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가우디,그를 만나러 바르셀로나에 가다

올레리나J 2009. 11. 6. 15:19


밤 늦게 도착해서 묵었던 바르셀로나 와곽의 호텔에서 9시에 나오다.



하늘을 향해 기도하듯이 찌를 듯이 서있는 네 개의 탑,
거무죽죽한 색채 때문에 약간은 괴기스러운...
, 중세의 분위기로 끌어들이는 고풍스런 외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 가족 성당)
1882년 설계사 비아르가 짓기 시작한 개인적인 차원에서 시작된 성당이었으나
1년 쯤 짓다가 성당 설립자와 불화로 1883년부터
젊은 나이인 31세의 가우디에게 성당의 건립이 맡겨지게 되었다.
1926년 성가족 성당 근방에서 전차에 치인 상처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가우디는 43년 동안 성당 건설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안토니오 가우디는 1852년에 까딸루냐 지방에서 태어났고
바르셀로나에서 건축학교를 고학으로 졸업했다.
1878년 파리 만국박함회에 출품한 장갑을 진열하는
유리진열장을 출품하게 되었는데,
사업가인 에우세비오 구엘백작이 그 작품을 보고 반하여
구엘 저택과 구엘 공원 등의 건축을 가우디에게 의뢰하고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고 한다.



가까이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거대한 가우디의 불후의 명작
멀리 떨어진 공원에서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다



천재 건축가인 가우디는
개인적으로는 매우 쓸쓸하고 외로운 삶을 영위했던 것 같다.
세 명의 여인에게 청혼했으나 성격이 괴팍하여
남편감으로는 적합치않다고 거절당하여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사람이다.
1926년 74세의 나이로 전차에 치어 사망하기까지 천재 예술가 곁에는 그를 감싸주며,
그를 위로하며, 사랑해주는 여인, 한 명 없었으니,
그의 삶이란 얼마나 삭막했고 쓸쓸했고 외로웠을 것인가.....
. 전차에 치인 너무나 초라한 사고 당시의 그의 모습 때문에
거지로 착각하여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고.....
외롭고 쓸쓸하게 노년의 삶을 더욱 믿음에 의지하여 성당건축에 몰입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사후 82년이 지났지만,
가우디가 그렇게도 몰두하였던 성당건축은 120년 동안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몇년이 걸려 완성될지 아무도 모른다.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고 난 죽을지도 몰라



큰 길을 건너 성가족 성당 가까이 가본다



높이 100m나 되는 탄생쪽의 4개의 탑



성당이 완공되면 탑은 모두 18개.
당시는 기중기가 없는 때라서 가우디는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
돌을 하나하나 쌓았단다



어찌나 거대하고 세밀한지 다체로운지
인간의 손으로 만들었다는게 믿기지 않는다.



고개를 완전 뒤로 접고 넋을 잃고 올려다 보았다.
이날 하루종일 목이 뻐근...



내가 카톨릭 신자였다면 아니 성경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면
훨씬 많은 것을 보았을게고 훨씬 많은 것을 느꼈으리라..
아는 것만큼 보인다하지 않았던가?



고난의 파사드 쪽 조각들







가우디가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지었다는 학교..
성당 건축 당시 막노동하는 인부들의 자녀들을 모아서 학교를 운영하였다.



가난이 대물림되어서는 안되며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켜야한다는게 그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가우디의 하교 초창기 모습



예술의 도시라는 바르셀로나에 와서,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를 알게 되었고
그의 놀라운 천재성을 내뿜고 있는 건축물을 대하면서 감탄하게 되었다 .
성가족 성당을 만들기 전에 구상했던 모형



내부. 현대적인 공사 기계음이 지금이 21세기 라는걸 말해준다.



해바라기꽃을 연상시키는 천정



스테인드 글라스



기념품 가게의 완성된 성당 모형



완성되면 이런 모습



다시 차를 타고 가우디의 또 다른 작품을을 만나러 구엘공원 가는 길
봉지들고 있는 두 여인은 모중학교 교사인데
가는데 마다 얼마나 많은 쇼핑을 하던지 내가 쇼핑여인네들이라 별명을..




구엘 공원 안내도



공원 입구의 거리의 악사...
은은한 기타 선율이 맘을 차분하게 했다.
이런 선물을 주는 예술가들에게 부디 축복이 있기를...



구엘공원 입구...
돌을 나무모양으로 쌓고 육교 위는 차도 아래는 산책길을 만들었다.
건축재료로 비싼 재료를 쓰지않고 시멘트가 없었던 100년 전에
석회에 모래를 섞어 돌을 접착시키는 방법을 썼다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단단해진다나?



가우디는 돌산에서 나온 쓸모없던 돌로
종려나무 모양으로 돌을 쌓아서
아름답고 기괴스럽기까지한 조형물을 만들었다.
이곳이 부유층의 사적인 전원주택지가 되었더라면
이런 훌륭한 경관을 구경할 수 없었을 터.



1900 ~ 1914년 까지
해발 100m의 비탈진 돌산에
60채의 영국풍 전원주택지를 조성하려 했었던 구엘 백작은
겨우 2채만 짓고 결국 실패하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시기적으로 너무 일찍 전원도시를 구상했고,
외진 곳에 교통이 발달되지 않은 탓,
수도사정이 좋지 않아 바르셀로나 부유층들이 좋아하지 않은 이유,
등으로 자금줄이 막히자 공사가 중단되고
1922년 바르셀로나 시당국이 구엘의 후손에게서 이곳을 사들여
시민공원으로 개방하게 되었다
개인의 사업실패가 때로는 많은 사람을 위한 공공의 이익으로 거듭나게 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 앞에서 그 또한 감사할 따름...



마치 원시 자연동굴 같기도 하고,
캄보디아 정글에서 발견된
무너진 사원의 일부같기도 한 다리 아래 기둥 구조물
거의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이용하였고
그 자리에 있는 나무등걸도 자르지 않은 채
직선보다는 사선과 곡선으로 선을 이룬 기둥에
지중해의 강렬한 아침 빛이 스며들어 짙은 음영을 드리운다.
그곳에서 들리던 실로폰 연주는 얼마나 가냘프고 마음을 따뜻하게 하던지...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모델로 만든 그 당시의 유치원 건물....



정문에 있는 경비실조차 예술적이다.
사방 위에서 보면 십자가 모양이고,
버섯모양의 꼭대기 흰 부분은 컵



관광객이 뜸할 때 한 컷!



구엘 공원은 100년 전 사람인 가우디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가득 채워져 있다.
동화책 속의 동화나라 속에서 거닐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바르셀로나는 지중해의 해와 바람으로 숨쉬고
가우디의 예술혼으로 먹고 산다던 말이 실감이 났다.



울타리 조차 섬세하다



가우디는 늘 그랬단다.
나는 창의력이 없으니 모든 것을 자연에서 본따온다고...



마귀할멈의 집으로 나타낸 경비실



모자이크 용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상상속의 집을 본따서 만든 왼쪽 경비실과 유치원
계단을 쭉 올라가면 옥상인데 광장이라 이름할 만큼 넓었다
바르셀로나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왔고...



86개의 기둥..기둥은 속이 비었고 빗물이 통과되어 지하에 저장, 분수의 물로 사용되어짐



기둥위 천정



철공소를 하던 아버지 때문에 철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았던 가우디는
고철을 이용해 야자잎을 만들어 철문도 예술적으로 완성했나보다



벽의 타일 문양도 가지각색



여길 방문하는 관광객의 십중팔구는 이 도마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다



도마뱀 뒤의 벤취에 낮잠 즐기시는...







동화속의 집



정면의 대계단 위 도리스식 기둥이 늘어서 있고
그 위쪽 중앙광장은 "그리스 극장'이라 이름 붙였다.
도마뱀의 형상으로 만듦



광장은 행사장으로 쓰려고 만들었는데 파도모양처럼 보이기도 하고
도마뱀의 긴 꼬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타일 돌벤취는 인체가 등을 기대면 아주 편안하게 설계되어 있다.
인체를 본떠 단면의 형상을 정했다고 하는 유명한 타일로 장식된 벤치.
세계에서 가장 긴 곡선 벤치로 길이 300m.







폐철을 이용해 만든 입구를 나오며...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초현대식인 가우디의 작품들로 가득찬
구엘공원을 도무지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루종일 이곳에서 놀아라해도 싫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구엘 공원.
아니 그 이름은 차라리 가우디공원 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을



바르셀로나 항구..



점심 먹었던 해변가의 식당



스페인식 해물 철판 볶음밥 빠에야..짜다.



해변가의 생선 비늘 조형물



해변가엔 조깅하는 사람,산책하는 사람,자전거타는 사람들로
여유로운 스페니쉬들의 일상이 보였다



요트 선착장..하루 정박료가 300유로라나?
그리하여 유럽에서는 요트의 소유로 부자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다네...
자기 자신이 요트를 소유하기엔 너무나 많은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요트를 소유한 친구를 가지는 것이
훨씬 유리하고 편리한 인생을 즐기는 방법이라네.



봄날처럼 포근한 날씨



맞아, 바로 이게 지중해의 숨결이야..



야자수에 기대어 따가운 햇살을 피하고 있는데
옆에서 일광욕이다







바르셀로나 해변



점심을 느긋하게 즐기고 올림픽 주경기장에 가다



1992년 올림픽이 열렸던, 바르셀로나 몬주익 올림픽 주경기장
사실 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스페인은 관광지로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수십년간 독재를 한 프랑코의 정책때문에...
서울 올림픽을 모델로 올림픽을 준비한 바르셀로나는
그 당시 관광지나 도로에 우리나라 말로 안내가 되어있을 정도였다고
그만큼 교류도 활발했겠지만 올림픽의 열기가 사라지고 난 후의 바르셀로나는
황영조 기념탑이 있는 몬주익에서만 한글을 볼 수 있으니
나라간의 교류는 이해타산이 첫번째인가봐



우리나라 황영조 마라토너가 마지막 코스로 달려갔던 곳.
황영조 선수는 이곳에서 23km 떨어진 도시에서 달려와,
마지막 코스인 몬주익 언덕을 달렸다.
일본 선수가 선두였고 황영조 선수가 바짝 그 뒤를 쫓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갈라진 내리막길로 들어서자 황영조 선수는 선두로 나가서
일본 선수를 따돌리고,
몬주익 주경기장을 당당하게 들어온다!
다시금 그 당시의 우승의 감격을 회상하고 있었다.
황영조 기념탑은 이렇게 고즈녁하고 아담하고 예쁜 공원으로 조성되어
이역만리에서 이곳을 찾는 한국인들과 교민들 가슴에,
민족에 대한 자긍심과 矜持를 심어주고 있었다.



올림픽 상징탑







바르셀로나가 한 눈에 보이는 몬주익 언덕에 올라가다



바르셀로나 전경



항구의 모습







내가 손으로 잡으려고 한개 좌약건물



이런 모양의 건물



람블라스 거리 입구



람블라스 거리는 북적이는 인파의 80%는 관광객, 10%는 소매치기, 10%는 스페니쉬!!!



1년 내내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우리나라의 명동? 청계천?
뒤로 보이는 탑은 콜럼버스 발견탑 그 뒤가 점심먹었던 바르셀로네타 (해변)



활기찬 분위기가 기분을 들뜨게 하고,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실물과 거의 흡사한 초상화를 그려대는 거리의 화가들 곁을 지나고,
오랫동안 들여다 보아도 도무지 싫증나지 않는
악세사리 가게를 지나간다
다 이뻐서 오히려 하나도 사질못한다



람블라란 물이 흐르는 것을 뜻하는 아랍어.
옛날 이 지역 아래에 구시가로 흐르는 수로가 있었다고.
카페와 레스토랑도 많다.



1유로 내밀고 베트남 모자 써 보다



걸어도 걸어도 다리 아픈 줄 모른다.



람브라스 거리의 특이한 점은 중앙통은 사람들이 다니는 인도이고
차도는 이렇게 한쪽으로 밀려나 있다



FC 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 왼쪽에 있는 보께리아 시장 입구



이 시장은 규모면에서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자랑거리 중 하나.



하몽과



눈을 황홀하게 만들었던 사탕...젤리들.



내가 좋아하는 체리도 아주 싸서 샀는데 먹을 시간이 없어 집으로 가져왔다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며
심심치 않게 이런 행렬들이 줄을 잇는다



람블라스 거리의 애완동물 거리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이 거리가 정말 맘에 들었다
내것도 아닌데 맘이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이라니...



꽃집 앞에서... 나더러 사진 찍자고...내가 아니고 이 남자가..



길거리 행위 예술가들







없는것 빼고 다 있다니까....



눈도 즐겁고 귀도 즐겁고..
하루 왼종일 24시간 이곳에서 보내도 재밌겠다



까사바뜨요 (바뜨요의 집)고양이를 형상화한 바뜨요의 집
대단한 작품이라해서 별도 독립건물로 되어 있지 않다.
그냥 일반 건물들 틈새에 끼여있다



이 건물은 1905~1907년 사이에 가우디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바뜨요 식구들을 위해 고양이 형상을 본 떠 개조한 집인데
독특한 디자인의 벽을 형형색색의 유리로 모자이크해 놓아
아침 햇살이 반짝이면 건물 전체가 보석처럼 보인다고
어스름한 초저녁인데도 은은한 불빛에 비친 가우디의 손길은
너무나 아름답기만 했다
발코니가 정말 고양이의 큰 눈 같네?



카사(집)밀라(사람 이름)는 고급 아파트
실제로 현재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워낙이 건물 모양이 특이하고
가우디가 그의 자연주의적인 정신에 의해
바다를 주제로 곡선형태로 설계한 것으로
관광객이 많다보니 그중 한층과 옥상만 공개를 하고 있다.
오우! 내가 찍은 이 사진 넘 멋져!
축 늘어진 가로등과 이제 막 등을 켜는 까사밀라와의 환상적인 조화!



건물은 역시나 외벽부터 심상치 않다.



돌과 철 구조물을 이용하여
미역 줄기를 연상케하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각 층의 발코니를 처리



그가 아무리 자신에게는 상상력도 창의력도 부족하다고 겸손의 말을 해도
그의 작품에 드러나는 그의 천재성에 놀랄 뿐 ..



옥상에 있는 환기탑과 굴뚝은 중세시대 서구의 철 투구를 쓴 기사의 모습을 표현
이 모형을 본따
헐리우드의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인 조지 루카스가
영화”스타워스”에서 제국의 군대를 만들었는데
이것만으로도 시대를 100년은 앞서 간 가우디의 상상력을 읽을 수 있겠다



모자이크 타일을 붙여서 마치 하나의 독립된 조각물을 보는 듯



버스 정류장 의자도 타일



까사밀라 1층 옷가게... 아파트 상가랄까?
여름 방학 때 세계미술사 공부하면서 어느 교수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종이를 손으로 구겨 던져 놓고
그걸 본떠서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가우디라고....



가우디를 만나서 너무 행복했던 하루...
십여년전 가우디란 이름을 접하고 인터넷 검색창에 가우디를 쳤더니
가죽제품 매장과 가격비교 싸이트가 쭉 뜨더니만
이렇게 멋진 예술가의 이름이었다니..
산길에서 한식으로 저녁을 먹다



이번 여행 중 가장 맛있고 가장 행복만땅

 


Romance 첼로연주 달콤한 인생 ost Yuhki Kuramoto- Romance Second Romance - Yuhki Kuram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