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명사산 황금모래가 운다.
고구려 후예 고선지 장군의 호령소리가
병사들 함성소리, 말발굽소리가
현장스님의 독경소리가
혜초스님의 시 읊는 소리가
장건의 고단한 한숨소리가
누란 왕비 비단 치마 끌리는 소리가
도마뱀 기어가는 소리가
낙타 발 터벅터벅
월아천 작은 물고기 헤엄치는 소리가
밤마다 부대끼며 울었다.
전라의 태양 앞에서
해를 따라온 구름 뒤에서
노을도 쉬어가는 저녁 무렵에
바람도 달도 별도 잠든 밤에도
목놓아 슬피 울고 울었다.
혜초 스님 발 자국 뒤에
내 발자국 살포시 얹는다.
사막을 애무하는 모래알들의 속삭임
그 위에 말간 웃음 소리 한 조각
띄워 놓는다.
이젠 그만, 웃으라고...
나도 / 시인처럼...
# 2
돈황의 명사산 가는 길
# 3
# 4
# 5
새벽 5시가 되면 여명이,
6시면 붉은 해가 떠오르고
저녁 8시면 석양이,
저녁 9시면 늑대와 개의 시간
10시가 되어야 곤륜산맥의 긴 그림자가
돈황을 잠재운다.
지금은 한낮의 해가
정수리에 내려앉은 오후 3시
그는 '이글이글 이글거린다'
# 6
# 7
# 8
# 9
밤마다 우는 모래가
날마다 우는 모래가
바람 불 때 우는 모래가
신발 속에
바지가랑이에
발톱 속에 박혀
내 심장에 박혀
나를 따라다니며
내가 움직일 때마다
울음을 토해 낼 지 몰라.
내가 울거든 그대여,
내가 우는 것이 아니라
명사산 모래가 울고 있음을
낙타의 눈물이려니.......
누란 왕비의 눈물이려니...
바람의 눈물이려니......
도마뱀의 땀이려니....
위로가 필요할 그 때....
부적처럼...
주황색 발토시는 내 눈물을 닦아줄 터...
나도 / 시인처럼...
# 10
# 11
# 12
# 13
# 14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 15
낙타 주차장에 천마리의 낙타가
손님을 기다린다.
너를 기다린다.
비를 기다린다.
초록을 기다린다.
한 방울의 물을......
쌍봉 낙타여!
지금은 눈을 감을 때...
# 16
541번!
나의 낙타여!
너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또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너의 조상 중에 누군가
혜초 스님을 태우고
모래바람 부는 이 길을 갔으리라.
신기루를 만나서 기뻤고
신기루 때문에 슬펐고
또 신기루 때문에 걸었고
신기루 때문에 죽었고
바람이 불면 낙타뼈도 운다.
나도 운다.
나도 / 시인처럼...
# 17
너도 무릎을 꿇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이 되었느냐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데에
평생이 걸렸느냐
차디찬 바닥에
스스로 무릎 꿇었을 때가 일어설 때이다
낙타도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먼저 무릎을 꿇고 사막을 바라본다
낙타도 사막의 길을 가다가
밤이 깊으면 먼저 무릎을 꿇고
찬란한 별을 바라본다.
정호승 / 무릎
# 18
낙타 타는 나만의 순서
1.낙타가 무릎을 꿇는다.
2. 낙타를 탄다.
3. 낙타몰이꾼이 휘파람을 분다.
4. 낙타 뒷발이 선다.
5. 몸이 앞으로 쏠린다,
6. 두 손 움켜잡는다.
7. 낙타 앞발이 따라 선다.
8. 뒤로 휘청
9. 두 손 움켜잡는다.
10. 멀미가 난다.
11. 낙타에게 미안해 온 몸에 힘이 들어간다.
12. 조금이라도 가볍게 가볍게....
# 19
# 20
명사산은 맑게 개인 날에 모래소리가
관현악기의 소리같이 들리거나
수만의 병마가 두들겨 치는
북과 징소리 같이 들린다하여
鳴(소리낼 명), 沙(모래 사) 를 따서
명사산이라는 예쁜 이름이 붙었다.
명사산은 동서쪽으로 40여km,
남북쪽으로 20여km까지 펼쳐져 있는데,
가장 높은 봉우리의 높이는
해발 1715m의 높으로 아주 높다.
세계적으로도 명사산처럼 바람이 불어도
그 모양이 바뀌지 않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사막산은
극히 드물다고 한다.
# 21
# 22
# 23
고비에서는 고비를 넘어야 한다
뼈를 넘고 돌을 넘고 모래를 넘고
고개 드는 두려움을 넘어야 한다
고비에서는 고요를 넘어야 한다
땅의 고요 하늘의 고요 지평선의 고요를 넘고
텅 빈 말대가리가 내뿜는 고요를 넘어야 한다
고비에는 해골이 많다
그것은 방황하던 업덩어리들의 잔해
고비에서는 없는 길을 넘어야 하고
있는 길을 의심해야 한다
사막에서 펼치는 지도란
때로 모래가 흐르는 텅 빈 종이에 불과하다
길을 잃었다는 것
그것은 지금 고비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최승호/ 고비의 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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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들 뒤끝 작렬!
사막 더위에 낙타들을 좀 거칠게 다루거나
심한 채찍질을 한 다음날,
낙타몰이꾼들이 숨진 채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낙타몰이꾼이 잠든 사이,
낮에 학대를 당했던 낙타가
긴 다리를 굽혀 무릎으로
잠든 주인의 목을 지긋이 눌러
숨통을 끊어 버린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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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의 눈 만큼 서러운 낙타가시풀
# 38
사막에 길게 드리워진 내 그림자
등에 난 혹을 보고 나서야
내가 낙타라는 걸 알았다
눈썹 밑에 서걱이는 모래를 보고서야
사막을 건너고 있음을 알았다
옹이처럼 변한 무릎을 만져 보고서야
무릎 기도 드릴 일 많았음을 알았다
많은 날을 밤에도 눕지 못했음을 알았다
자꾸 넘어지는 다리를 보고서야
세상의 벼랑 중에
마음의 벼랑이 가장 아득하다는 걸 알았다
혹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보고서야
무거운 생을 등에 지고
흔들리며 흔들리며
사막을 건너왔음을 알았다.
류시화의 / '낙타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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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내가 눈을 떴을 때
사방이 텅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놀랐다
어떻게 사방에 아무것도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지평선의 충격은 그렇다
아무것도 없는데 아득한 곳에 선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직선이 아니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그 커다란 선은 둥글었고
그 텅 빈 원 속에
원의 중심에
내가 있었다
지평선/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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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실루엣
모방의 천재들이라는 중국인들도
이런 곡선은 만들어내지 못할 터
이런 규칙...
이런 색...
이런 명암.......
오직 자연만이......
바람만이....
명작을... 걸작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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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즐기는 방법 Chapter 1.
여러 각도로 신체를 다양하게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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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즐기는 방법 Chapter 2.
사방으로 몸을 돌려 점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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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자연의 작품에 나를 살짝 얹어
인간의 작품 완성
작품 명 '인간 날다.' 1024*686
최초 경매가 000000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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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올라가기 전 중간 지점에
타고 왔던 낙타들이 무릎을 꿇고 있다.
이따금 휘이잉~~콧김을 내뿜으며....
# 65
내가 사막에서 해보고 싶었던
맨발로 걸어보기 실행
화상 입을 지도 모른다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맨발로 모래 위에 선다.
한 걸음 내딛고 "아무렇지도 않네. 뭐..."
두 걸음 걷고 나서 "따뜻한데?"
세 걸음 " 이 정도 쯤 참을만 해."
네 걸음째 "앗 뜨거!"
다섯 걸음 " 걸음아 날 살려!"
도전하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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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앉아있는 낙타모양의 벤치가 없었음
난 화상을 입었을테지...
모두들 웃었지만
난 사막의 뜨거운 맛을 보았고
작은 바램을 이루었지..
# 69
명사산 우는 모래를 움켜 쥐어본다,
아무리 움켜쥐어도
명사산 고운 모래는
손가락 사이로 숭숭 빠져나간다.
'누란의 미녀'
내게 왔다 잠시 머물고 나가는 돈처럼....
내게서 멀어지는 사람들처럼......
사랑처럼.....
# 70
뜨근뜨근한 온돌방에 누워보자.
# 71
# 72
이 계단은 티켓을 구입해야 이용할 수 있다.
천당가는 티켓...
모래 위를 걸으면 두 세 배의 힘이 든다
발이 푹푹 빠진다.
그래서 비단이 장수 왕서방은
수월함을 미끼로
오늘도 주판을 두드린다.
# 73
스무 발자국 떼었는데 힘들다.
중력이 자꾸 발을 잡아당긴다.
이럴 땐 중력을 잠시 밧줄로 꽁꽁 메어두었으면....
저 꼭데기에 올라서 모래속에 파묻히게....그리하여
3천년 후 미이라로 박물관에 누웠.....끔찍하다.
푹푹 썩어 한 점 뼛가루도 남기지 않고 산화되리...
# 74
# 75
# 76
# 77
# 78
명사산의 모래에서 다섯가지의 색을 찾았다.
홍류를 닮은 빨강,
하미과를 닮은 노랑,
오아시스 백양나무의 초록,
명사산에 뜨는 별을 닮은 하양,
낙타의 검은 눈망울 검정
내 여행의 포커스 色찾기는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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