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독일

올레리나J 2010. 8. 11. 10:55

여객기 화장실 앞 좁은 공간에서 구부러진 몸을 몇번의 스트레칭으로 풀어주면서
11시간여의 고생 끝에 드디어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일행 중 가방손잡이 훼손으로 인한 보상문제로 1시간여를 공항에서 지체
오후 7시경 공항을 나와 버스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데 비가 내렸다.



히틀러가 닦아놓았다는 5번 아우토반을 3시간을 달려 독일 시골마을 멜링겔의 작은 호텔에 여장을 풀고
여행 첫날밤의 설레임으로 삼총사 부부는 근처 마을 투어에 나섰다.
24시 주요소 매점에 들어가니 빵과 소세지가 기내식으로 허기진 배를 유혹했다.
어~~이런! 물값보다 맥주값이 훨씬 싸다니....쏘세지를 안주삼아 한잔씩 맛을 보는데
맥주는 보리향이 강하고 쓰디썼으며 쏘세지는 가죽을 씹는것처럼 딱딱하여 썰어지지도 않았다.



자정이 넘어 잠을 청했으나 4시쯤 눈이 떠져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7월 27일,화요일. 날씨 맑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호텔식당이 문을 열자마자 들어왔다.



원래 밀가루 음식을 싫어하는 난 빵이 주식인 호텔식에서
빵을 한번도 먹지 않았고 우유에 씨리얼, 과일 샐러드, 달걀 정도로 끝내서 항상 허기졌다



9시 출발이어서 시간이 넉넉했다. 호텔 앞에 세워진 혼다앞에서 한 컷!



밤에 보지 못했던 주변엔 들꽃이 수줍게 이슬을 머금고 있었다.
삼총사 마누라들만 한 컷



머리에 꽃을 꽂고 또 한 컷!




동유럽 여행이 끝날 때까지 함께 할 버스 앞에서도...



들꽃 향기 맡으며 남편이 만들어준 여행책자로 오늘 관광지 각종 정보 확인...



중앙 출입구를 기준으로 뒤쪽 20여 좌석이 삼총사 것. 오늘 고생할 내 발도 써비스로 찍어주고....



45인승 버스에 가이드, 운전사 포함 26명이니 좌석이 여유로워서 햇빛을 피해 이리저리 옮겨다녔다.
사람들의 습성은 참 이상하다. 첫날 앉은 자리가 고정되어 끝날 때까지 변하지 않으니..



독일의 광활한 들판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게 풍력발전기였다.
발전기 기둥의 30%를 우리나라 부산의 중소기업에서 수입하여 쓴다 하니 뿌듯함이...



창밖의 풍경 때문에 잠이 부족한데도 잠들지 않았다.
밀,보리의 황금색 들판이 스치고 지나면 쭉쭉뻗은 자작나무와 소나무가 지나고 연푸른 목초지가 끈임없이 이어졌다



산이 없어 바람을 막지 않으니 풍력발전하기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겠다.
국민소득 6만불의 독일이 발전기 기둥을 수입해다 쓰는 이유가 환경오염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3시간 달려 도착한 휴게소. 버스운행 준수가 철저한 유럽은 일정시간 운전하면 반드시 시동을 끄고 일정시간 쉬어야 벌금을 내지 않는다고...



1유로가 1700원 정도여서 물가가 비싸 휴게소에서 간식거리 사 먹기도 싶지 않았다.
준비해간 간식보다 훨 입맛이 땡기는데....과일이 있음 사먹으려 했느나 없다.
면세점에서 오클리 래져용 썬그라스에 잔뜩 눈독들였으나 못사고
여기 휴게소에서 hummel 보라색 테두리 썬글라스를 사서 여행내내 머리띠용으로 사용했다.
화장실도 1유로로 2명이 사용할 수 있다.



물값이 비싸니 물을 마시지 않음 화장실에서도 절약할 수 있겠다.ㅋㅋㅋ



건물이 하나씩 보이는걸 보니 베를린에 진입했나보다.시원스레 뚤린 아우토반 쾌속질주였다.



예쁜 여자 포스터가 붙어있는 버스도 지나고



분단의 아픔을 가장 가까이서 겪은 베를린 시가지 모습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았다....



Berlin city tour 2층 버스도 지나가고



웅장한 설치미술 조각품도 보이고



광장엔 사람들도 많이 나와 있다



한국식당 호도리에서 가지무침,숙주나물,깍두기,감자조림,소고기 육개장 차림의 한식을 먹었는데 짰다.



베를린에서의 오늘 첫만남은 카이저 빌헬름 교회다.



교회 옆 벤츠 본사의 로고가 빙빙 돌고 있었다.



카이저 빌헬름 교회는 독일 최대의 번화가로 유명한 쿠담거리에 위치
‘썩은 이빨’이라고 불리며 (폭격맞은 건물이 썩은 이빨처럼 보인다하여)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으로 입은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교회는 평화와 화합의 상징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기억하고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는 의미로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였으며, 대신 바로 옆에 육각형으로 된 교회를 새로 지었다.



썩은 이빨은 독일의 첫 번째 황제였던 빌헬름 1세의 영광을 기념하기 위해
1891년부터 1895년까지 4년 여에 걸쳐 신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그래서 교회 이름도 카이저 빌헬름 인가보다



일부만 개방된 교회안,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천장의 모자이크는 정교한 예술 작품이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며 펼쳐지는 독일인들의 종교성을 그림으로 펼져 보여주고 있는데
자세히 바라 볼 수록 그 정교함과 화려함에 감탄을 하게 되니
그 시대에 이 교회가 얼마나 화려한 모습이었는지 짐작케 한다.



신교회 육각형의 종탑에는 빌헬름 1세의 증손인
루이스 페르디나느가 만든 종에서 매시간 아름다운 멜로디를 울린다.
이 건물은 1904년에 태어나 1970년에 작고한
건축가 아이어만 의 설계로 전쟁의 잔해인 카이저 빌헬름 교회를 현대식 건물과 정교하게 결합시켜
베를린의 상징물로 만들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195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하기에는 참으로 시대를 앞선 디자인이지 싶다.
가까이서 보니 마치 벌집모양을 연상케했다.



겉으로만 보았을 때에는 평범한 건물에 지나지 않았는데
안에 들어오니 상상치도 못했던 모습이 펼쳐진다.
22500개의 푸른 스테인드 글라스는 눈부신 하늘나라를 연상케하는 장관이었고
승천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신비롭고 환상적인 느낌을 주었다.



예배당의 안으로 들어와 출입문 쪽으로 뒤돌아 보니
5100개의 파이프가 이어진 파이프 오르간이 보인다.
주일에는 저 파이프 오르간으로 연주되는 성가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파이프 오르간의 특유한 소리를 맘속으로 들으며 밖으로 나왔다.



쿠담거리를 활기차게 걷고 있는 나...
베를린은 넓은 숲과 많은 호수를 안고 있어 도시 미관이 뛰어나고,
또 ‘베를리너 루프트(베를린의 공기)’라고 노래로 부를 정도로 공기가 맑다.
길거리에 차가 많이 다니는데도 숨쉬기가 참 편하다
전쟁 후 폐허가 된 독일 국민들이 제일 중점적으로 복원사업을 벌인 것이 나무심기였으니......



번화가는 어딜가나 이런 사람들 꼭 있다. 행위예술가라든가....



전승기념탑에 가기 위해 다시 버스를 탔다. (뭔 광교여?)



찍고보니 삼성 광고네?



공사중인 전승기념탑.
이 탑은 프로이센 제국 시절 오스트리아(1860년), 덴마크(1864년), 프랑스(1871년)와의 전쟁에서
연달아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탑 꼭대기에는 황금빛이 나는 빅토리아 여신상이 서 있다.
이 탑의 높이는 67m이며, 그 위의 여신상의 높이는 12m이다.
285개의 나선식 계단을 올라가면 티어가르텐의 우거진 숲과 그 너머로 포츠담 광장이 한 눈에 들어온단다.
짐 벤더스 감독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 등장하는데, 나도 이영화를 보았다..
천사가 이 탑의 여신상에서 인간의 삶을 선택하기 직전에 고뇌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통일의 주역들인 론 국방장관 동상과



몰트케 장군 동상



오토 에두아르트 레오폴트 폰 비스마르크(1815년 4월 1일 ~1898년 7월) 역사시간에 달달 와웠던 이름중에 하나,
독일을 통일하여 독일 제국을 건설한 프로이센의 외교관이자 정치인
제2제국 수립 후 초대 수상이 되었으며,
독일의 통일을 위한 프랑스 및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강행하여
승리로 이끄는 등 철혈정책을 추진하여 보통 '철혈 재상'이라고 불린다.



통일 독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문을 향해 걷다.(사람들의 시선이...)



특이한 모양의 횡단보도의 신호등. 저런 모양의 신호등이 있는 지역이 구베를린 지역이라고 한다.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동양적인 느낌의 건물이 눈에 띄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동물원 중의 하나라고...



유럽 연합 국가들의 공통 화폐인 유로화의 동전은 각 나라 별로 동전의 뒷면을 다르게 만드는데,
독일에서 만드는 50센트 동전의 뒷면에는 브란덴부르크 문의 형상이 새겨져 있다.
이 문은 베를린을 대표하는 건축물인 동시에,
독일 통일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베를린 장벽이 개방되던 날과 무너지던 날의 사진을 보면
장벽 바로 뒤에 서 있는 브란덴부르크 문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시에는 높은 장벽 뒤에 서 있어 독일의 분단을 상징했던 이 문은
통일 이후 장벽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 그대로 남아 독일 통일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문 위에는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를 태운 사두 마차 조각이 올라가 있다.
이 조각은 문이 완공되고 4년이 지난 후인 1795년에 제작된 것으로,
나폴레옹이 1806년에 강탈해 갔다가 실각한 후 다시 되찾아 온 것이다.
승리의 여신이 들고 있는 독수리가 올라가 있는 철 십자가는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1814년 조각을 되찾아 왔을 때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많은 논란 끝에 추가된 것이다.
논란이 있었던 이유는 원래 문이나 조각이 문화, 학문, 평화를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조각은 파리 광장을 향해 동쪽을 보고 있지만,
한때는 히틀러의 명령에 의해 서쪽을 향하고 있기도 했었단다.



브란덴부르크 문 주변을 산책하고 있는 개들, 난 처음 보는 종이던데...



전쟁의 아픔,분단의 아픔은 사라지고 오늘 그들은 크게 웃고 있구나.



인디언 족장으로 변신해 같이 사진 찍어주고 돈을 받는 ...



독일하면 베를린 필이 유명한데 공연장은 어딨을까? 베를린 영화제의 중심지는어딜까?



Brandenburg Gate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Holocaust Memorial이 있다.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이 일어났던 홀로코스트 60주년을 맞아서
2005년에 완공되었다고 하는데,디자인이 참 독특하다.
평범을 거부한다고 해야 하나,
디자이너인 Peter Eisenman은 이 Memorial에 희생자의 이름을 새기는것을 끝까지 반대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이 곳은 전형적인 '묘지'의 느낌으로 남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디자이너의 의도는,홀로코스트는 우리역사에 늘 새겨 있을터이니,
이 곳을 일반인들의 일상적인 삶의 한 부분으로 쓰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조형물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모양과 규격이라고 한다.
첫눈엔 다 똑같은 선에 나열되어 있는 듯한 이 돌기둥들이,
가만히 보면 중간에 하나씩 비스듬하게 튀어 나와 있는데,
그게 혹시 히틀러라는 사람,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데,
아주 작은 차이 때문에,이런 엄청난 참상을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게 아닐까



이 돌기둥들을 낙서를 방지하기 위해 약품처리를 했다고 하는데,
그 약품방지 처리를 한 업체가 바로 유태인 학살에 사용된 가스를 납품했다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나치와 연관되지 않은 독일 기업을 찾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라는 항변을 했다는데...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베를린 장벽을 향해 걸어가는데 길게 줄지어 있는 사람들이....



미술관이었는데 우리 나라에서도 전시회가 열렸던 프리다 칼로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신체의 고통이 많아 그림도 고통스럽게 표현한 참 특색있는 그림을 그렸던 프리다 칼로,
그런 그림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상처엔 동정심이 절로 드는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
뜨거운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동,서 베를린으로 가기 위해서 엄격한 심사를 거쳐 통행권을 발급했다는데 그 모습을 완벽 재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게 된 이유가 공산당 대변인(사보프스키)의 말 실수였다고
동독인들이 베를린 장벽을 오갈 수 있도록 한 실제적인 첫 번째 조치가 여행자유화조치에 대한 발표때문이었는데
동독 공산당은 민주화시위를 달래기 위해서 동서독 국경선 어디에서든 여행신청을 할 수 있게 하기로 했다.
그것도 순차적으로...



기자회견 때 대변인인 사보프스키가
언제부터 여행자유화가 시작되느냐는 질문에
' 바로 지금 이순간 부터'라고 엉뚱한 답변을 했고,
흥분한 동독인들은 서베를린으로 가기 위해 베를린 장벽에 달려가서
당연히 상부명령을 전달 받지 못한 군인들을 압박했고
할 수 없이 장벽을 열었고 더 웃긴 건 동독 공산당은 잘못된 대변인의 발표를
마치 자신이 그렇게 한 것처럼 선전했다는 거다.



황당한 여행자유화 조치에 반대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이미 군중들이 베를린 장벽을 부수고 있었다.
말의 실수가 때로 역사도 바꾸고 사람들의 삶을 바꾸기도 한다는 거.
다시 한번 깨닫는다.
말의 힘!
그렇게 베를린 장벽은 1989년 11월 9일 밤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우리나라는 휴전선보다도 더 큰 마음의 장벽을 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변화하려는 태도, 과연 우리는 통일을 진정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강하게 YES라고 대답할 수 있는지...
말 한마디의 실수로 그렇게 쉽게 통일이 올 수 있을지...



이 담 너머 있는 자유를 너무나 간절히 바라던 이들.
겨우 3미터 남짓한 담을 넘는 것이 목표지만 그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수많은 이들은 결국 눈앞에 자유를 두고도 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자유는 목숨과 바꿔도 아깝지 않은 절대소망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가족과 이웃의 죽음을 겪어야만 했던 이들은
티비에서 보았던 그 환희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통일 후의 손익계산부터 하고 있지는 않은지.
냉전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나라의 현실이 그저 암담할 뿐... ..



다시 버스에 올라 폴란드 브로츠와프로 향했다.



가지런히 줄지어 서있는 소나무와 해바라기 밭들의 도열을 받으며...



독일 전체가 참 깔끔하다는 느낌을 뒤로하며



독일과 폴란드 국경, 아무런 검열없이 씽~씽~ 통과



국경을 넘어 폴란드 땅 첫번째 휴게소 옆에 폴란드 화폐 환전소가 있었고
사람들이 끊임없이 환전을 해 갔다.
폴란드는 유로화를 쓰지 않아서 여행객들에겐 불편하기 그지 없었다



밀인지, 보리인지.. 이런 황금 들판이 끝없이 이어졌다.



해가 나타났다,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기도 하는 변화무쌍한 자연,
눈을 뗄 수 없는 이국의 정취를 맘껏 느끼면서...



시골 주택모양이 독일과 약간씩 다름을 감지...

> 6시간을 달려 폴란듸 한적한 시골마을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다
저녁 후 밤 산책을 나갔는데 날씨가 싸늘했다.
맨살 다리에 느껴지는 공기가 우리나라 10월말의 한기처럼 느껴졌다.
 

 





1악장 (Allegro Giusto)
Pietro Spada, Piano
Orchestra Da Camera Di Santa Ceci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