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자신이 쌓아온 성을 벗어나는 것이다' 라는
신영복 선생님의 정의에 공감하며...
(카프카가 프라하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던 것처럼
나도 나를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방학하기 한 달전에 터키일주를 해볼까 하고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는데
갑자기 부부모임에서 동유럽을 가자했다.
남편이 백령도에 근무할 때 거기서 친하게 지낸 3총사(김,박,서) 부부모임을
8년째 해오면서 1년에 한 번은 뮤지컬도 보고, 다달이 영화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면서도 회비가 꽤 모여 목돈없이 회비로 전액 충당....
여행사는 3급, 디디투어 -공식적인 금액 249만원에 기타까지 1인당 약 300정도
동유럽&발트 8국 12일..다소 빠듯한 일정....여행사와 일정은 내가 선택했다.
여행은 떠나기 전에 준비하면서 제일 행복한데
그 행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방학하는 날까지 바빠서 정신없다가 갑자기 떠나게 되어서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야 '내가 드디어 벗어나는구나.'
번데기에서 탈피해 날아가는 나비와 같이 헐훨 날아보자꾸나.
여행자로서의 내가 비로소 실감이 났다.
짐을 부치고 면세점 구경, 난 설화수 분을 사고 남편은 담배를 샀다.
아들뻘 되는 옆반 선생님이 어버이날 선물한 일본작가의 단편을 들고 왔다.
자투리 시간에 단편소설처럼 도움이 되는 책은 없는 것 같다.
대한항공을 타고 간다,
우연이 가져온 행복한 기적이란 부제가 붙은 제목도 근사한 필름과
처음으로 네일아트로 멋부린 손톱
일을 많이 해 굵어진 마디땜에 어울리지 않지만 모처럼 부엌에서 벗어나니
내 손도 호강 한 번 해 보거라...
지루하지 않게스리 한결 업덴 대한항공. 오랜만에 대한항공기를 타니 맘이 편하다.
영화도 음악도 별별 소일거리가 풍부해서 좁은 의자땜에 겪는 고통을 다소 잊게 해주었다.
앞사람 의자 뒤에 깜찍한 모니터와 리모콘까지 앙증맞게 끼워져 있다.
내 좌석이 창가쪽이라 이륙하자마자 인천 앞바다를 필름 속에 담았다.
미지의 여행지에 대한 설레임이 극에 달한다.
드디어 구름속을 뚫고올라와 구름위로 살포시 날아간다.
이후로 이런 풍경이 계속되었다
기내에서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일회용 슬리퍼와 칫솔세트 해드셋까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할 수 있어서 재밌다.
동서남북 방향도 알려주고
출발지 도착지 시각,남은 시각까지 체크
지도 공부하다가,영화보다가, 잠이 들다가....
석식으로 비빔밥을 먹고...다시 영화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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