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난 인도여행

19세 금...에로틱한 카쥬라호

올레리나J 2009. 11. 5. 15:48
여행......
머리는 그 시간을 잊어버리지만
가슴은 그 사람을 기억한다


# 1 아름다운 시골 마을 오르챠 호텔뒷편으로 1월 15일 화요일의 해가 솟아오른다.


# 2 건기로 말라있는 강물에 동네 사람들이 몸을 씻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 3 오늘은 한국사람들이 제일 좋아한다는 애로틱 사원이 있는 카쥬라호로 오전내내 이동한다


# 4 평온했던 오르챠 력셔리 호텔을 나오면서...


# 5 가이드가 탄 4호차.가는 길을 의논하는지 기사들이 다 모였네..옆에 흰옷의 남자가 여주대학 교수인데 여행내내 희옷을 입어서 앙드레 탁이란 별명을...모습이 완전 느끼~~


# 6 먼지나는 길...비포장 도로를 6시간 여 달려서 도착한 카쥬라호의 CLAKS 호텔에 도착했다


# 7 호텔 앞 모습


# 8 호텔 로비에서 반만겨주는 꽃 항아리


# 9 호텔에서 점심을 먹다


# 10 점심 후 휴식시간에 호텔을 한바퀴 돌아봤다..뒷편에 아담한 수영장이 있고 바베큐 파티장도 있다


# 11 아마 인도여행중 가장 깨끗하고 쾌적한 호텔이었지 싶다.


# 12 종이 약간 다른것 같은 무궁화


# 13 여행 6일째...매일 강행하는데도 전혀 피로하지 않았다..오히려 가는 시간이 아쉽기만 했다


# 14 사원 가는 길 대낮에 나무 위에 박쥐가 나뭇잎처럼 매달려 있다


# 15 어제 오면서 길거리에서 만난 자이나교 스님


# 16 사원 안에 들어오니 맨 먼저 보이는 성이 산뜻했다


# 17 인도는 매우 흥미롭다. 특히 고대부터 수많은 인종들의 각축장이었으며, 아리아인 이전의 선주민, 인도 아리아인, 그리스인, 스키타이인,
훈족, 터키인, 몽고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저마다 인도를 자신들의 영토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 18 그들 각각의 인종은 자신들의 사회제도, 예술과 건축술 그리고 문학 등을 인도 땅에 심어 놓았다.


# 19 민족의 순환이 반복되면서 인도는 자연히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힌두이즘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창출하게 되었다.
이런 인도 문화의 특성을 '다양성 속의 통일성'이라 부르지 않을까?.


# 20 인도인에게 있어서 과거란 단순한 이야깃거리가 아니다.
그들의 고대 문화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그들의 삶 속에 생생하게 숨쉬고 있다


# 21 오늘날 우리가 인도의 종교를 가리키는 말로 쓰고 있는 힌두이즘이라는 말은 원래 인더스 강 유역에 살고 있던 사람들(신두)의 생활 풍습이라고 한다


# 22 기원전 1000년 무렵에는 아리아인들이 갠지스 강 상류에 정착하면서 점차 세력을 넓혀 가는데
이때 이들과 인도 토착민중의 지배세력에 의해 카스트제도가 생겨났고 불교 또한 이때 성립되었다


# 23 인도 대륙 중심부에 위치한 카쥬라호는 동서에 걸쳐 1000년 가량 된 30여 개의 사원들이 산재해 있다.
특히, 탄트라 라고 불리 우는 에로틱하고 환상적인 조각상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인도 예술의 절정을 말해주기도 한다. 서쪽에 있는 이러한 사원들은 중앙
또는 남쪽의 다른 사원들과는 달리 장구한 시간의 영화를 반영하지는 않았지만 950년부터 1,050년까지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에 건립되었다.


# 24 어떤 이는 카쥬라호의 사원이 행복과 종교적 감흥, 부유함, 천재적 예술성, 심미안적인 감수성에 대한 독특한 일치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어찌하였든 이곳의 사원들은 자칫 외설처럼 보일 수 있는 성적인 표현에 대하여 진정한 예술작품으로서 승화시킨 세계 유일의 애로티시즘 유산이라고...


# 25 서부사원군(칸다라야 마하데브 사원 )은 확실히 가장 크고 카주라호 사원의 특징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


# 26 85개의 사원중 14세기 이슬람교도에 의해 파괴되어 현재 22개만 남아있으며, 남아있는 22개의 사원 중에서 14개가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 27 ( 천정 ) 이곳의 힌두교 사원들 중 특히 락슈마나사원과 칸다리야 마하데브 사원은
남녀의 성행위를 표현한 미투나(Mithuna·남녀교합상) 조각들로 뒤덮여 있다.


# 28 카주라호에 새겨진 수많은 미투나는 탄트리즘 중에서 둘째에 해당하는 수행방법이다.
샤크티, 즉 성적인 에너지를 이용하여 남녀가 결합하고 시간과 공간이 사라진 그 절정의 상태에서
자아의식과 우주의식이 하나되고, 절대와 상대가 하나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행위를 표현한다.


# 29 꽃을 넣어서 역광으로 찍어봤더니 나름멋지다


#30 반대편에서 꽃을 넣어 찍었다..사진 작가님을 졸졸 따라 다니며 어깨너머로 실습...


# 31 미투나상을 만든 또 다른 이유로는 인구를 늘리기 위해 백성들에게 성행위를 장려하느라 그랬다는 얘기도 있고,
성교육을 위해서였다는 얘기도 있는데, 분명한 것은 탄트리즘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 32 이곳의 사원들은 대부분 황갈색이나 분홍빛을 띤 사암으로 지어져 있다.
사암은 카주라호에서 20여 km 떨어진 켄강 부근에서 캐 온 것이라고 한다.


# 33 카주라호 사원은 1986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 34 사원의 외벽은 하나같이 시바와 비슈누신, 요정들과 아름다운 여인들 그리고 동물들의 모습이 섬세하게 조각되어있어
사원이라기 보다 하나의 거대한 조각작품을 연상시켰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보는 듯 했지만 좀 더 세련되고 섬세한 느낌


# 35 12개의 사원 중 특히 시선을 끄는 곳은 락슈마나 사원과 칸다리야 마야데브 사원으로서, 외벽에는 900여개가 넘는 조각이 있다고 하는데


# 36 그중 압권은 미투나상으로서, 여인들의 풍만한 곡선미는 물론 남녀의 곡예사와 같은 성행위 모습이 너무나도 자세하고 적나라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어 처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충격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 37 풍만하고 둥근 가슴은 마치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만 같은 토마토를 연상케 한다


# 38 낭창낭창한 허리, 그리고 다리의 유연하면서도 매끈한 곡선미,


# 39 그리고 용수철처럼 탄력감이 넘치는 엉덩이부분은 농염하다 못해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 40 마치 르네상스 시대 이태리의 조각가 도나텔로의 조각을 연상케 한다.


# 41 아래부터 19세 이하 불가


# 42 락슈마나 사원의 에로틱한 조각들 중 여인들의 모습은 매우 과장되고 풍만하게 조각되어 있는데


# 43 마하데브 사원의 조각들은 매우 날씬하고 보다 세련된 모습과 자세를 묘사하고 있었다.


# 44 마하트마 간디가 ‘다 때려부수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정통 힌두교도들은 이를 싫어한단다.


# 45 그러나 카주라호의 미투나상은 독특한 인도문화의 하나로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잡아끌고 있다.


# 46 카주라호의 사원에는 모두 80여가지의 남녀교합상이 조각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4세기 경 밧샤야에 의해 쓰여진,
인도의 성교지침서인 '카마수트라'에 묘사된 성행위의 자세를 조각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으나


# 47 실은 보다 심오한 힌두이즘의 종교적 철학에 기인한다는 점과, 당시 북인도에서 강하게 영향력을 지니고 있던
불교에 대항하여 힌두교도들을 사원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사원에 감각적인 조각들을 해 놓았다는 나이든 이곳 주민들이 이야기.


# 48 사암의 또 다른 특징은 물기를 쉽게 흡수한다는 점인데,
다시 말하면 비가 억수처럼 내려도 부딪히는 대신 물기를 흡수함으로서 마찰을 피하게 되는 것이다.


# 49 천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비바람에 시달려 왔는데도 원래의 모습이 비교적 원형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은 사암의 커다란 장점


# 50 유연하고 풍만한 젊은 육체를 매끈하고 부드러운 사암과 대리석에 정확히 재현해놓은 것은
전형적인 인도의 조형예술이 지니고 있는 가장 중요한 장점이란다


# 51 동적이면서 영감이 넘치는 인도의 조형예술에는 또한 아름다운 육체의 재현이라는 힌두교 신앙이 반영되어 있다.
성행위의 묘사는 ‘둘이 곧 하나’인 감각적인 행복과 함께 정신적인 행복의 최고형태를 상징하고 있다.


# 52 진정한 힌두교도 들에게 있어 세속(世俗)은 신성한 것이며, 소멸(消滅)역시 불멸의 구원에 이르는 열쇠가 된다.


# 53 요컨대 ‘사랑이 곧 신’이다. 그리고 항상 추구하기는 하지만, 상상이 불가능한 신과 인간의 결합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 54 오직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수면’이나, 성교를 나누며 서로 절정에 도달했을 때의 모든 ‘소멸’의 순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 55 (전쟁 중의 동성애) 84 체위가 있다는데 과연 사람들은 몇가지나 알고 있는지.ㅋㅋㅋ...어떻게 저런 자세들이 나오는지 그래서 요가를 배워야하는지...


# 56 그것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만족스러우며, 가장 완벽하고, 가장 해탈에 가까운 것이다.
이와같이 힌두교에서 세속적인 인간의 쾌락을 묘사한 예술은 힌두교 사원의 정신성을 능가한다.


# 57 브라만들에게는 하나의 정신적 시험무대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조각상을 보고
흥분하거나 주의가 산만해지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는 진실로 헌신적인 힌두 교도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58 카르마 요가란 이러한 자극적인 장면 앞에서 침착을 유지하는 방법을 수행자들에게 가르쳐주는 요가이다.
마하트마 간디도 만년의 나이에 카르마 요가를 행한 적이 있다. 이처럼 힌두교는 모든 극단을 포용하고 있다.


# 59 카주라호 사원의 에로틱하고 관능적이며, 성적인 호소력이 짙게 배인 젊은 남녀들이 현실감 넘치게 묘사되어있는 조각들이
유치한 포르노그라피가 아닌 순수예술로 느껴지는 것은 인도 예술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신성함에 있는 것이 아닐까?


# 60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카주라호의 에로틱한 조각들이 집중적으로 조성된 시기를 미적 타락과 감각에 호소하는 매춘적 요소를 도덕적 타락으로 물들게 했던 시기라고 하지만 이곳의 조각들은 바로 그 에로틱한 주제를 예술로 승화시킨 뛰어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 61 지금은 비록 22개밖에 남지 않았지만 무엇 때문에 그들이 이처럼 동떨어진 위치의 장소를 수도로 삼아 황금시절의 장소라는 뜻의
카쥬르바히카 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 많은 사원을 짓게 했는지는 아직까지 시원하게 밝혀진 바 없다.


# 62 뿐만 아니라 20KM가량 떨어진 켄 강에서 캐낸 사암들을 운반하고 깎고 세우고 조각하는
그 엄청난 작업에 소요되는 사람들을 어떻게 조달하고 또 관리했는지도 아직 밝혀내지 못하였다.


# 63 그러나, 카쥬라호가 이처럼 외진 위치에 자리잡음으로서 이곳의 사원들은 11세기부터 인도의 중부와 북부를 휩쓸며
우상파괴의 명분 하에 아름다운 사원들을 사정 없이 파괴해 버렸던 회교도들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 64 이 사진 찍기가 얼마나 힘들던지...주로 높은 곳에 있어 카메라 촛점 맞추기도 힘들었고 수만가지 미투나 상에서
애로틱한 이 장면 찾기도 힘들었다..가이드가 거울을 비춰 찾아주어서 그나마 찍을 수 있었다


# 65 마지막 컷! 가이드가 ' 이젠 자러갑시다' 또 누군가는 실습하러 가자한다.


# 66 하지만 아직도 훤~~하다.. 한 시간 동안 카쥬라호 마을 구경


# 67 카주라호는 인구 5000여 명밖에 안 되는 작은 촌락으로 전락했지만


# 68 과거 10세기께만 해도 찬델라 왕조는 인도에서 세력이 강대하고 경제적으로도 아주 부유한 왕조 가운데 하나였으며,


# 69 이들의 세력은 북인도 대부분의 지역을 지배하였다. 찬델라 왕조의 수도였던 카쥬라호...


# 70 무슬림의 침략으로 몰랐한 찬델라 왕조.. 그 찬란한 역사를 가진 카쥬라호


#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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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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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사탕수수...한입 얻어먹었는데 단물이 입안에 가득...유난히 달고 맛있다


# 76 한껏 멋지게 치장한 오토릭샤...버스도 트럭고 한결같이 울긋불긋 꾸미기를 좋아한다


# 77


# 78 인도의 소들은 주인이 없다..쓰레기통을 뒤져 먹이를 먹기도 하고...그냥 구걸하여 먹기도 하고..


# 79


# 80 민수네 가게로 오란다...예쁜 목걸이도있고 옷도 있다고...말끔하니 잘 생긴 소년


#81


# 82 자이뿌르에서 영화보고 오다가 한때의 무리를 지은 소들이 나를 향해 질주해 와서 소리 지르며 피한적이 있다..알고보니 개한테 쫓기고 있었다


# 83 나를 위해 변비약 사주는 가이드...다른 가게들처럼 조그마한 약국


# 84 참 여유롭게 시장 돌아다니며 길거리 음식도 먹고 있는 사이 가이드와 나만 남겨두고 같이 다니던 일행이 보이지 않기에 찾았더니
민수네 가게에 있는 인터넷을 하고 계셨다..한글판 다음 홈피를 보니 갑자기 눈물이 나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 85 공동수도..아이가 엄마를 도와주고 있다


# 86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호텔로 왔다.우리 가이드와 또 다른 한국팀 가이드..타이거 우즈 닮았으면서 한국말도 아주 부드럽게 했다


# 87 가이드와 함께


# 88 옵션으로 카쥬라호 민속 공연을 보러 가려고 다시 나왔다..공연장 앞


# 89 공연장 입구


#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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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 음악을 틀어놓고 하는게 아니라 옆에서 생음악으로...불어학 교수님이 청아한 목소리에 홀딱 반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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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저녁은 한국 쌀밥에 된장국을 먹었다...광주서 온 부부팀 18명이 우리 숙소에 묵었는데 그들이 공수해온 온것이라 한다...
다행히 바라나시에서 그들을 만나서 고맙단 인사를 하게 되었다.알고 보니 광주교대 대선배님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