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의 일상/포토 다이어리

잘 가라. 임진년 12월

올레리나J 2012. 12. 3. 07:11

 

 

2012.12.1.토.

남편이 11월의 달력을

쫘~악~ 뜯었다.

그 소리가 왜 그리도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지......

달랑 한 장 남았다.

 한.발.한.발.....

탄생의 뒤안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리라.

 

아직도 난 가을을 보내고 싶지 않았고

산엔 가을 끝이 남아 있으리란 기대로

소래산 늠내길을 걸었다.

 하지만 겨울은 환영인사를 하지 않았는대도

바로 옆에 와 있다.

싸락눈이 낙엽 위를 구른다.

 

 

 

 

 

2012.12.2.일.

중학 동창 큰 딸 결혼식..

작년부터 하나둘 청첩장이 날아들더만

1,2월까지 쭈욱 이어진다.

벌써 우리가

장성한 자식들을 독립시키고

노년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친구들 만나면

중학교 때 그 감정 그대로

개구쟁이 친구,수다쟁이 친구

뾰루퉁한 친구,얌전한 친구

소년 소녀들인데......

 

 

 

 

2012.12.3.월.

아침부터 음산하다.

날씨가 삐침이다.

손이 시러워

교실에서도 장갑을 끼고 있다.

올 겨울은 유래없이 추울거라는데

학교에선 에너지절약을 실천해야 한다.

 

 2012.12.4.화.

아침에 걸어오는데 와우!

머리가 시러울 정도로

한기가 뼈속까지 스며든다.

본격적인 겨울추위가 시작되었나 보다.

 

낮엔 햇빛이 따사롭다.

아이들과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퀴즈 문제를 냈다.

난 그 틈에 책 한권을 후딱 읽었다.

제목이 생각이 나지 않는데

명화속의 실제 장소를 찾아

그림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결론은?

'여행가고 싶다.'

 

2012.12.5.수.

2교시 컴퓨터실에서

아이들과 타자연습할 때까지만해도

눈은 오지 않았다.

3교시에 갑자기 벚꽃잎 흩날리듯

함박눈이 탐스럽게 내렸다.

아디릉은 일제히 유리창가에 붙어

함성을 지른다.

점심 시간에 밖에 나가

아이들과 눈싸움 하고 들어왔다.

작게 뭉쳐서 소심하게 던지다가

눈이 많이 쌓이자 크게 뭉쳐

피구하듯 세게 공격한다.

 

길이 얼면 운전이 위험할까봐

차를 가지고 오지 않아

걸어서 퇴근해야하는데

걱정보다는 우선 재밌다.

 

 

 

 

 

2012.12.6.목.

길이 꽁꽁 얼어

남편이랑 같이 걸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한발짝 조심조심 걸었더니

에너지도 많이 소모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얼굴은 시럽지만 등엔 땀이 난다.

 

 

 

 

2012.12.7.금

롯데 씨네마에서

교육복지우선사업 멘토링 활동으로

영화 '가디언즈'를 보다.

아침 출근 저녁 퇴근까지

2시간 정도 찬바람을 뚫고 걸었다.

등에서는 땀이 얼굴은 차디 차다.

 

2012.12.10.월

어젠 삼총사 모임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칼질,

청라국제도시 집들이

일요일 5시간의 머리카락 공사

이름하여 매직 볼륨펌...

 

남편은 헤어스타일 바꿀 때마다

"전에 스타일이 훠~얼 나아.

첫째는 그냥 웃고

둘째의 반응은 "우리 엄마로 돌아오세요."

익숙한 것에 대한 편안함이 좋은 걸꺼야.

 

나도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에

"넌 누구니?"

흠칫 놀라기까지...

 

동료들 반응은 "젊어 보여요."

물론 인사치레임을 안다.

 

 

 

 2012.12.11.화.

우리반에서 가장 예쁘게 생기고

가장 스타일이 멋지고

가장 키가 작고

가장 하얗고

가장 귀여운 제강이가

내가 좋아하는 하늘을 닮은

파랑 티를 입고 왔다.

 

안쪽에 화이트의 얇은 폴라를 덧입어

하얀 피부가 더욱 밝아보이고

짙은 눈썹은 까만 눈동자를

더욱 영롱하게 빛나게 한다.

바로 교탁 앞에 앉아서

이따금 4차원의 발표를 하기도 한다.

 

오늘 동명이가 전학을 왔다.

축구를 하기 위해

축구부가 있는 울 학교로 온 것인데

제강이보다 키가 더 작다.

귀엽다.

안쓰럽다.

저 작은 체구로

축구선수로 살아남을 수는 있을까?

허기사 박지성이나 이천수도

큰 키는 아니더라만...

 

 

2012.12.12.수.

 

 

 

2012.12.13.목.

성적처리로 바쁘다 바뻐!!

 

 2012.12.14.금.

난세엔 간신들이 판친다는데

지금은 난세일까?

 

 

 

2012.12.17.월.

선거에 참여하라는 안내장을 나눠주고 있는데

누군가 큰 소리로 말한다.

'문재인이 대통령되면 나라가 망한대.'

깜짝 놀라 투표에 대해서

최대한 중립을 지키면서 지도했다.

부모들,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말을 함부로 하면 안되는데...

 

누가 되던지

훌륭하게 대통령직을 수행했음 좋겠다.

 

 

 

 

2012.12.18.화

 

 

 

2012.12.20.목.

 

2012.12.21.금.

미술시간에 겨울 그림을 그려

교실 분위기를 바꾸었다.

오늘 동지인데 또 눈이 내린다.

싸.락.싸.락. 쌓인다.

 

2012.12.22.토.

남편 친구 아들 결혼식에 가다.

7년간의 연애,

주례없는 색다르고 재밌는 결혼식,

알고보니 남편 소꿉친구가

남편 사회 친구와 사돈지간이 된 우연

2012.12.24.월.

성탄절을 앞두고

교실이 활기가 넘친다.

장갑을 선물받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2012.12.26.수.

어젠 성탄절

하루종일 집안에서

영화 한 편 책 2권과 함께 보냈다.

오늘은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

 

2012.12.27.목.

어제 퇴근 후

2009년에 동학년이었던 샘들과 만났다.

두 달에 한번씩 모이는 것이었는데

다들 일에 허덕이다

여름방학 전에 만나고 참으로 오랜만에

 자리를 같이 했다.

 

그때만 해도 같이 앉아서 차도 마시고

소소한 일상에 양념으로 농담도 하면서

꽤 여유로웠었는데

최근 몇년 사이에 

교육계에 불어온 이른바 '디지털화' 때문에

(꼭 그것만은 아닐 것이지만)

 옆 교실의 동료가 출근을 했는지

얼굴 마주보며 찬 한잔 마실 여유가 없어지고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끼며

일을 해도 끝이 없고

아이들은 나날이 욕설과 폭력과

개인주의로 교실이 무너져 내렸음을 통탄하면서

암울한 학교현실에 모두 우울해하며 헤어졌다.

아이들은 천진함과 순수함을 잃은 지 오래다.

학부모는 교사들을 존중하지 않는다.

과학기술부, 교육청은 탁상공론으로

학습권을 침해한다.

나날이 아이들에 치이고,

 학부모 눈치보고

 관리자에 들볶인다.

 

교육계의 3D 업무와

6학년 생활지도의 어려움으로 인해

나이든 선배들과 동료하기를 꺼려하는 현실에

당장 내년에 학교를 옮겨야하는 나로선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아직도 나름 젊다고 생각하는 나이에

명퇴 시기를 저울질하며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동료들......

 

교직은 더 이상

신이 내린 직업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