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안녕, 하노이

올레리나J 2012. 2. 22. 21:34






대우호텔에서 이틀째 밤을 보냈다.
고단하여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었지만
여행의 설레임은 침대에서 나를 벌떡 일으킨다.
뷔페에서 구수한 베트남 쌀국수를 주메뉴로
과일 몇개를 얹어 전날의 피곤함을 달래었지.
난 그걸로 충분했다.
오늘은 하노이 씨티투어 후
캄보디아로 넘어가는 일정이다.









"사진은 이렇게 찍는거야"
무턱대고 셔터를 누르는 나의 폼생폼사형 사진찍기를
질책과 칭찬으로 훈련시키려는 남편
머리쓰고, 신경쓰고 싶지 않은 난
도대체 기술이 늘지를 않는다.




호텔 앞에서














대우호텔 전경




하노이 문묘
하노이 공자묘라고도 부른다.
1070년 리탄통(Ly Thanh Tong) 황제가
공자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원이며,
베트남 최초의 대학으로도 알려져 있다.
리(Ly) 왕조의 통치기간에
국교를 불교에서 유교로 전환하면서
정신적인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독일 여행객이 배경




수학여행을 왔는지
한무리의 이팔 청춘들이 깔깔거린다.
우리 나라의 청춘들을 볼 때는
입시에, 구직에 찌들어
결코 다시 되돌아가고 싶지 않는데
이 사진을 보니
나도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잠시 들었다.
재미있는 책들이 도서관에 가득 꽂혀
마음까지 풍요롭게 만들었던 그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구르는 낙엽을 보고도 깔깔거렸던 그 시절
그 시절의 나도
이 청춘들의 얼굴 만큼 빛나고 해맑았을 것이다.









리 왕조가 세워지기 전 베트남은
1,000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아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 대표적인 곳이 문묘이다




규문각에 들어서면 중앙에 큰 연못이 있고
양쪽으로는 과거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의 이름과
과거시험과정을 적은 비석을
거북의 등에 세워놓은 진사제명비가 있다 .




진사제명비 중 어떤 비석은 이름이나 내용이 지워진 것이 있는데
이것은 역적과 같이 국가에 해를 끼쳤거나
당파와 같이 사상을 달리하는
과거시험 합격자의 비문을 지웠다고 한다.
또한 거북의 머리가 새까맣게 변해 있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거북의 머리를 만지면
시험을 잘 칠 수 있다는 미신으로
오랜 기간 동안 문묘를 방문한 사람들이 문질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존의 필요성을 뒤늦게 깨달았는지
금줄을 쳐놓아 손에 닿지 않았다




향을 피우고 제를 올리는 대성전
때마침 제를 지내고 있었다.




제를 올리는 곳 위에는
'만세사표(萬世師表)'라고 쓴 현판이 있는데
'만세에 귀감이 되는 분'이라는 의미로
공자에 대한 존경을 표한 것이라고 한다.














대성전을 돌아가면 공자사당이 나온다.
공자사당도 대성전처럼 2개의 건물로 되어 있는데
앞의 건물에는 베트남 민속악기로 연주를 하고 있다
























하노이 한복판의 바딘광장에 도착하는 순간
기다란 줄에 깜짝 놀랐다.
움직임도 거의 없어서 지레 낙담을 하였는데
가이드가 짧은 앞줄로 안내한다.
설마 급행료가 붙어있는 줄은 아닐테고
단체관광객들을 위한 건지
외국인들을 위한 건지
어쨌든 기다림은 짧았고
우리 앞에 서있는 프랑스 할매들과 사진찍기놀이




처음에는 갓을 쓴 최샘에게
다음에는 패셔니스타라며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
나이 때문에 민첩하지 못한 떨리는 손으로
카메라 기능을 매만져가며
찍은 사진을 되돌려 본다.
그리고 흐믓한 미소를 짓는다.
남녀노소 누구나
5대양 6대주 어느 나라 사람이건
카메라를 대하는 모양새는 거의 비슷하다.














내 가방이 멋지단다.
손목 위로 살짝 비치는 보라색 레이스에 반한다.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스캔을 한다.
보라색 알라딘 바지를 코디했는데
아침에 옷을 본 남편이 풍덩하다며
한마디해서 입지 못한게 내내 아쉽다.
나름 보라색으로 깔맞춤 했는데...
그랬으면 이분들에게 최상의 코디를 보여줬을텐데...
ㅋㅋㅋ 아쉽다.
할머니들 중에서 나름 제일 멋지게 차려입은 이 분
그린과 베이지 배색은 평소 내가 좋아라하는 색감.....




호치민은 신앙에 가까운 그들의 국부
모스크바의 레닌묘처럼 김일성, 김정일 묘처럼
죽었으되 죽지 못하고
방부처리되어 조명 받는 유리관 속에 누워있다.
내 무덤을 만들지 말라는
그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인들은 그렇게 보낼 수는 없었나 보다.

끝없이 이어지는 방문객들...
호치민은 조국과 결혼했고
강대국인 프랑스와 미국과 싸워
그들을 몰아냈다.

지금도 추앙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절대 권력을 쥐고도
청빈한 생활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했다는 것.




실로 호치민의 일생은 조국의 운명과 함께 한 것이다.
마른 몸매에 약간 겁먹은 것 같은 베트남인 특유의 큰 눈,
한없이 인자하고도 부드러운 표정 속에
이웃집 아저씨 같은 친숙함이 보인다.




1969년 9월 2일 호치민은
그토록 열망했던 조국의 통일을 보지 못하고
떠났다.

“그는 우주만큼 넓은 심장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아이들에 대한 가없는 사랑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분야에서 소박함의 모범이다”라고
세계 언론들은 극찬했다.
분명히 그는 권력을 통해 어떠한 부귀영화도 누리지 않았고,
조금의 안락도 추구하지 않았으며,
끝내 친근한 ‘호 아저씨’의 이미지를 안고 떠났다.




호치민이 유언장에서
“내가 죽은 후에 웅장한 장례식으로
인민의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내 시신은 화장해달라”라고 주문한 것은
그의 인품을 그대로 말해준다.
권력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한결 같았던 인품 속에서
그의 탁월한 정치력과 추진력이 솟아나왔는지도 모른다.




엄동설한의 초라함이 없다면,
따스한 봄날의 찬란함도 결코 없으리.
불운은 나를 단련시키고,
내 마음을 더욱 굳세게 한다.
호치민 옥중 시<스스로 권면하며>









숲속에 호젓하게 서있는 골드하우스









생가 연못














연못에 비친 골드하우스
1식3찬을 실천하는 등 검소한 생활을 했다는 호치민
궁전을 마다하고 여기서 생활했다는게
더욱 국민들이 존경하게 만들었다



















호치민 박물관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1975년 4월 30일 베트남 패망소식과
보트 피플들의 처량한 망명생활을...
호치민이 그때까지 살았더라면
훨씬 밝은 미래가 펼쳐졌을까?

미군이 베트남에서 어떤 짓을 했는가?
우리는 베트콩을 얼마나 저주했던가?




마땅히 시야는 넓게,
생각은 치밀하게,
때때로 공격은 단호해야 한다.
길 잘못 들면 쌍차(雙車)도 무용지물이나,
때를 만나면 졸(卒) 하나로도 성공한다.
호치민의 옥중시 <장기를 배우며 2>














박물관을 나오면서 차 한잔




박물관 근처 일주사(一柱寺) -한기둥 사원
베트남 국보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한기둥 사원
말 그대로 하나의 커다란 기둥위에 세워진 절이라는 뜻이다.
일주사는1049년 리타이 토왕이 세웠으니
약 천년의 세월이 지난 베트남에서는 매우 오래된 절이다.
원래는 시멘트 기둥이 아닌 나무기둥이었으나,
프랑스군이 1954년 하노이를 떠나면서 파괴해버려
새로이 복구된것이라 한다.
자식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여기서 기도하면 효험을 본다고...




베트남의 옛날 교통수단인 씨클로를 타러 왔다.
우리 나라 인력거와 비슷한가?
자전거 인력거?
요즘은 오토바이가 대세
그래서 도심의 공기는 매연으로 매케하다.





























아줌마, 과일 사세요.




베트남 현지인 포스



















우리 일행을 태운 씨클로 10대가 무리지어 움직인다.
30여분 정도 탔나?
자전거 속도로 길거리 구경하는 것도
색다른 맛이다.














첫날 야경 볼때 왔던
리왕조 동상 앞도 지나고
우리들을 카메라에 담는 여인도 보인다.















































































페키지 여행의 단골 라텍스 공장 방문




공항 가는 길









하노이 공항




출국 수속









면세점의 표정




아오자이를 입고 싶었다.
적당한 가격에 맘에 드는 아오자이가 없다.
베트남 여행 시작이라면
다소 유치한 아오자이라도 입었을 텐데
지금은 베트남을 떠나고 있는 중이다.
대신 저렴한 가격에 원피스를 하나 샀다.


































다시 톤레샵 항공으로 캄보디아 씨엠립 공항에 도착했다.
워낙 작은 공항이라
트레인도 없고, 전용버스도 없고
오직 걷는다. 소박해서 좋다.




너무나 익숙한 캄보디아 공항




베트남에서 가져온 모자가
샘에게서 제자에게로 옮겨다닌다.
가이드를 기다리면서
험상궂은 캄보디아 경찰과 실랑이




베트남이여, 안녕.
하노이여, 안녕!
호, 아저씨여, 안녕
하롱베이여, 안녕.
씨클로여, 안녕.
안개비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