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돌아오라 소렌토로 돌아오라..이탈리아 나품쏘

올레리나J 2009. 10. 20. 15:19


서기 79년 8월 8월24일 아침, 로마 부유층들은 어김없이 여름 휴양도시 폼페이로 몰리기 시작했다.

베수비오 산으로부터 12㎞ 떨어진 항구도시 폼페이는 화려함과 사치스러움 그 자체였다.

베수비오 산은 가끔 연기를 내뿜었지만 16년전 폭발한 이후 별다른 조짐이 없었다.

화려함의 극치를 추구하는 로마의 로열 패밀리들은 이따금 연기를 내뿜는 모습이 오히려 폼페이의 경관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날 정오쯤 며칠동안 이어졌던 땅의 흔들림이 갑자기 거세어지면서 베수비오 산은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시뻘건 용암을 토해냈다. 순식간에 하늘은 버섯구름으로 뒤덮이고 화산재가 비 오듯 쏟아졌다.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사람들은 혼비백산한 채 쓰러져 갔고 날아가는 새들도 추풍 낙엽처럼 떨어졌다



폼페이 최후의 날을 만든 베수비오산을 버스안에서 찍었고 버스에서 내리니 벼룩시장이 늘어서 있었다



내가 걸고 있는 파랑 귀걸이 약 4,5천원주고 벼룩시장에서 샀다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 역시 폼페이 최후의 날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내가 성경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이 부분만은..“여호와께서…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성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인간들의 죄를 어찌 하리오?



신의 분노라고는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베스비오 화산 폭발로 고스란히 2만 5천명의 시민중에 2000여명이 화산재 속에 묻히고 말았다....



강진을 동반한 베수비오 화산폭발로 분철한 화산재가 무려 1m가까이나 쌓였었고, 나폴리의 하늘을 검게 뒤덮었다.



교외로 도망치는 사람, 집안에서 잠잠해지길 기다리며 피신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내린 비로 인해 .



분출한 화산재와 용암이 응결하면서 거리 전체가 마치 찌는 솥과 같은 형상이 되면서 도시전체가 그대로 매몰되었던 것이다.



기원전 2세기 중반에 처음으로 지어진 폼페이에서 가장 중요한 제우스 신전..뼈대만 앙상하게..



잔디와 덩굴식물들이 자라 그 자리를 덮게 되면서 폼페이란 도시라는 이름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그리고 1500년 동안 역사의 저편에 사라져 있었다



17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조심스러운 발굴작업은 아직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유적과 유물들로 당시의 폼페이인들의 문화와 예술, 건축수준을 짐작할 수 있기에 충분하다.



비교적 잘 보존된 당시의 도자기들....



그러나 사람들을 안타깝께 했던 점은 빵집의 화덕에는 갓 구워 낸 빵이,

선술집 술독에는 포도주가, 책상 위에는 동전이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는 것.

인간이나 동물의 시체는 화산재 안에 공동(空洞)으로 남아 있었다.



당시 남아있던 동전들과 유황가스로 인해 입과 코를 막고 죽어 있는 시체



멸망 당시 폼페이 시민들이 느꼈을 혼란과 공포가 그대로 전달됐다.



79년 화산이 폭발하기 전인 BC 62년에도 대지진으로 파괴되어 시민들이 힘을 합쳐

주택과 사원들을 재건해 겨우 재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폼페이가 로마제국으로 편입됬을때 로마인들은 폼페이를 지리적,지형적 특성에 맞게 고쳐나갔다.

자갈로 포장된 도로에 하수로가 있었기 때문에 보행자 도로를 조금 높게 올렸다



남녀가 따로 쓰는 공중 목욕탕..탈의실도 있고 옷을 벗어서 걸어 두는 곳도 곳도 따로 있었으니...



폼페이는 9개의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마리나 문 일명 바다의 문



폼페이 시로 들어가는 관문 근처에는 여관과 마굿과, 병원이 있었고,

시내 중심 거리에는 선술집과 현재의 패스트푸드점과 같은 카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카페들은 로마인들이 공중 목욕탕에서 목욕을 마친후 간단한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



최초로 역동성을 부여한 조각



폼페이에서 가장 큰집..대 부호의 호화저택으로 짐작



폼페이 유적 발굴을 통해 드러난 하수시설, 목욕탕, 시장, 극장, 원형 경기장, 음식점 등



각종 시설은 2000년이라는 시간을 고려한다면 현대의 그것과 비교해 떨어진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방앗간이었나?



현재 보수중이라 출입금지된 당시의 윤락가와 유흥가..벽에는 적나라한 성애의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고

아래층은 직급이 낮은 여자들이, 2층에는 귀족 부인들이 사용했다는데 호스트바 정도로 생각했을까?



공동 우물



원형극장 및 경기장



정치,경제,행정을 담당하는 건물이 있었던 도시의 중심부..폼페이 유적발굴은현재 70% 정도 되었다고 한다.



베수비오산에서 27킬로미터 떨어진 베수비오 식당에서 이태리 정식 스파게티로 점심을 먹다.

밀가루 음식 질색이나 배가 고파 먹을만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짝퉁이 갑자기 오~ 솔레미오♪♪♪♪ 힘차게 부르더니 아니나 다를까..동전 바구니를 돌린다

장난꾸러기 짝 100짜리 동전을 넣으니 좋아라 하데...



쏘렌토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역에 왔다



이탈리아 여인네들이 어찌나 시끄럽게 떠들던지 나의 사색을 방해했다



쏘렌토에 도착했다.옵션으로 카프리를 가기 위해...



돌아오라 소렌토로♪♪ 고등학교 때 배운 노래를 불러봅니다



♩♪♪아름다운 저 바다와 그리운 그 빛난 햇빛 ♪♪



♩♪♪내 맘속에 잠시라도 떠날 떄가 없도다♪♪



♩♪♪향기로운 꽃만발한 아름다운 동산에서♪♪



♩♪♪내게준 그 귀한 언약 어이하여 잊을까♪♪



♩♪♪멀리 떠나가 그대를 나는 홀로 사모하여♪♪



♩♪♪잊지 못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노라♪♪



♩♪♪돌아오라 이곳을 잊지말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돌아오라♪♪쏘렌토를 뒤로 하고 배를 탔다



쾌속선 후미에서 지중해의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는데 물보라가 나를 삼키듯 달려들어.



물보라를 피해 선실로 들어왔다



카프리에 상륙..멋진 폼 잡고 있는 선원을 보니 갑자기 친구 생각이 났다.

그도 여기 어디쯤에 저런 모습으로 서 있었을까?



섬 전체가 용암으로 둘러싸인 호화로운 천국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 살기에 너무나 좋은 곳이랍니다



괴테,클라크 게이블, 막심 고리끼, 재키 오나시스 등 세계적인 명사들도 이곳을 자주 찾는다네요



정박해 있는 보트와 배들....



카프리섬 정상으로 가기 위해선 좁은 골목길을 미니버스를 타고 가는데 이 운전사들은

따로 면허증을 발급받는다나? 길이 너무 좁고 구불구불해서리...



버스에서 내려 이번엔 케이블카를 타고 지중해의 부드러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버스에서 찍은 아랫쪽 마을들...



바위와 어우러진 섬은 마치 한폭의 그림 같았지요.



이런 물빛의 바다는 내 생애 처음 본다. 눈이 시리도록 파랑인 코발트? 단어로 표현 안되는 그런 색깔...



BC29년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카프리를 방문한 후 그 아름다움에 반해 카프리보다 훨씬 큰 규모의

이웃섬을 포기하면서까지 나폴리로부터 사들였다한다.



그 다음 왕위 계승자였던 티베리우스 황제가 올림푸스의 12신에게 바친 12개의 저택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카프리에는 850여종의 다양한 꽃과 식물, 나무가 자라고 있어,

섬 어느 곳을 둘러봐도 아름다운 경관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많은 해양생물의 보고이기도 하고, 많은 종류의 텃새들이 서식지이기도 하다고.



카프리의 풍경은 아름다운 자연과 예쁜 집들이 어우러져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언덕, 절벽, 올리브 농장, 포도원과 정원의 테라스앞에는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지중해 바다가 펼쳐져 있다



저멀리로 나폴리와 베수비오산이 어렴풋이 보이고 페리와 고속정이 만에서

지그재그로 움직이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나 돌아가기 싫어!



아나 카프리에 서식하는 식물들...



쏘피아 로렌의 별장이 이 근처에 있다는데...



그리고 유심히 보면 영화배우 등 유명인사도 볼 수 있을거라는데



치마가 날린들..마릴린 먼로 밖에 더 되겠어?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은 분위기 잡고 커피 마시는데 나랑 짝은



토끼처럼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다



이탈리안 인들이 권하는 첫번째 여행지가 이 근처에 있는 아말피 해안



두 번째가 카프리라는데..아말피 해안은 얼마나 더 멋질까? 다음 기회에...



성악가의 꿈을 안고 유학온 현지 가이드..곧 같은 유학생과 결혼할거라고...



내려오면서 아쉬워 또 한 장



배를 타고 3대 미항 중의 하나인 나폴리 항에 왔다



황량하고 더럽고 도둑많고 게으르고 마피아 소굴이라서 더 이상 3대 미항이 아니라고



세계사 시간에 3대 미항을 외우면서 언젠가 꼭 가보리..꿈을 이루는 순간인데...



어쨌든 시드니와 나폴리 두 곳은 보았으니...리우데 자네이로만 남았나?



그래도 비린내는 나지 않았다..생선을 잡지 않아서일까? 횟집이 없더라고..



앗! 멋진 남자의 시선!



3대 미항이 아니더라도 포기하기엔 너무나 아쉬운 곳



옆에 있는 남자 잘 생겨 살짝 앉아서 찍으려 했는데 고개를 돌려 버렸네



나폴리 라는 글자가 선명하네요



고대의 개선문을 모방하여 만든 나폴리의 개선문 근처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갑니다



선착장



배 타고 전세버스 타고 다시 로마로 서너시간 갑니다

Ernesto De Curtis(1875~1937) Torna a Surriento 돌아오라 소렌토로 tenor/Franco Corelli(프랑코 코렐리) (1921,Ancona~2003, Milano) 바다를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정을 듬뿍 품고 있도다 너를 생각하는 사람을 꿈꾸도록 하는 너처럼 말이다 보고 보라, 이 정원을 맡아보고 맡아보라, 이 오렌지 꽃향기를 이렇게도 오묘한 향기는 마음속에 파고드는데 그래 너는 “난 떠나요, 안녕!”이라고 말하는구나 너는 멀어져 가누나, 이 마음으로부터 사랑의 땅으로부터 그래, 돌아오지 않을 마음이란 말인가 그렇지만 날 두고 떠나진 말아다오 내게 이런 고통은 주지 말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나를 살게 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