔던....
마이스터 트룽크 시계탑을 가까이서 담았다.
바로 여기가 테디베어 상점인 Teddy's Love Rothenburg 인데,
실제로 매니아들의 말을 들어보면,
독일에서도 몇 안되는 테디베어 오리지널 회사와 정식 계약을 맺고
물건을 들이는 가게라서
매니아들이 찾는 희귀상품들까지 갖추고 있는 테디베어 전문점이라고 한다.
아니, 이런 시골에 무슨 이 정도의 테디베어 전문점이 있나 하겠지만,
원래 관광지에서는 쇼핑도 일반적인 곳보다
더 많이 사고 지르고 관심이 가는 것이 사람 심리이다보니
평범한 대도시에 비해 오히려 이 정도,
독일에서 관광도시로 1, 2위를 다투는 도시인 로텐부르크 정도면
매니아 층을 상대할 만한 가게가 생기는 것도 무리가 아닐 듯.
동료들 중에 테디베어를 엄청 좋아하는 어른들도 많이 보긴 했는데 난 영~~~
죽부인 용도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마그리트 광장을 중심으로 골목길은 다 훑으며 돌아 다녔다.
관광객인지 현지인이지 모르는 아저씨들이
카메라 들고 설쳐대는 내게 어찌나 심한 관심을 갖는지 귀찮았다
간판을 찍느라 남편과 잠시 떨어져 혼자 있으니 같이 사진 찍자고 들이댄다.
잘생긴 젊은 사람이었으면 따라갔을지도 모르모르.ㅁㄹ...ㅋㅋㅋㅋ
아래 골목으로 내려가보기도 하고
2004년엔 밤에 도착해 6시면 문닫는 이곳 사람들을 원망하며
문 밖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 갔는데
그래, 아쉬움이 남으면 담에 또 오게 되는구나.
그땐 성안 귀족집을 개조한 호텔에서 자고
새벽에 일어나 성 주위를 따라 산책했다.
처음 만져보는 시원찮는 디카 땜에
사진을 건질게 없었는데 오늘 원없이 사진 찍었네...
이쁜 가게 구경하랴,모델하랴,간판 찾아 찍으랴, 정신 없었네..
이국적인 배경과 죽여주는 모델과의 만남!!!!ㅋㅋㅋ
남편 : '내가 사진을 참 잘 찍었다. '
아내 : '내가 좋은 카메라 사줘서야.'
남편 : '카메라 좋으면 다 작품 사진찍게? '
아내 : '모델이 좋으니까 좋은 사진 나오는거 아니겠어?'
남편 : .......
아내 : '그래 참 잘 찍었네.. 아내만 모델로 해서 성공한 사진작가도 있다던데...'
남편 : '그럼 렌즈 몇 개 더 사줘'
아내 : 있는것 만으로도 이렇게 잘 찍는데?'
남편 : '...... '
아내 : 미소 짓는다.
난 심한 공주병에 걸렸다...
그냥 불치병인 채로 그렇게 늙어가리...
나의 레이다 망에 걸린 건?
색감이 죽여주는..그래서 놀라는..
딱 내 스타일....
딱히 가방 패션도 좋아하지 않으면서.... 그냥 ...이뻐서....
노랑,검정,핑크 중 내가 제일 갖고 싶었던 건은 무엇이었을까?
가죽도 아닌 것이 8만원이라 가격 땜시 패스!
비엔나에서 클림트 가방을 이미 질러 버린터라...
독일의 소세지는 유명한 명물이자 이 나라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음식
실제로 이런식의 소세지들은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많은 유럽인들에게 샌드위치 속 재료나
술안주로 사랑을 받는 메뉴이기에 자주 보는 거지만,
(바이에른이 독일에서도 소세지로 유명한 지역중에 하나)
명성만큼이나 소세지가 모양,때깔부터 달라보였다.
첫날 편의점에서 가죽을 씹는 듯한 질긴 소제지 맛을 본 난
봐도 입맛이 당기질 않는다
뒤에 Burgtor의 모습이 보인다.
가까이서 보면 크기는 큰데,
색감과 주변 건물들과 비교했을 때,
웅장하고 위엄이 느껴진다기 보다는 참 귀엽고 정겹다
2004년도의 같은 장소....저녁 어스름 무렵...헤어 스탈 어때?ㅋㅋㅋ
그때 목에 둘렀던 스카프를 오늘도 하고있네...
같은 장소 다른 느낌...
이 가게는 로텐부르크의 전통적인 수공예 능력을 한눈에 볼수 있는 가게로
대표적인 것이 사기로 만든 집모양의 촛불꽂이다.
사진에 나온 저 집들이 전부 촛불꽂이인데,
각이 잡힌 건물모양의 모형안에 흔히 파티할 때 쓰는
납작한 초를 집어넣어 우리 나라의 등처럼 쓰는 것들이라고 한다.
하나하나를 놓고 봐도 참 예쁘지만,
저렇게 여러개를 한데 모아두면 정말 환상이라는 것.
문제는 가격인데, 워낙 유명한데다 명품급에 들다보니,
그리고 정말 수공예품이다보니, 가격이 쉽게 살수 있는 정도의 물건은 아니다.
가장 저렴한 것이 약 20유로 정도? 그래도 어쩌겠는가?
저리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유혹하는데?
난 빠져나와야지......
다시 만나는 모짜르트...
모짜르트의 대표적인 곡 '휘가로의 결혼'의 초연 때
황제가 꾸벅꾸벅 졸았다하여 실패한 작품이었는데
체코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좋아했다고 ...
천재를 알아보는 체코 사람들의 안목이 깊었다는게지.
그래서 돈 지오반니를 프라하 시민에게 바치고 초연도 프라하에서...
천재만이 천재를 알아본다는....
긴 줄로 이어진 인형을 파는 곳..모빌처럼 문앞에 걸어두면 깜찍하겠다
장사하는 미키마우스 메~롱
다양한 인형들....
성 야코프 교회 (St. Jacobs-Kirche)
매우 거대한 규모의 교회인데,
이렇게 작은 도시와 마을에
이런 큰 교회가 세워지고 건립되어졌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어지간한 대도시의 교회나 성당만큼이나 엄청나게 컸다.
어쩌면 주변 건물들이 작기 때문에
오히려 더 그 둔탁함과 거대함이 튀어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정치적인 메인 핵심 건물인 시청사 건물보다
훨씬 큰 규모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당시 얼마나 종교의 권력이 막강했는지를 볼수 있고,
교회의 규모로 보아 이 도시가 당시
얼마나 융성하게 발전했던 도시인지 알수 있다.
어지간한 대도시 규모 이상의 교회라면,
그 당시 그 대도시의 인구만큼이나 수용인원이 있었다는 건데,
그만큼 이 도시가 한때,
특히 르네상스 이후 시기부터 얼마나 발전했던 도시였으며,
동시에 저런 규모의 교회를 지을 정도로 부유한 도시였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유럽의 도시들은,
특히나 로텐부르크처럼 옛모습을 최대한 많이 간직한 도시는,
교회의 규모나 구조, 그리고 위치 등으로도
이 도시의 대강의 역사를 파악할수 있는 특징이 있다.
심지어 그 교회가 누구를 상징하고 있는가에 따라
그 도시의 사회 문화를 가늠해 볼수도 있다고 하니까 말이다.
지붕 달린 오토바이를 난 처음 봤는데 남편이 한국에도 있단다.
이쁘긴한데 별로 데려오고 싶진 않았다
저 조그마한게 BMW
저 문을 통과하면 이 예쁜 성마을과는 작별이다.
도르래가 달린 우물터 발견!
나만,우리 가족만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구경하는 타인들을 위해 집안 보다 밖을 정성스럽게 가꾸는 그들....
성밖으로 나간다. 로텐부르크여 안녕...
뒤돌아보지 말고 씩씩하게 걸어갈 것!
머릿속에 담았던 모든 것들 다 지우고 다시 출발 할 것!
버스 주차장으로 오는 길에 만난 싱그러운 잔디밭
연초록의 색감이 자꾸자꾸 셔터를 누르게 했다.
성밖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가 있었다.
흐르는 도랑처럼...흐르는 도랑에다 아쉬움은 흘러버리고 가길....
가자! 프랑크푸르트로!
버스를 타고 공항이 있는 프랑크푸르트로 출발
한가로운 전원 풍경을 지나
독일 중부 도심을 흐르는 프랑크푸르트 마인강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도심의 주 교통수단 전차
어디로 가고 있냐면......점심을 먹으러 중극식당에 간다.
5코스가 나오는데 젓갈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김치가 맛있었고 미역국도 시원해서 좋았다.
점심 후 또 면세점에 데려간다.
여길 들르려고 기를 쓰고 시간을 재촉하고
자유시간도 넉넉하게 주지 않고...
쌍둥이 칼로 유명한 독일
김씨가 운영하는 2층까지 있는 제법 규모가 큰 면세점..
우리를 집어넣고 문을 잠근다.
휘슬러 밥통이며, 냄비 셋트, 인덕션 등 고가의 물건을 서너명이 살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공항이 있는 프랑크푸르트의 정확한 명칭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Franfurt am Main)
'마인강 위의 프랑크푸르트'라는 뜻
이 곳 말고도, 동쪽에 폴란드와의 국경쪽에도 '프랑크푸르트'가 있는데,
그 곳의 이름인 '프랑크푸르트 오데르'와 구별하기 위해 '암 마인'이 붙었다.
택시를 타거나 길을 물어볼 때 프랑크푸르트라고 하면
엉뚱한 곳에 내려 줄 수도 있으니 반듯시 암마인 프랑크푸르트라고 말할 것.
프랑크푸르트에 가까이 오자 굵은 비가 쏟아진다.
독일에 도착해서도,나갈때도 비가 내리는걸 보면
독일인들이 햇빛이 비칠 때 모두 밖으로 나와 일광욕을 즐기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래서 양산 쓰고 다니는 우리네 동양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칙칙하고 습하고 비가 자주 와서 우울한 독일은 유명한 철학자가 많고
이탈리아 사람들은 환한 날씨 때문에 놀기 좋아하고
룰루랄라~~흥겨워해서 성악가가 많이 나온다고.
틀린말은 아닌것 같다.
날씨가 더운 나라일수록 잘 사는 나라가 없다.
나도 더우면 만사가 귀찮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니...
날씨가 그 나라 국민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걸 새삼 느낀다
디디투어에서 귀국티켓 4장을 확보하지 못해
노부부 두 분과 진갑 맞으신 다리 불편한 아내,
인솔자가 영국으로 1시간 갔다가 거기서 인천공항으로 온다고...
견우와 직녀가 된 아저씨가 처음엔 화가 많이 나셨던데
어쩔 수가 없었나보다.
참 황당한 일이다.
역시 여행사도 급이 있고 가격차이도 있고..
신중하게 선택할 일이다.
3시에 출국심사를 마치고 면세점에서 아들이 좋아하는 쵸코렛 구입 후.
우리만 일찍 공항 로비에 들어왔다.
다른 팀들은 면세점 투어에 나섰으나 발바닥도 아프고 딱히 구경하고픈 맘이 없고
오히려 비행기 이,착륙하는 모습이 더 재미있다.
4시간 동안 여행 후기도 정리하고 7시 30분에 탑승하여.
기내식 두 번 먹고 9시간여 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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