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저기 지천으로 피어나는 꽃들이
나를 사로잡던 5월 어느 날
꽃향기 나는 벤치에 앉아 이 책을 보기로 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빌렸지만
"바빴다...." 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드라마 볼 시간은 있었고
인터넷으로 시덥잖은 검색을 할 시간도 있었고
종편 방송을 보며 정치와 정치인들,
사회지도층의 비리에 분개할 시간도 있었으니까...
5학년 교과서에
이런 공익광고가 있다.
벌레먹은 책 몇권이 쌓여있는 그림과 함께
'우리 나라엔 더 이상 책벌레가 없습니다.'는 문구,
그리고 성인 월평균 독서량이 0.8권이라는 통계도 보여준다.
그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옛날 책벌레였어...."
라고 시작하며 독서의 즐거움을 목이 터져라 강조했지만
지금은? 아니올시다.
책 외엔 별다른 즐거움이 없었던,
그리하여 한 때 책벌레였던 그 아이는
넘쳐나는 책들 속에 갇혀있지만
책장을 넘기지 못하면서 책을 그리워하는
모순에 빠져있다.
그런 나를 질책하며....
아뭏든 6월까지
늘 가까이 '내가 사랑한 책들'이 곁에 있었고
짬짬이 아무곳이나 펼쳐 한 쳅터씩 읽었다.
그렇게 보름 동안 정이 들었다.
정이 들어서 도서관의 연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젊은 시절 나의 멘토였던 법정 스님은
모두 잠든 밤 홀로 깨어
강원도 산골 오두막의 불을 밝히며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셨을 것이다.
"사 - 르- 락 ......."
꽃과 나무들...풀과 동물들도 숨을 죽이며
다음 장 넘어가는 소리를 듣는다.
"사 - 르- 락 ......."
허리를 곧추 세우고
가부좌를 틀고
수행자처럼 정자세로 앉아
책장 넘기시는 스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사랑한 책들'은
법정 스님이 수필에서 언급했던 책들 중
50권을 추려내 문학의 숲 편집부에서 엮어내었는데
면면을 살펴보니 스님의 취향이 곧 나의 취향이기도 했다.
대여섯권은 읽은 책이었고
'반고흐, 영혼의 편지'편에서
법정스님이 네덜란드 암스텔담 고흐박물관에서
해바라기씨를 구입하여
사찰 앞마당에서 키워낸 꽃을 보면 설레였다는
내용의 글을 보니 그림에 열정을 쏟아낸 고흐와
인자하신 스님의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내 가슴도 설레었다.
허균 <숨어 사는 즐거움> 은 꼭 보고싶했다.
책 목록을 기록해 두었다가
내 서가에도 한 권씩 늘여가야 겠다는 결심을 하며
아쉬운대로 책을 반납하기로 한다..
-----스님의 곁을 지켰던 책 50권의 목록 -------
새로운 형식의 삶에 대한 실험 _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인간과 땅의 아름다움에 바침 _ 장 피에르와 라셀 카르티에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행복하지 않다는 건가요 _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그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_ 말로 모건 <무탄트 메시지>
포기하는 즐거움을 누리라 _ 이반 일리히 <성장을 멈춰라>
모든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행복 _ 프랑수아 를로르 <꾸뻬 씨의 행복 여행>
자신과 나무와 신을 만나게 해 준 고독 _ 장 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
한 걸음씩 천천히 소박하게 꿀을 모으듯 _ 사티쉬 쿠마르 <끝없는 여정>
행복이 당신 곁을 떠난 이유 _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나무늘보에게서 배워야 할 몇 가지 것들 _ 쓰지 신이치 <슬로 라이프>
기억하라, 이 세상에 있는 신성한 것들을 _ 류시화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신은 인간을 가꾸고, 인간은 농장을 가꾼다 _ 핀드혼 공동체 <핀드혼 농장 이야기>
모든 사람은 베풀 것을 가지고 있다 _ 칼린디 <비노바 바베>
이대로 더 바랄 것이 없는 삶 _ 야마오 산세이 <여기에 사는 즐거움>
나는 걷고 싶다 _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아프더라도 한데 어울려서 _ 윤구병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신에게로 가는 길 춤추며 가라 _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한쪽의 여유는 다른 한쪽의 궁핍을 채울 수 없는가 _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마른 강에 그물을 던지지 마라 _ 장 프랑수아 르벨·마티유 리카르 <승려와 철학자>
당신은 내일로부터 몇 킬로미터인가? _ 이레이그루크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_ 후쿠오카 마사노부 <짚 한 오라기의 혁명>
큰의사 노먼 베쑨 _ 테드 알렌·시드니 고든 <닥터 노먼 베쑨>
풀 한 포기, 나락 한 알, 돌멩이 한 개의 우주 _ 장일순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삶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 _ 아베 피에르 <단순한 기쁨>
두 발에 자연을 담아, 침묵 속에 인간을 담아 _ 존 프란시스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가을매의 눈으로 살아가라 _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생명의 문을 여는 열쇠, 식물의 비밀 _ 피터 톰킨스·크리스토퍼 버드 <식물의 정신세계>
우리 두 사람이 함께 _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축복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_ 레이첼 나오미 레멘 <할아버지의 기도>
인간의 얼굴을 가진 경제 _ E.F.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바람과 모래와 별 그리고 인간 _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_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 _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나무는 자연이 쓰는 시 _ 조안 말루프 <나무를 안아 보았나요>
용서는 가장 큰 수행 _ 달라이 라마·빅터 챈 <용서>
테제베와 단봉낙타 _ 무사 앗사리드 <사막별 여행자>
꽃에게서 들으라 _ 김태정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꽃 백 가지>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_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우리에게 주어진 이 행성은 유한하다 _ 개릿 하딘 <공유지의 비극>
세상을 등져 세상을 사랑하다 _ 허균 <숨어 사는 즐거움>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심장 _ 디완 챤드 아히르 <암베드카르>
바깥의 가난보다 안의 빈곤을 경계하라 _ 엠마뉘엘 수녀 <풍요로운 가난>
내 안에 잠든 부처를 깨우라 _ 와타나베 쇼코 <불타 석가모니>
자연으로 일구어 낸 상상력의 토피아 _ 앨런 와이즈먼 <가비오따쓰>
작은 행성을 위한 식사법 _ 제레미 리프킨 <육식의 종말>
결론을 내렸다, 나를 지배하는 열정에 따라 살기로 _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성장이 멈췄다, 우리 모두 춤을 추자 _ 격월간지 <녹색평론>
내일의 세계를 구하는 것은 바로 당신과 나 _ 제인 구달 <희망의 이유>
내 안의 ‘인류’로부터의 자유 _ 에크하르트 톨레
어디를 펼쳐도 열정이 넘치는 책 _ 다치바나 다카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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