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님의 작품은 우선 재미가 있다.
한 번 책을 들면 끝까지 읽어버린다.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는지...
박완서 특유의 맛깔스런 문체는
그의 삶이 그대로 투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도 님의 자전적 소설이란다.
그 남자네 집은 첫사랑의 남자가 살던 집이다
‘그 남자’는 먼 친척 뻘인 또래의 청년 ‘현보’다.
대학을 그만두고 미군부대에 다니던 박완서는
6.25 전쟁통에 아버지와 오빠를 잃는다.
현보는 아버지와 큰형 가족이 월북해서
어쩜 그들은 감정의 동질감이 운명적인 만남으로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군에 징집됐다가 넓적다리에 부상을 입고
명예제대한 현보와 매일이다시피 만나 어울린다.
현보는 음악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고
두 연인들은 한마디로 코드가 맞는 그런 사이다.
그러나 그 관계는 손 한 번 잡지 않는
이른바 플라토닉 러브로 머물 따름으로,
결국 여주인공은 한갓 낭만적인 ‘백수’일 뿐인 현보를 포기하고
은행원과 결혼한다.
문화의 차이로 시집에서 갈등도 하지만
무난한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그녀 앞에
현보가 홀연히 나타나고
둘은 다시 만나고 결혼 전과 같은 관계를 이어간다.
시장을 돌며 시장구경하며 맛있는 것도 사먹고...
없는 시간 쪼개어 유쾌한 만남을 계속하지만
그 관계는 어처구니없는 파국으로 귀결된다.
현보가 뇌에 침투한 벌레를 제거하는 수술 끝에 실명하고 만 것이다.
그것으로 상황 끝.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긴 하지?
그것은 일종의 후일담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을 때 그들은 포옹을 한다.
“우리의 포옹은 내가 꿈꾸던 포옹하고도 욕망하던 포옹하고도 달랐다.
우리의 포옹은 물처럼 담담하고 완벽했다.
우리의 결별은 그것으로 족했다.”
이런 그녀의 마지막 독백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마지막 만남이 50대 후반으로 짐작되는데
그 나이가 되면 첫사랑을 만나도
물처럼 담담하고...완벽한 만남이 가능할까?
박완서님의 나이가 73세인데
첫사랑이 먼저 죽고 그 나이가 되면
아무렇지 않게 첫사랑의 기억을
몽땅 세상에 내놓을 만큼 담담해질까?
그때 나도 한 권의 소설을 써볼까...
아님 담담하게 수필집으로 남길까?
아픈 기억보다 행복한 기억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어쩜 아픈 기억을 무의식적으로 지우면서 살아왔을...)
내 첫사랑 이야기를....
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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