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의 일상/자운영의 흔적

진달래 먹고

올레리나J 2009. 9. 29. 15:56

어제 식목일 아침에

등산객이 제일 없을 때를 골라 계양산에 올랐지

제일 바쁜 3월을 맞다보니 꽃소식을 전혀 알 수 없었어.



내 취미 중 하나가 등산이어서 산에 자주 갔었는데

작년 여름, 가을에 걸쳐

설악산 대청봉 두 번, 장장 14시간짜리와

내장산에서 백양사로 내려오는

단풍보러 연거푸 다녔더니

왼쪽 무릎이

상해서 퇴근 때마다 오르던

계양산에 오랜만에 갔어



팔각정 근처에

군락지를 이루고 있는 진달래꽃 정말 기막히더라.

소백산 흰철쭉도 보았다만 어쩜 그리 화려한지...

한 입 따 먹고 싶었지만

요즘 공기가 어디 그걸 허용하니?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먹을 수 있는 진달래와 그때는 개진달래로 부르던

먹으면 혀가 꼬인다고 먹지 않았던 철쭉을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었으니...



서두가 길었지만 또 옛날 생각이 나더라.

향동 애들은 잘 모를지도 몰라.

우리나 벌포애들은 하교때

온통 진달래만 피어있는 길로 다녔으니까.



특히 소릿재 넘어서부터는

샛길이 많아서 그곳으로 가면서

진달래 꽃잎 엄청 따 먹었다.

하교 무렵엔 틀림없이 배가 고팠을거고

딱히 먹을 것 없던 우리로선

철철이 먹을게 많았던 산길에 있던

먹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유일한 군것질 거리였지.



산딸기 종류도 두 가지 였는데

하나는 뱀딸기였고 지금은 복분자술로 유명한

산딸기였는데 뱀딸기가 훨씬 크고 통통했고

산딸기는 맛은 있었는데 열매가 작았어.


버찌도 주워먹었고

지금 그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그 열매도 참 맛있었는데..

까만 열매였는데.....새삼불이었대


지금은 엄청 고가로 팔린다는

난꽃대도 달짝지근해서 많이 꺽어 먹었는데

지금 그렇게 분재가 되어 돈벌이나

관상용으로 쓰일 줄 누가 알았겠니?


소문에 의하면 그 많던 향동난을

희맹이가 분재로 다 캐어 지금도 많이 가지고 있다며?


난 아직도 그 난의 아름다움을 볼 줄 모른단다.

왜냐하면 내겐 한갓 먹을 거리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향기가 있길하나 동양난처럼 화려하기를 하니?

모든 것이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나보고 무식쟁이라고 해도 어쩔수 없고,



지금 나도 몇그루 있다만

꽃을 피울때마다 저걸 한번 따 먹어봐?

그렇지만 거실에서 겨우 몇번 꽃을 피우는

그 가엾은 것을 따먹을 순 없었지.


칡뿌리와 더덕은 아주 고급 간식거리였고

소나무 새순도, 찔래나무 새순도

냉감나무 열매,

우리가 부르던 찰영감이라는 보라색 열매,

칡덩쿨도 모두 우리의 허기진 배를 달래어 주었지.



겨울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집에서 고구마를 가져와

우리들만의 장소에 숨겨두었다가 오면서 먹곤 했지.

입이 까매지도록 먹으면서

그 지루한 먼 길을 걸어 집에 왔다.
20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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