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촉촉한 안개 속의 하롱베이

올레리나J 2012. 2. 17. 11:52






자연이 만든 최고의 경관은
종종 인간에게 온전한 모습을 쉬이 보여주지 않는다.
하롱베이도 그랬다.
안개비로 섬들을 감추어
햇볕을 받은 온전한 알몸을 보고 싶은 나를 실망시킨다.
하지만 나는 하롱베이의 여러 얼굴 중에
가장 신비한 모습을 보았다.
3천여개의 섬들이
화선지에 곱게 번진 먹물의 농담처럼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부옇게 바다속에서 퍼져나간다.
모양도 크기도 다른 섬들의 잔영殘影이
보일 듯 말 듯
수면 위에서 흔들린다.
관광객들을 실은 목선들이
영화 속의 아바타처럼,
진용을 갖추고 쳐들어 오는 적군의 전함처럼
스윽 나타났다 사라진다.














하롱베이에 없는 것이 세가지라고 하는데
파도, 바다 비린내, 그리고 갈매기
분명히 바다인데 잔잔하기가 호수 같아서
파도가 없으니 당연 배멀미가 없으며
크고 작은 섬마다
맹금류가 많이 살아서인지
갈매기가 안보이고
석회석 지질의 특징 때문에
여느 바다에서든 맡을 수 있는 비린내가 없다.
그래서 커다란 호수를 유람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

1994년 베트남의 두 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희미한 물안개는 수평선과 하늘의 경계선을 흐트려 놓는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하늘에서 바위섬이 휘익 나타나는가 싶고....
바닷속에서 코끼리 섬이 스윽 올라노는 듯 하고...
햇빛이 물결에 반짝이는 아름다운 하롱만의 다른 얼굴도 상상해 본다.





























하롱베이의 명칭은 '용이 내려온 자리'라는 뜻
용이 내려왔다는 下龍....
만(灣)을 뜻하는 Bay.....


전설에 의하면 해적들의 침입에 고통받던 땅에
어느날 龍이 내려와 수많은 보석들을 뱉어
해적을 섬멸하고
그 보석들이 3~4000개의 섬이 되고
기암이 되어
지금의 아름다운 하롱베이가 되었다고 한다.
보석섬이라...과연 명불허전이로세.....








하롱베이는 섬 전체가 살아있는 예술품이다.
고운 전설과 설화를 간직한 채 위용을 드러내는 하롱베이
어느 신의 손길이
이처럼 완벽하게 아름다움을 빚을 수 있으랴..
시간과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이야 말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 자체가 아니련가.
아름답고, 향기롭고, 때론 고달프고,가슴 시린,
소박한 전설을 만들며 살아가는 우리네 삶
그 삶이야 말로 살아있는 예술품일진데....



































배들이 정박해 있는 곳이
바다 위의 횟집이다










바다 마을 사람들이 만든 가두리에서
손님들은 다금바리와 해산물을 골라 산다.
그리고 다시 배에 올라 계속 유람을 하는 동안
배에 있는 요리사가
다금바리 회를 손질해서 내놓는다.














과일 파는 곳도 있다




투구게와 함께 놀다.
가만히 있어 살짝 건드렸더니
와우! 몸부림이 장난 아니다.
깜놀!!!
고놈 무얼 먹었는지 엄청 무겁네.



섬들이 두두둥..떠 다니는 듯...









게 말고 개도 있다.
국적을 막론하고 개는 귀염귀염.









우리 배 요리사가 다금바리를 손질하는 동안
배는 다시 유람을 떠난다.
더 멋진 곳으로 고고~~~~




▲ KAL(대한항공) CF배경 광고용 돌섬

영화 인도차이나와 007에 소개되어 찬사를 받은 곳
대한항공 CF 배경으로 나와서
많은 사람들을 설레게 한 곳 하롱베이.
세계8대 절경 중에 하나인 하롱베이









다금바리가 회로 거듭나고 있을 때
우람한 남자와 아름다운 여인의 섬이 다가온다.









왼쪽은 남자요 오른 쪽은 여인네라..
일명 키스섬




정말 키스섬일까?




키스 들어갑니다.









우리 부부도 그들처럼....




막 건져올린 탄력있는 바다의 살점을 우물거린다.
살살 녹는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야.
어느 누구인들 소주 한 잔의 유혹을 거절할 수 있으리...
바다에 취하든 한 잔 술에 취하든
취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절경을 지닌 섬은
부드러운 듯 보이면서도 위풍당당하였다.









아름다움은 희미하게 잊혀져 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불러낸다.
대학 시절 기형도 시인의 문고판 시집을
표지가 닳고 닳도록 읽은 적이 있다.
그 싯구 하나가 이 시점에서 문득 떠오른다.

어느 날 불현듯
물 묻은 저녁 세상에 낮게 엎드려
물끄러미 팔을 뻗어 너를 가늠할 때
너는 어느 시간의 흙 속에
아득히 묻혀 있느냐
축축한 안개 속에서 어둠은
망가진 소리 하나하나 다듬으며
이 땅 위로 무수한 이파리를 길어올린다
낯선 사람들, 괭이 소리 삽 소리
단단히 묻어두고 떠난 벌판
어디쯤일까 내가 연기처럼 더듬더듬 피어올랐던
이제는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
다시 돌아갈 수 없으리, 흘러간다
어디로 흘러가느냐, 마음 한 자락 어느 곳 걸어두는 법 없이
희망을 포기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리, 흘러간다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
자리를 바꾸던 늙은 구름의 말을 배우며
나는 없어질 듯 生 속에 섞여들었네
이따금 나만을 향해 다가오는 고통이 즐거웠지만
슬픔 또한 정말 경미한 것이었다.
한때의 헛된 집착으로도 솟는 맑은 눈물을 다스리며
아, 어느 개인날 낯선 동네에 작은 꽃들이 피면 축복하며 지나가고
어느 궂은 날은 죽은 꽃 위에 잠시 머물다 흘러갔으므로
나는 일찍이 어느 곳에 나를 묻어두고
이다지 어지러운 이파리로만 날고 있는가
돌아보면 힘없는 추억들만을
이곳저곳 숨죽여 세워두었네
흘러간다, 모든 마지막 문들은 벌판을 향해 열리는데
아, 가랑잎 한 장 뒤집는 소리에도
세상은 저리 쉽게 떠내려간다
보느냐, 마주보이는 시간은 미루나무 무수히 곧게 서 있듯
멀수록 무서운 얼굴들이다, 그러나
희망도 절망도 같은 줄기가 튀우는 작은 이파리일 뿐, 그리하여 나는
살아가리라 어디 있느냐
植木祭의 캄캄한 밤이여, 바람 속에 견고한 불의 立像이 되어
싱싱한 줄기로 솟아오를거냐, 어느 날이냐 곧이어 소스라치며
내 유년의 떨리던, 짧은 넋이여

-기형도









내가 찍은 멋진 부부




안개로 적당히 감추어진 섬들은
누구라고 꼭 집어 그리워할 것도 없는
그리움에 젖게 한다....
호수같이 잔잔한 해면 위에는
용섬, 원숭이섬, 거북섬이 있고,
섬의 모습은 돌밀림, 돌선인장, 유령, 마법사, 들소,
코끼리 모양 등으로 시시각각 변한다.
보이는 섬에 이름을 붙이면서 그들을 불러 본다.
무성영화의 장면처럼 창을 사이에 두고
흘러가는 바깥 풍경을 느긋하게 바라보는 일은
마치 세상의 모든 여유가 내 것인 양
나를 착각 속으로 빠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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