紫雲英 in China

자은사 대안탑에서 서유기 삼장법사를 만나다

올레리나J 2011. 1. 26. 17:19

(까칠한 왕기사 아저씨와 35인승 미니 버스
가이드 포함7명이 타기엔 너무 큰?)



섬서도서관의 방대한 유물들을 보고 나서
서유기의 주인공 삼장법사 현장스님을 뵈러 대안탑으로 향했다.







정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락유정이란 이쁜 글씨가 보인다.
즐거움을 얻는 정이 있는 곳이라....내맘대로 해석했는데
불교에서 '중생을 이롭게 하고 안락하게 한다.' 라는 뜻이란다.







삼장법사 현장스님



들어가기 전 기념촬영을 하고 대안탑 앞의 넓은 공원을 산책했다.











가이드가 뷰포인트라 하여 인증샷 날리고...



652년에 세워진 대안탑(大雁塔)
20대의 젊은 승려 현장(玄奘)은 천축국(인도)에 불교유학을 떠났다.
현장이 서역을 거쳐 인도를 다녀온 당 고종의 시대는,
중국 역사의 어느 시기보다 대외교역이 활발한 시기였다.
현장은 천축국에서 귀한 경전과 불상을 서안으로 가져왔는데,
<대자은사>에 탑을 짓고 그 안에 모셨다.
그 탑이 바로 대안탑이다.

7층 높이의 64m에, 탑안의 계단만 284개에 이르는 이 탑은
원래 석회와 흙으로 쌓고 연와를 얹은 인도식 5층 탑이었다.
이후 측천무후에 의해 중국식의 7층 탑으로 증축되었다가,
당나라 때 다시 10층으로 다시 지어졌다.
그러나 수많은 전쟁을 거치면서 상부가 파괴되고,
현재는 7층만 남아 있다.
대안탑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가기 있지만,
기러기에 관한 설화가 유명하다.
현장이 천축국에 가던 길에 사막 한 가운데에서 길을 잃었는데,
기러기가 나타나로 자신을 구해주었다.
현장은 이 기러기가 부처가 현신한 것이라 생각하고,
무사히 돌아와 지은 탑의 이름을 기러기탑,
즉 안탑(雁塔)이라 지었다.




현장이 모셨던 경전과 불상은,
현재 섬서성 역사박물관으로 옮겨졌고
탑은 외부인에게 개방되어 있다.







쌍용이 승천하는 돌계단 조각품.옥으로 만들었단다.



자은사 대웅보전 앞 용의 발톱을 닮았다는 회나무



대웅보전은 앞의 거대한 향로에서 피워대는
거대한 향 때문에 앞에서 보면 뿌옇게 보인다.



경내에는 이런 회나무가 많았다











시대의 천재... 현장

현장은 13세에 출가하여, 이미 여러 불법을 익혔다.
그러나 현장은 번역된 경전과 원본이
여러 군데에서 서로 맞지 않는 것을 깨닫고
이를 풀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중국에서는 이를 해결해줄 스승이 없음을 알고,
천축(인도) 유학을 결심한다.

인도에 도착한 현장은
불교의 여러 성지를 돌아보고,
산스크리트어를 익혀 불경을 공부한다.
당시 인도에서 현장의 명성은 매우 높았다고 한다.
인도의 많은 사람들은 현장에게 중국으로 돌아가지 말고
인도에 계속 머물 것을 권하였으나,
이곳에서 배운 불법을 전하기 위해 16년만에 귀국을 결심한다.

서안으로 돌아온 현장은
황제인 태종의 환대를 받고, 관직을 제안받지만,
현장은 이를 거절하고,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 번역 작업에만 몰두한다.

당시 현장이 가져온 경전은
520상자에 657부의 방대한 분량이었다고 한다.
현장은 그 살아 생전에 이 모든 경전을 다 번역하지는 못하고
73부 1330권만을 번역할 수 있었다.
이때 <서유기>의 토대가 되는 <대당서역기>도 지었다.




경내에 있던 불교 박물관의 천정에 조각되어 조명 장식을 해 놓았던 불화
근래에 조성된 박물관이지만 중국 최고의 조각가들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데...



현장의 목상이다.
그 앞에 금으로 된 사리탑이 있는데,
그 안에는 현장의 사리가 모셔져 있다.
맨 아래에 들어 있는 작은 구슬뭉치 같은 것이 바로 현장의 사리이다.
이 사리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이 곳 대안탑과 대자은사로 찾아온다.



자은사 기둥마다 삼장법사의 여정을 새겨놓은 동판이 있다.



서역의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현장을 도와주었던 기러기와
불경을 모셔오는 현장의 이야기를 새겨놓은 동판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서유기는 실제 이야기인가?

현장은 서역을 거쳐 인도를 다녀오는 험난한 여정을 책으로 남겼다.
총 21권으로 된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는,
현장이 여행중에 거쳐간 서역의 여러 나라들과
인도의 풍습, 전설 등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이 책을 접한 중국 사람들은
신기하고 이색적인 서역의 풍경이 낯설고 신기했고,
서민들의 구전에 의해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서유기>이다.
실제로 손오공과 저팔계가 현장을 수행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요괴들이 이야기에 등장할 만큼,
현장의 여정은 힘들고 위험했다.
당시 중국인들에게
현장의 위대한 여정은 부처가 함께한 비범한 전설로 인식되었고.
딴 세상의 모습과 같은 서역의 풍경은
현장의 이야기를 더 신묘하게 만들면서...
지금의 <서유기>를 탄생시켰다.




































대웅보전 앞의 종







사찰의 다양한 물고기는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탐욕도 없고 걸림도 없는 수행자의 삶과
백년해로 등 인간의 바람을 부처님 전에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단다.



비목어(比目魚)일까?
눈이 하나밖에 없어서 암수컷 두 마리가
나란히 함께해야 헤엄칠 수 있다고 하는.....
비목어는 금슬 좋은 부부를 상징하고
음양의 조화, 금슬 좋은 부부, 다산(多産)을 상징한다.















자은사를 나오며











비석에 무엇이 새겨져 있었을까?
저 여인 몇 분째 계속 저러고 있다
가보고 싶었으나 일행이 보이지 않아 발걸음을 옮긴다.



담쟁이 넝쿨 앞에서 한 아가씨가 사진찍기 놀이를 하고 있다.



여름엔 잎이 무성했을거고 가을엔 예쁘게 물들었을테지...
앙상한 덩쿨만 남긴 겨울의 담쟁이도 분위기 있어 좋다.



대자은사를 나와 문화의 거리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