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의 일상/자운영의 흔적

백토로 닦아내는 놋그릇

올레리나J 2009. 10. 13. 16:45

지금 가정에서는 거의 도자기로 구워낸
홈세트 그릇을 사용한다.
예쁘고 멋진 문양의 그릇이 얼마나 많으며
그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이따금 시골에 가면 가볍고 값이 싼 플라스틱
세트도 보곤하지만 그건 아무 가난한 집 살림살이다.

내가 초등학교 때는 지금의 공기보다 배나 크고
무거운 놋그릇이 밥상의 주 그릇이었다.
그땐 물론 세트로 구입한게 아니고
우리집은 돈이 생길 때마다 수저부터 시작하여
밥그릇, 국그릇, 양푼을 차례로 사들였을거다.

놋그릇은 대물림하는 살림살이 가운데 하나였다.
설거지를 하다가 아차 손을 놓치면
바닥에 떨어져 ‘퍽’ 깨져 버리거나
그릇끼리 부딪쳐 이가 나가고 마는
사기나 옹기와는 다른,
금속으로 만든 것이기에 세월의 때가 묻어날수록
더 값지게 여겨지기도 했을 터였다.
그러나 문제는 프르스름한 때가 자주 낀다는데 있다.

향동 가는 길에 하얀 흙,즉 백토라 불리우는
흙더미가 있었다.
하교길에 백토를 파 와서 멍석을 펴 놓고
지푸라기에 묻혀 그릇에 묻은 때를 닦아내면
금새 반짝반짝 새 물건처럼 윤기를 되찾았다.
어찌나 힘을 들여서 자주 닦아야 되는지
소먹이러 다니던 일과 함께
하기 싫은 일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반가운 일이 생겼다.
가볍고 닦지 않아도 되는 스테인레스 그릇의 등장이다.
아마 가지고 있던 놋그릇에 돈을 더 얹어
세트로 장만했으니
예전의 사기그릇이나 옹기 그릇처럼
설겆이하다 깨뜨려서 야단 맞는 일도 없고
반짝반짝 빛이 나면서 가벼웠으니
주방의 대혁명이 시작된 거였다.

내가 시집왔을때 시모는 겨울에는 스테인레스
여름에는 도자기를 꺼내서 사용했다.
스테인레스는 잘 식지 않아 겨울에 좋았고
도자기는 여름에 뜨겁지 않으니
참 지혜로운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조상들의 과학적인 지혜를
편리하다는 그 자체로 발전시키지 못한
우리들이 안타깝다는 생각을
최근에야 하게 되었다.

놋그릇은 웬만한 병원균을
모두 없애는 소독의 효과가 있다는걸 알았다
그 유명한 O-157 균도 놋그릇 앞에선 꼼짝 못 한다니....
그러고 보니 시모는 미나리 씻기 전에
놋수저를 물과 함께 담가 놓곤 하셨다.
이렇게 하면 야채에 붙어 있는 거머리나 벌레가
유기가 뿜어내는 강한 기운 때문에 다 씻겨나갔다.
말하자면 유기는
해충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도구로도 쓰인 셈이다.

어디가면 놋그릇을 다시 살 수 있을까?
다소 불편하더라도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주방의 그릇을 모두 놋그릇으로 바꾸고 싶다.
설마 옛날 머슴밥 그릇처럼 그렇게 크지는 않을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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