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장식머리에 커다란 눈을 지닌 주인공들
끝내 고난을 이겨내고 행복을 찾는 해피엔딩!
엄희자.민애니 등의 작가들이 그려내는
순정만화 속에 푹 빠져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멋진 백마탄 왕자님이 나타나
이 보잘것 없는 현실에서 날 구해줄 거라고 믿었다.
그 믿음이 있었기에
고단한 현실을 참아냈는지도 모른다.
조금리에서 자취하던 고1때
벽파 황영숙과 잠시 같이 산 적이 있었다.
곱슬머리에 선이 굵고 이쁜 외모에
공부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친구였는데
만화 보는 건 좋아했다.
그 친구덕에 꽤 많은 만화를 보다가
학교 도서관에서
외국의 명작소설 등에 마음을 빼앗기고 나선
자연스레 만화를 끊었다.
(같이 밤을 새우며 만화를 보던
황영숙은 이룰수 없는 사랑으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내가 직장생활하면서 들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교과서 안에 만화책을 끼워놓고 열중하다가
나도 몰래 폭소를 터뜨려
(아주 웃긴 장면이었을거다.)
선생님께 들켜 혼나는 등
난 만화광이었다.
그 뒤로 틈틈이 무협지 등의 만화에 빠지다가
만화를 경시하고 천대하는 시대를 거쳐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작년에 어느 티비 프로그램에서
박원순 서울 시장님이
'미생'을 추천하는 걸 들었고
아들에게 이야기했더니 대학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감동적인거라......
내용은 전쟁터같은 직장 생활을 모티브로
삶의 축소판이라는 바둑과 접목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만화 주인공들과 케미스트리가 깊어졌다.
바둑을 알면 더 공감할텐데.....
많이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감동이 덜 한 건 아니다.
두 아들까지 모두 열중해서 보니까
남편도 궁금했는지 몇 페이지 넘기더니 그것으로 끝~~
맞벌이, 계약직, 성깔있는 상사,
각각의 가정사까지
그들의 애환이 남의 일같지 않았다.
작가 윤태호는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았다는데
얼마나 철저한 자료조사를 했는지
직장생활에 도통한 듯 그려내고 있다.
소름 돋던 영화 '이끼'의 원작자이기도 했다.
미생으로 만화를 다시 보게 되었으니
'식객'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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