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난 인도여행

아,아! 죽음을 부드럽게 덮어 주는 타지마할이여!

올레리나J 2009. 11. 4. 19:56

#1 1월 13일 일요일...새벽 4시 모닝콜에 4시 45분 호텔을 나섰는데 난방이 있을리 없는 버스가 추워서 다들 웅크렸다.


#2 8시 무렵 날이 밝아오자 호텔에서 싸 준 도시락을 꽃이 예쁜 이 집에서 먹었는데 난 감자 두개만 먹었다


#3 오늘은 버스로 5시간가량 달려서 중간에 시크리 성을 보고 그리고 그리던 타지마할을 보러 간다


#4 오늘은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난 인도에 와서 인도 사람들이 유적지 보다 더 좋았다.


#5 인적이 드문 고속도로에 버스가 시동을 멈추고 선다..앞에서 사고가 났는지 우리 차선만 막혀있다


#6 앞에 있는 하얀 차가 우리 투어 버스인데 뒤로도 벌써 많은 차들이 줄을 선다


#7 아침은 먹었겠다 추워서 웅크렸겠다..참을 수 없는 배설의 고통 앞에 체면이고 뭐고..
맨왼쪽 흰옷 차림이 여주대학 도자디자인과 학과장이고 이번에 솔로로 여행왔고
키작은 분이 공무원으로 은퇴후 해운대에서 부동산을 하며 홈스테이를 하는 부부팀이고
세번째 분은 모든 종교를 통달한 명상가이고 역시 솔로
네번째 분은 일반회사 은퇴한 백발이 성성하여 아주 멋진 자애로운 부부팀
5번째는 전문사진작가(윈도엑스피 메인 화면 찍으신분)로 세계여행 1인자로 역시 솔로,
맨앞 옆으로 보이는 군산상고 수학 교사로 솔로


#8 마땅한 장소를 물색중인 덕성여대 교수님..역시 솔로이고 나처럼 싱글룸 사용


#9 도저히 가릴곳 없는 허허벌판이어서 안절부절하는 여자들.....
"제가 해결해 드릴게요. 저 따라 오세요" 내가 덮고 있는 담요를 가져가서 이런 방법으로 하도록 하고 나는 얼른 차로 와서 카메라로 잡았다...
나의 직업정신?


#10 우리 버스....교장으로 은퇴하신 부부교사팀,그리고 가장 젊은 중학교 부부교사팀..
그리고 친구사이인 나이 지긋한 여교사 두분..남자 9에 여자 7이 우리 일행이다.


#11 먼 동네에서 구경 나온 아이들


#12 앞빨간 모자는 우리 버스 운전사 조수이고 나머지 두 명은 트럭에서 내렸다...잠시 후에 내가 사진 찍으니까 멀리서 까지 몰려와 나를 에워싼다


#13 짧은 영어로 이들과 친구가 되려고 먼저 말붙이고 먼저 활짝 웃어준다..


#14 동정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이고 내가 맘을 열면 상대방도 맘을 열게 되어 있으므로 ...


#15 인명 사고로 경찰차가 오고 2시간 여의 지체.....
일행에게는 지겨웠겠지만 난 또 다른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행복했다.


# 16 이렇게 몰려온다


#17 그 복잡한 도시에서는 사고가 나지 않는데 한적한 시골에선 음주운전자가 있어서 사고가 자주 난다고...


#18


#19 이렇게 많이 모였다...어딜가든지 나에게 몰려드는 인도인들을 보고
교수님이 나를 비공식 대한민국 홍보대사로 임명해주었다


#20 여행내내 화장실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21 그래도 남자들은 간편해서 자연방뇨를 쉽게 할 수 있지만 여자들은 칸막이 있는 냄새 심한 재래식 화장실 찾기도 힘들었다


#22 차를 타고 오면서 인도 사람들이 들녘에 앉아 자연 방뇨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참 평화로워 보였다.
배설의 기쁨을 만끽히는 그들..난 현대인의 스트레스로 인한 변비로 고생하는데..
거기에 철학이 있다고 명상가 분은 나중에 시를 읊어주었다


#23 만원 버스...하나같이 전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버스는 태우고 다녔다


#24 10시 30분경 시크리성에 도착했다


#25 붉은 사암을 목재처럼 다룬 장인의 솜씨에 감탄한다


#26 영적인 세계가 일반 사람을 초월한 명상가..영어교사하시다가, 영어학원 운영하시다가 지금은 양평에 선방을 짓고 생활하시는데
목소리 낭낭하고 얼굴은 윤이 났고 해박한 지식에 존경심이 우러났다..명상시인 류시화와 동창이라고


#27 무굴제국의 황제 악바르 대제가 지은 유네스코 문화재인 시크리성......
첫번째 부인은 힌두교, 둘째부인은 기독교, 3째부인은 이슬람교 신자였다고 하니 그는 혼인뿐만 아니라
부인들 까지도 이용하여 종교의 융화를 꿰했는지 모른다. 그 증거로 그는 3명의 부인에게 종교의 선택을 강제하지 않았단다.
왕의 침실, 궁녀들의 수영장, 궁녀들이 모여 화장을 했다는 방과 화장 후 왕의 부름에 따라 왕의 침실로 가는 비밀통로 등 모두 대단한 건축물이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면 3명의 왕비가 거처했다는 궁궐이 나오는데 아들을 낳은 첫째 왕비 조다바이의 궁전은 넓고 화려하였다.
고기를 먹지 않은 힌두교인이었던 그녀를 위한 전용 요리실까지 갖춘 대단한 궁전이었지만 상대적으로 아들을 생산하지 못한
둘째와 셋째부인의 궁전은 초라했다. 비밀통로까지 두고 수많은 궁녀들을 상대했던 황제...
그 틈바구니에서 둘째와 셋째는 별을 딸 수 있는 하늘이나 볼 수 있었을까?


#28 델리와 아그라 그 유명한 인도북부여행의 트라이앵글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수없이 듣는 무굴제국..그 왕들의 계보를 알지않고는 많은 건축물들이 그게 그거고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다.
#29 아는 것 만큼 보이고 본 만 큼 느끼고 느낀 만큼 사랑한다고 하지 않던가?
대충 훑어보면 아무런 감동도 없다


#30 인도북부를 1500년대 정복해 세운 무굴제국이 인도힌두본건왕조를 무너뜨리고 들어온 이슬람 침략왕조였으나


#31 이 침략왕족이 힌두인들의 피와 땀으로 세운 아름다운 건축물들 (ex,타지마할)이 20 세기 빈곤의 땅 인도를 먹여 살리는 관광자원이 될 줄 그 누가 알았으리오?


#32 역사의 아이러니라니....


#33 아랍에미레이트에서 왔다는 가족과 함께


#34 무굴제국 1대왕 바부르...징기스칸의 후예로 중앙아시아를 전전하다 인도를 침략해 1504년 무굴제국 세움.(수도 델리)


#35 2대왕 후마윤...약간 맹하고 순한왕으로 어처구니없게스리 넘어져 죽었다고 ..
델리에 그의 아내가 그를 위해 지었다는 아름다운 후마윤묘가 있는데 세계문화유산...


#36 3대 악바르.. 수도를 델리에서 아그라로 옮겨 많은 문화유적을 남겼는데 아그라성,시크리성을 지음. 고려태조 왕건이 썼던 비스무리한 혼인정책으로 힌두,기독 ,무슬림의 3명의 아내를 둠


#37 4대 제항기르...오르차에 제항기르마할이 있는데 우리 일정에는 없지만 아름답기가 이를데 없단다...형제들과 싸우고 아버지 악바르에게도 도전하여 도망치다 우여곡절 끝에 왕이 된 사나이...


# 38 5대 샤자한..건축광이었다는 그.가히 광기에 가까운 열정으로 타지마할을 건축했다. 가는 곳마다 그의 이믈이.....
6대 아우랑제브..아버지 샤자한을 아그라성에 가두고 샤자한이 탕진한 국고를 회복하려고 조용히 처세에 힘을 기울였으나 서서히 기울다 대영제국의 힘 앞에 왕조마저 사라졌다..
장자 계승의 원칙이 없어서 자식들간,부자지간에 권력다툼이 끊이지 않았겠지...


#39 타지마할 가는 길에 보이는 작은 극장...인도 처녀총각은 어디서 데이트하냐고 물었더니 이런 성이나 극장이나 음식점이라 했다
연애결혼은 거의 없고 중매로 결혼한다고


#40 현대 산토스


#41 오늘 1박할 아그라의 YAMUNA VIEW 호텔 체크인하고


#42 인도인을 닮은 소박한 나의 점심


#43 매표소가 있는 타지마할 정문....타지마할이 공해로 손상을 입는다하여 근처에서 내려 다시 전기릭샤로 갈아탔다.


#44


#45 또 문... 어딜가나 한국 사람 천지이다.


#46 행여라도 있을 훼손에 대비해 몸 수색을 철저히 한다..신발도 벗어야하나 덧신으로 감싼다.
단체로 소풍나왔는지 학생들의 행렬이 많았다


#47 문 앞에 서서히 나타나는 운명의 타지마할...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듯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 48 가까이 가면 점점 더 멀어지고 내가 뒤로 물러서면 점점 가까워오고..


#49 타즈마할은 샤 자한(Shah Jahan)이 17년의 결혼기간 동안 14명의 아이를 낳고 15번째의 아이를 나으려다
1629년에 세상을 떠난 부인 뭄타즈 마할을 추모하며 만든 무덤이다.
1631년에 짓기 시작하여 22년만인 1653년에야 완공된 이 건물의 정면 마당에는 수로(水路)를 둔 전형적인 무굴(Moghul)양식의 정원을 두고
좌우로는 회교사원과 회당(會堂)을 둔 구조로 되어있다


#50 샤 자한은 부인을 기념하여 타지 마할과 같은 호화 분묘를 조성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수도를 델리로 옮기기로 계획하고
레드 포트(Red fort) 등과 같은 엄청난 공사들을 계속적으로 진행하여 국가가 흔들릴 정도로 제정을 휘청거리게 만든다.
이러한 실정을 구실삼아 막내아들 아우랑제브는 반란을 일으킨다


#51 아우랑제브는 샤 자한의 총애를 받고 왕위를 이를 아들 다라 시코를 포함한 모든 왕자들을 죽이고 1658년 아버지인 샤 자한에게서 왕위를 박탈한다.


#52 아우랑제브는 샤 자한을 타지 마할이 마주 보이는 아그라 포트의 8각형 탑과 같은 형식의 구조물인 무삼만 버즈에 가두게 되는데,
감금된 후 그 곳에서 타지 마할을 바라보며 죽을 때까지 지내야 했던 샤 자한은 1666년 죽어서야 부인 곁에 나란히 묻히게 되었다.


#53 샤 자한은 부인 뭄타즈 마할을 위해 만든 무덤, 타지 마할과 비슷한 크기로 자신의 무덤을 타지 마할과 반대가 되는
검은 대리석만으로 야무나 강에 건너편에 짓고, 구름다리를 만들어 이 두 무덤을 연결하려는 계획이 었었다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지만 증명된 이야기는 아니다.


#54 무덤 입구...샤 자한과 움타즈 마할의 진짜 묘는 지하에 있으며 관광객들이 보는 본당 내부의 묘는 가묘(假墓)라고 한다..
진짜 묘는 본당 지하에 모셔져 있다.


#55 타지마할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있겠는가? 세계7대 불가사의이며 세계20대 야경(석양달빛)에 속하며 유네스코에 등록된...명성 그대로 감동이었다


#56 사진으로만 봤던 그런 느낌 아니다...거대하고, 웅대하고, 섬세하고, 아름답고... 너무 눈부셔 눈을 감는다


#57 말년의 샤자한의 기분은 어땠을까? 아그라성에 갇혀 멀리 봐라만 봐야했던 산 자의 고통....잔인한 징벌이다


#58 사랑의 힘이 아니면 이런 조각이 어떻게 나올것인가? 위대한 사랑의 승리이다.


#59 어느 날 흘러내린 눈물은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맑고
투명하게 빛나리라
그것이 타지마할이라네.

오 황제여,
그대는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으로
시간에 마술을 걸려 했다네.
그대는 경이로운 화환을 짜서
우아하지 않는 주검을
사망을 전혀 모르는 우아함으로
덮어 버렸네

무덤은 자기 속으로
파묻고 뿌리를 내리며
먼지로부터 일어나 기억의 외투로
죽음을 부드럽게 덮어 주려 한다네...

타고르의 타지마할 예찬 시


# 60 최고의 대리석에 온갖 보석으로 치장


#61 진주 수정 에머랄드 루비 사파이어를 줄줄이 박혀 있고 금,은을 쇠붙이 처럼 썼으니 침략자 영국군이 가만 놔뒀겠는가? 곧곧에 약탈의 흔적이...


#62 타지마할 안쪽은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다


#63 구도와 성자의 나라 인도, 사랑의 도시 아그라에는 인도의 위대한 유산들이 자리하고 있다.


#64 고행과 요가를 제외하고 사람들의 인도에 대한 기억 중 으뜸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타지마할!


#65 순백색 대리석에 각종 문양을 파낸 뒤에 그 자리에 다른 색의 돌이나 준보석을 박아넣는 피에트라 두라(Pietra Dura)기법이 사용되었는데
이란 출신의 설계자의 책임 아래 세계 각국 기술자들이 동원되었다 한다.


#66 징기스칸의 후예가 이룩했다는 무굴제국...... 제국의 왕들은 뛰어난 무인이면서도 예술과 건축을 사랑했었다.


#67


#68 죽은 자는 말이 없듯 오늘도 야무나 강은 말없이 흐른다. 본당 뒷쪽의 야무나 강.....
저 멀리 샤자한이 강금되었던 아그라성이 보인다


#69 타지마할 오른쪽에 있는 힌두사원


#70 타지마할 왼쪽에 있는 힌두사원


#71 1631년부터 22년간 건축하였다는 세계 7대 불가사의중 하나인 타지마할,
#72 앞에 꾸며놓은 긴 푸른 빛 연못에 비친 웅장한 대리석 건물의 그림자


#73 타지마할 옆에 다른 어떤 시설물도 세울 수 없도록 일부러 강가에 세웠으며,기둥이 약간 삐뚤어 진 것 또한 지진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라는데....


#74 타지마할 본당에서 바라본 정문 모습


#75 다산에다, 미모에 지혜를 겸비한 왕비 뭄타지마할은 샤자한 왕의 3번째 부인으로 왕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76 인부 20만명이 동원되고 코키리 1천마리를 이용하여 운반해온 순백의 대리석으로 죽은 왕비를 그리워하며 만들었을 샤자한 왕...


#77 혼자서 사진 찍으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더니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


#78 난 항상 뛰어다녔다..일행을 따라 느릿느릿 걸어다니다가는 놓치는 풍경이 너무 많기에


#79 정문 쪽에 다들 앉아서 쉬고 있었다..마지막으로 한컷


#80 전기릭샤를 타기위해 다시 걸어나오면서 찍은 타지마할 근처 풍경들


#81


#82


#83


#84 타지마할 뒷쪽의 야무나강 모습


#85


#86 타지마할 실루엣


#87 중학교 땐가 고등학교 때인가 기억은 나지않지만 타지마할 사진을 첫 대면하고 나서 언젠가 저길 꼭 가봐야지 했었는데 타지마할이 멀어져가는구나


#88 또 특산물 가게에 들렀다...타지마할을 봤는데 이런 하찮은 물건이 눈에 들어오겠는가?


#89 아니다..하찮은 물건이아니라 인도인의 숨결이 들어있는 물건들이다


#90 대 저택에 어울린만한 커다란 식탁에서부터 작은 컵받침까지 대리석으로 만든 물건들의 총집합...


#91 불이 켜지는 작은 타지마할모형이 3만원 정도였지만 들었다놨다 하다가 그냥 나왔다


#92 타지마할만 가슴에 품고 가자


#93 오늘까지 같이한 버스 기사 아저씨가 내일부터 바뀐다하여 사진을 찍었다


#94 시크교도인지 머리에 항상 터번을 썼고 터번도 매일 멋지게 패션이 바뀌었다


#95


#96 웃을 듯 말듯한 이 아저씨의 표정 넘 매력적이다


#97 일행들은 열심히 물건 고를 때 난 밖으로 나와 정원에 세워둔 조형물을 감상


#98 나중에 가이드에게 많이 못 사줘서 미안하다고 말했더니 " 다른 분이 사셨는데요.뭐.괜찮아요."


#99 마지막으로 이슬람 건축물인 타지마할에 견주어 힌두교에서도 뛰어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100년전부터 짓고 있고 앞으로70년은 더 지어야한다는 미완성인 더알박 사원을 보았다.
사진촬영 절대금지이고 몸수색도 철저히 했다..외부는 타지마할 보다 미관상 떨어지는것 같고
내부는 정교하고 섬세하게 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나 사후에 완성된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100 달걀탕 비슷한 것에 일행이 준 햅반을 말아먹었다


#101 밥을 먹고 나오는데 건사한 한국남자들이 로비에 쭉 앉아있었다..알고 보니 제주도 사람들이다.
마침 여행 하루 전부터 지금까지 변비 땜에 머리가 아파 이리저리 변비약 구하던 차에 광고를 했더니 이분이 주셨다..
하도 고마워서 사진 찍자하고 명함까지 받았는데(사진 보내주기로...) 무슨 공학박사에 제주도 과학연구원인가 그랬다.
옆에서 서로들 김교장 박교장 하는걸 보니 동업자였군...문제는 방에 와서 약을 먹으려고 설명서를 읽어보니
꺄~~악 변비약의 반대 지사제였던거였다...지사제는 울 일행도 많이 챙겨왔는데...사진을 보내 말어?


#102 잠이 오지 않았다...샤자한의 사랑 얘기에 왜 가슴이 콱 막혀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