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의 일상/자운영 책을 읽다

비밀의 만찬

올레리나J 2010. 9. 29. 21:17

 

 

 

2010년의 추석 연휴는 책과 함께 하다.

1시간 이상 열독하다 보면 머리가 어질어질...

돋보기를 써도 머리가 지근지근...

이래서 책과 멀어지나 보다.

그래서 또 삶이 질이 떨어질거고

대체 수단으로 영화를 보지만

어디 책에 영화를 비교할 수 있으리오.

 

2권으로 나온 비밀의 만찬.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와  ‘천사와 악마’를 즐겨 읽어서

그 아류작쯤인 이 책도 쉽게 읽혀졌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고, 느끼는 만큼 이해하고, 이해하는 만큼 알게 된다."

내가 자주 쓰는 표현이다. 

여행할 때도 그렇고 예술품을 감상할 때도 그렇다.

하물며 그림이란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소품이라든지 인물의 구도,

손모양 등,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고 있다면

한장의 작은 그림도 보는 이에게 큰 감동과 흥분을 안겨줄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검은 것은 글씨요 흰것은 종이일 뿐일 것이다.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은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타마리아 델레그라치에 성당 식당의 벽화이다.

 가로 8.8m, 세로 4.6m인 이 그림은 1493년부터 1497년까지 5년 동안 제작되었다.

<최후의 만찬>에는 총 13명이 그려져 있다.

예수를 가운데 두고 제자들이 양쪽으로 6명씩 자리 잡고 있다.

그림을 보면 제자들은 3명씩 모여서 4그룹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의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제자들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몸통보다는 머리의 위치를 우선으로 한 순서다.

바르톨로메오-소야고보-안드레아-가롯 유다-베드로-요한-토마스-대야고보-필립보-마태오-유다 타데오-시몬.

<최후의 만찬>은 요한복음 13장 22절부터 30절에 이르는 내용을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다.

예수가 '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들 중에 나를 팔아넘길 자가 하나 있느니라'라고 말하고 난 직후의 모습이다.

이 말을 듣고 나서 제자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성질 급한 베드로는 요한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그 제자가 누구냐고 묻는다.

 소야고보는 베드로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그에게 손을 뻗는다.

안드레아는 자신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이 두 손을 펼쳐 보인다.

토마스는 한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고,

 마태오와 유다 타데오는 예수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그리고 예수와 가롯 유다는 같은 접시로 손을 뻗고 있다.

이 <최후의 만찬>에는 어떤 상징이 담겨 있을까.

예수와 제자들에게는 성인임을 나타내는 후광이 없다.

유월절의 만찬인데도 식탁에는 새끼양 대신에 빈접시가 놓여있고,

 예수의 앞에는 성배가 없다.

이상한 점은 또 있다.

베드로와 안드레아가 사실 형제였다고 한다.

그래서 <최후의 만찬>에서 레오나르도는 이 두 사람의 모습을 비슷하게 그려놓았다.

 그리고 소야고보와 예수의 얼굴도 유사했기 때문에

레오나르도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와 소야고보를 서로 닮게 그려놓았다.

유다 타데오의 모델은 레오나르도 자신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림에서 유다 타데오는 예수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다른 이야기도 있다.

그림 속에 있는 12제자는 12별자리를 상징한다고 한다.

즉 예수는 태양이고 12제자의 위치는 황도 12궁과 대응하는 관계다.

이에 따르면 요한은 천칭자리, 가롯 유다는 사수자리, 베드로는 전갈자리가 된다.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비밀의 만찬>은 제목처럼 레오나르도의 그림 <최후의 만찬>을 소재로 한다.

때는 1497년 1월.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머물고 있는 교황청에 '익명의 투서'가 날아들기 시작한다.

그 편지에 따르면 밀라노 대공의 후원을 받고 있는 저명한 예술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최후의 만찬>이라는 대작을 준비하고 있고,

그 안에는 수많은 이교도적 상징들이 은밀히 내포돼 있다는 것.

익명의 제보자는 계속 투서를 보내면서

지금 당장 작업을 중지시키지 않으면 대재앙이 내릴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에 도미니크 수도회 소속 종교재판관이자 암호해독가인

아구스틴 레이레 신부가 그 진위를 조사하기 위해 밀라노로 급파된다.
산타마리아 델레그라치에 성당으로 들어간 레이레 신부.
그는 <최후의 만찬>을 그린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그 주변 인물들을 직접 만나게 되고

그림에 얽힌 이상한 비밀들을 하나하나씩 풀어나가게 된다.
그러나 결국 대재앙을 예고했던 아고레로라는 인물에 의해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하다.

 연쇄살인범 아고레로가 남긴 7행의 암호문과 살인현장에 남은 타로카드.

그리고 수도원에서 암약하다 분신자살을 한 카타르파 교도인 기베르토 수사.

그러나 아직도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카타르파 이교도들…….
몇 개의 단서에 의지해 살인사건과 이교도의 음모와 비밀을 추적해나가는 도중,

종교재판관 레이레 신부가 흰옷을 뒤집어쓴 무리들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자신이 카타르파 교도들에 의해 납치됐다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 레이레 신부.
그는 한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도제였으며

카타르파 교도인 포르세타로부터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된다.

연쇄 살인범이 남긴 암호문 속에서 놀랍게도 범인의 이름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암호를 푼 사람은 다름 아닌 레오나르도 다 빈치였다.
이후 종교재판관이자 교황청 산하의 정통 가톨릭파였던 주인공 레이레 신부는

자신을 납치한 카타르파 교도들의 진실한 삶을 엿보면서

커다란 감동을 받게 된다.
얼마 후 밀라노로 돌아온 그는

산타마리아 성당에 그려진 <최후의 만찬>을 다시 보면서

그림 속에 숨은 진짜 비밀을 깨닫는다. 그

것은 사도들의 특징을 알파벳대로 나열하여 거꾸로 읽으면

' 콘솔라멘툼' 즉 '이단 카타르파의 성찬'이라는 뜻의 용어가 나온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즉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정통 가톨릭 성당에 버젓이 이단의 성찬을 그려놓았다는 의미가 된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다 빈치가 이단교 카타르파의 지도자임을 말해주는 증거이며

당시로서는 절대적 권력인 로마교황청에 도전장을 내미는 행위였다.

그 사실이 밝혀지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비롯한

관련 인물들은 모두 신성모독죄로 사형에 처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주인공 레이레 신부는 결코 이들을 고발하지 않는다.

몇 개월 뒤 그는 오히려 화려했던 자신의 모든 직위를 버리고

은둔자의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말년에는 이집트 나일 강 근처의 한 동굴에서

후세에 남길 진실을 위해 회고록을 쓰면서 생을 마감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는 누구인가?

레오나르도는 이런 격변의 시기를 살았던 인물이다.

당시에 레오나르도는 시체를 해부하고,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비행기와 에어컨, 기관총의 모형을 설계하고 있었다.

동시대인들의 눈에는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어쩌면 <비밀의 만찬>처럼 레오나르도가 작품 속에 뭔가 비밀을 감추어 두었을지 모른다.

조용히 교회의 요구를 따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많은 호기심과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

화려한 삶을 살았던 레오나르도의 말년은 조용했다.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가 남프랑스의 성을 레오나르도에게 제공한다.

 생활비로 쓰고도 남을 만큼 많은 연금도 함께 제공했다.

그곳에서 레오나르도는 조용한 여생을 3년 동안 보내고 죽는다.

프랑스 왕의 호의에 보답하려고 했는지,

항상 가지고 다니던 <모나리자>를 죽으면서 프랑스 왕에게 기증했다.

덕분에 <모나리자>는 프랑스에 남게 되었다.

레오나르도가 죽으면서 남긴 물건은 얼마 안 된다.

원고와 스케치 몇 점, 그림 몇 점이 들어있는 궤짝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말을 남겼다.

"유효하게 사용한 하루의 마지막에 기분 좋은 잠이 찾아오듯이,

유효하게 사용한 일생의 끝에는 기분 좋은 죽음이 찾아온다."


이 책의 저자 스페인 출신 작가 하비에르 시에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단의 교리를 수용한 화가라고 가정한다.

부패했던 로마 교황청을 대신해

새로운 교회의 도래를 최후의 만찬으로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최후의 만찬에 다양한 상징, 암시,

암호 등을 사용하는데, 저자는 이를 풀어내는 과정을 흥미 진진하게 그려낸다.

이 책 앞장에는 최후의 만찬 그림이 있는데,

저자가 말하는 하나하나를 확인하기 위해

몇 번이나 들추어 봤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림 하나에 그 모든 것이 표현되어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이 작은 그림 하나로 2권의 책을 만들어낸

그의 추리력과 상상력도 다빈치만큼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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