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롱불 밑에서...
보랏빛 꽃구름(紫雲英)
반딧불이도 사라지고
주위를 밝히는 건
그나마 별빛이나 밝은 달빛 뿐
희미한 등잔불 밑에서
우리들은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하고
어머니는 바느질에 여념이 없으셨고
아버지는 새끼줄을 꼬았다.
소주 됫병짜리로 석유를 사오면
아끼고 또 아껴가며 썼다.
늦게 까지 책이라도 읽을라치면
불 빨리 끄라고 성화셨고
어쩔땐 잠버릇이 심해
등잔불을 발로 차서 쏟기도 했다
조금 어둡다싶으면 심지를 올리곤 했는데
그런날 아침 세수할 땐
코가 연탄가루에 버물린 것처럼 까맸다.
등잔보다 크고 밝기도
등잔불의 3배나 되는 남포등이 있었다.
남포등은 어른 주먹만한 통에 석유를 붓고
불을 붙여 유리로 만든 등피를 끼운다.
방안을 환히 밝히던 남포등은
불빛이 밝은 대신 석유 소비가 만만치 않아
우리집은 명절이나 집안에
큰 행사가 있는 날 켤 뿐이었다.
그러다가 전기가 들어온 것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집안을 환히 밝혀주던 그 눈부심이라니!
그날 밤, 안방ㆍ부엌ㆍ마당이
온통 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 신비함은 뭐랄까,
나를 한없이 놀라게 하였다.
도저히 잊혀지지 않은 기억이다
하지만 요즘의 아이들은 상상이나 할까?
낮보다 더 환한 밤이 사시사철 사그라들 줄 모르고
그로인해 별이나 달의 존재함도 모르고 있으니.......
찬바람이 불면 창호에 어린 달빛이며
등잔불이 마냥 그리워진다.
가느다랗게 떨리는 등잔불 밑에서
동화책을 읽던 어린 시절이 갈마드는 이즈음이다.
눈부신 전깃불의 한 모퉁이에서
등잔불을 켤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찾아야 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