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오스트리아의 예술의 도시 비엔나 [Wien / Vienna ]|

올레리나J 2010. 8. 21. 09:56
7월 31일(토).
맑은 하늘에 구름 한 두 조각
멧비둘기 울음 소리에 잠이 깨었다
또 새벽 4시다.
커텐을 젖히고 하늘을 쳐다보니 새벽 달이 별 하나와 나란히 떠 있다.



전화기도 없는 뮐러 호텔...가이드가 방을 두드리며 모닝콜...
대대손손 호텔을 운영한다는 뮐러네 집, 젊은 뮐러가 나와 포터맨을 대신한다.



항상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기 때문에 조식 전에 운동 삼아 호텔 주변 산책을 한다.



뜻밖에 우리 집 주차장에 있는 반가운 싼타페를 발견하는 기쁨이라니...



워낙 시골이서인지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고 적막하다..공기도 무지 좋다
호텔이 후지다고 불평할게 아니라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멋진 시골 풍경을 다 보여주는 센스..ㅠㅠㅠ....ㅎㅎㅎ



빵을 거부하는 위장 때문에 먹을게 없어 가져간 누룽지에
볶은 멸치를 반찬으로 하고, 과일 후르츠에 요거트를 섞어 영양 보충을 한다.



8시 반,비엔나로 출발 (그러니까 김포외곽에서 자고 서울 덕수궁으로 가는 거다.)
서울 중심지에선 호텔값이 엄청 비쌀테니까.... 호이리게로 유명한 나라답게 포도밭이...



비엔나는 BC500년에 켈트 족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도시로 1440년 합스부르크 왕가가 들어오면서
정치, 문화, 예술, 과학과 음악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사실상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로 자리매김했다.
1805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가 되었고,
세계 2차 대전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 소련의 신탁통치를 받으며 수도로써의 기능을
독일 베를린에 넘겨주었다가 1954년 독립하면서 다시 수도가 되었다.
베토벤과 모차르트 등 유명한 음악가들을 배출한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훌륭한 고딕 양식의 건축물로 꼽히는 슈테판 성당과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궁으로 사용되었던 쉔부른 궁전 등이 유명하다.
석유 수출국 기구(OPEC)와 유럽 안보 협력 기구(OSZE), 국제 원자력 기구(IAEA)등과 같은
중요한 국제 기구들의 본부가 이곳에 위치한다. ( 쉔부른 궁전 앞 )



정문은 아름답게 주조된 철책으로 되어 있다.
정문의 양쪽 날개에는 오벨리스크와 같은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이 조형물의 꼭대기에는 당장이라도 비상할 것 같은 독수리가 한 마리씩 앉아 있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갔다. 넓다 못해 광활하다.
쉔브룬의 특징은 무어라고 해도 건물의 색감이다.
은은한 노란색 계통의 색깔. 이 색깔을 ‘쉔브룬 옐로우’ 라고 부른다.
쉔브룬 옐로우를 사용하기 시작한 황제는 일벌레로 유명한 프란츠 요셉이다.
이후 전국의 관공서 건물들은 예외 없이 모두 노란색으로 칠했다.
노랑은 ‘궁정 색’이었다.
쉔브룬 궁전의 전체적인 색감은 노란색이지만 내부의 벽은 원래 핑크색이며
기둥들은 연녹색이다.



이 궁전은 합스브르크 왕조의 레오폴트 1세가 당시 경쟁 상대였던
프랑스의 부르봉가의 베르사이유 궁을 모방하여 3배 크기로 설계하였으나
재정 적자로 인해 대폭 축소하여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1743년부터 시작하여 1749년에 완성하였다.



정문에서 본관건물까지의 광장은 명예의 광장이라고 부른다.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수많은 마차들의 파킹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안채 뜰을 이렇게 넓게 만들었다고.



가까이서...



궁전안에 들어가 우선 화장실부터 다녀왔다. 담쟁이 넝쿨...



알고 보니 벽지였다.카메라를 다시 가져가서 찍어올 만큼
화장실이 아니라 초록색에 입체감이 있어 완전 력셔리하게 느껴졌다.



안으로 들어가서 헤드셋 착용 후 한국어 자동안내방송을 듣는다.
각 방으로 이동할 때마다 버튼을 누르면 방에 얽힌 상세한 설명이 나온다.
궁전 안에는 총 1,440개의 방이 있다고 하는데 그 중 일부만 개방된다.



궁전 내부는 사진을 찍을 수 없으나 셔터없이 잠시 애교로...



거울의 방에 걸려있는 6세의 어린 모짜르트 모습



마리 앙트와네트는 마리아 테레자 여제의 16번째 막내 공주이다.
14세 때 프랑스 루이 16세와 정략 결혼을 한다.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자 파리의 왕궁으로 연행되어 시민의 감시 아래 생활하다가
'국고를 낭비한 죄'와 '반혁명을 시도하였다는 죄명으로
젊고 아름다운 이 왕비는 루이 16세처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는 얘기는
우리가 다 아는 역사이야기



거울의 방 벽에는 아름다운 거울들이 장식되어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여섯 살의 모차르트가 마리아 테레자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장소가 바로 이 곳
얘기에 따르면 피아노 연주를 마친 모차르트는 마리아 테레자의 무릎 위로 뛰어 올라
이 마음씨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에게 키스를 했다고 한다.
피아노 연주를 마친 모차르트가 걸어나오다가 넘어졌을 때
모차르트보다 한 살 위인 마리 앙뚜아네트 공주가 달려가 일으켜 세워주었으며
이에 모차르트가 ‘이 다음에 나와 결혼해 주세요’라고 청혼했다는...
‘거울의 방’은 주로 마리아 테레자가 새로운 장관들에게 임명장을 주고
충성 서약을 받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푸른색 바탕의 벽에 중국화들이 붙어 있는 ‘푸른 중국의 방’
비엔나를 점령한 나폴레옹이 쉔브룬에 있을 때 지내던 ‘나폴레옹의 방’
나폴레옹의 아들이 마리아 여제의 증손녀와 결혼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마리아 테레자의 집무실이었던 ‘도자기의 방’.
60개의 커다란 메달리온(Medallion)에 담긴
인도-페르시아의 미니어처(세밀화)들이 장식되어있 백만 플로린의 방’
역사 속에서 부침을 거듭한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살아 꿈틀거리는 화려한 방들에 감탄하며...



평범하게 사는 지금의 내가 더 행복할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정원쪽으로 나왔다
여권 가방 몸에 붙이고 다녀야지,햇빛이 강해 양산 챙겨야지
무거운 카메라 챙겨야지..주렁주렁 짐이 많아 어깨가 고생스럽다...



왕궁정원은 약 1.7㎢에 달하는 바로크 양식으로 단장되어 있다.



양쪽에는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한 44개의 대리석상들이 세워져 있어 더욱 운치있는 정원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왕궁 쪽에서 바라본 거대한 정원의 모습. 정원 양쪽에는 산책로와 동물원 등이 위치하고 있다.







앞에 보이는 언덕 꼭대기에는 그리스 양식으로 지은 연회장인 글로리에테가 보인다.



글로리에테는 18세기 중엽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그리스 신전 양식의 전승비
그 앞의 넵튠 분수는 조용히 쉬고 있다.


글로리에테의 상부를 줌인....



석상







빛이 너무 많이 들어가 아주 외롭게 느껴지는 카메라우먼



궁전을 나와 버스를 타고 성당으로 향함







국립 오페라극장 - 1869년 5월 15일 제국 궁정 오페라 극장으로서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로 막을 열었다.



괴테 기념상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출신의 요한 볼프강 괴테는
생전에 비엔나를 방문하여 상당기간 체류한 일이 있다.
괴테는 현재의 오페른링과 부르크링(Burgring)의 마로니에가 우거진 길을 산책하기를 좋아했다.
그렇게 산책하면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과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는 것이 작은 즐거움이었다.
개중에는 지체 높은 왕족이나 귀족들도 있었기 때문에
괴테는 산책을 통하여 이들과도 자연스럽게 교분을 쌓을 수 있었다.
괴테의 기념상을 비엔나 중심가의 중요한 지점에 건립하고
그를 기리는 거리이름까지 붙인 것은 비엔나 사람들의 괴테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었다.



씨티 투어용 탈 것들...



영웅광장(Heldenplatz) 입구



마차 타고 가볼까나, 씨티투어 버스를 탈까, 택시를 탈까?



자전거를 빌려 타고 갈까?



검은 마차를 탈까?



백마를 탈까?



호프부르크 궁(신왕궁) 앞에 펼쳐진 영웅광장
타원형의 호프부르크 궁 정면으로 탁 트이게 펼쳐진 광장이 바로 영웅광장이다.
영웅광장에는 유명한 두 장군의 기마상이 마주 보고 있는데
궁전 바로 앞에 서 있는 기마상은 합스부르크 통치 시절
가장 강력한 군대와 넓은 영토를 소유하게 한 사보이 공국 출신의 오이겐 장군의 동상이며
(부다페스트 부다왕궁에서 보았던 키작고 못생긴 독신남)
바로 맞은편 기마상은 나폴레옹과의 전투를 대승으로 이끈 칼 장군의 동상이다.



자연사 박물관 ...
영국의 유명한 저널지 "Sunday Times"에서 선정한
전세계 10개의 박물관 중 한 곳으로 선택된 이곳은 그 일류급 그룹 중에서 유일한 과학박물관이다.
19세기에 세워진 이 자연사 박물관 건물은 박물관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는 미술관(Museum of Fine Arts)과
쌍둥이 건물로 그 분위기도 흡사하다.
이곳에서는 한편으로 지난 세기의 전통적인 것들에 대한 수집과 전시를 계속하고 있지만
동시에 현대시대의 도전과 발전을 만날 수도 있다.
이러한 노력은 모두 박물관의 관장인 Prof. Bernd Lotsch가 지도하고 있으며,
그가 재직하는 동안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의 수가 지난 5년간 방문한 숫자의 2배에 달한다.
한 사람의 뛰어난 능력이 비엔나 재정에 많은 도움을 준다는 사실.
인재를 잘 키워야 함을 새삼 느끼면서....


유럽 미술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미술사 박물관

합스부르크 왕가의 방대한 수집품, 특히 7000여점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유럽굴지의 예술관으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미술 수집의 고향이다.
첼리니의 유명한 황금의 소금창고가 여기에 있고,
이집트의 묘실과 고대 예술의 훌륭한 수집품들이 있다.
국왕 Franz Joseph의 제국광장 (Kaiserforum) 건설을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1827년 자연사 박물관과 함께 건립되었다.
1층의 회화 갤러리에는 브뤼겔과 베르머의 주요 작품들을 비롯해
렘브란트, 루벤스, 뒤러, 벨라스케스 등 수많은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브뤼겔의 방으로 '바벨탑', '농부의 결혼식', '눈 속의 사냥꾼'등이 있다.
2층에는 16,17C의 플랑드르와 독일·이탈리아의 작품들이 많다.
과거 합스부르가의 세력이 얼마나 막강했는지 짐작이 간다.



박물관의 소장품들은 결국 약탈문화의 소산이려니....
전쟁은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하고 나라는 강해야 한다.



박물관위의 석상



박물관 앞에서 삼총사 단체사진 왼쪽 끝이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동상



자연사박물관과 미술사박물관 사이 한가운데 마리아 테레지아 동상
동상 아래 4개의 기마상은 그녀에게 충성을 맹세한 장관들이고,
다른 것은 그녀의 주치의를 비롯한 귀족들.



비엔나에서 제일 아쉬웠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화가 클림의 작품을 못보고 온 것이다.
이 근처 벨베데레 궁전에 클림트의 '키스'가 걸려있다.
클림트 전기를 읽을 때 내가 꼭 가서 황홀경에 빠져있는
두 연인의 모습을 직접 보리라 궁전 이름까지 외워두었는데....
우리 나라에서 작년엔가 클림트 전시회를 했는데 키스는 오지않았다
키스가 오지 않아서 보러가지도 않았다.
그때 듣기로는 비엔나에서 앞으로 키스는 절대로 대여하지 않는다고,
그리하여 보고싶은 사람은 직접 빈으로 오라고....
목전에 두고 돌아서는 아쉬움....


비엔나 로열 오케스트라의 모짜르트와 스트라우스 연주 포스터가 보인다
음악 무지 듣고 싶다.음악의 도시에서 듣는 감동은 어떨까?
음악의 도시에 걸맞은 모짜르트,슈베르트,하이든,쥬페, 요한스트라우스,등
많은 음악가들을 배출하였고, 베에토벤,리스트 등 주변국가 출신의 많은 음악가들이
비엔나에서 음악공부와 활동을 하였으며
지금도 비엔나에서만 하루에 36군데 정도에서 크고 작은 연주회를 하여
영원한 예술의 도시, 음악의 중심도시로 불리운단다.



자전거 전용도로 시설이 잘 되어있다



버스타고 가면서 담은 고대 그리스 신전 양식의 국회의사당 입구



지혜의 여신 아테네가 왼손에는 창, 오른손에는 승리의 신 니케를 들고 있다



1883 년에 완공된 '시청사(Rathaus)' 는
네오 고딕양식의 첨탑이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
첨탑의 높이는 98m 이며 꼭대기 기사상의 높이까지 합하면 무려 104m 에 이른다
버스안에서 본 신시청사



버스안에서 본 성 슈테판 사원



오늘의 하일라이트 슈테판 성당을 보기 위해 열심히 걸어간다.



오토바이 탐하는 남편



건물 사이로 슈테판 성당의 이교도의 탑이 보인다.
전면에 있는 두개의 타워가
마치 이교도 사원의 탑과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걷고 또 걸어서



슈테판 성당이 있는 광장에 도착. 카메라에 다 담을 수 없는 서글픔이여!



슈테판 성당은 12세기 중엽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었으나,
1258년의 화재로 서쪽벽면을 제외한 전체 건물이 없어져 버렸다.
한 세기 반에 걸쳐 네이브가 고딕양식으로 한다.
스테판 성당의 건축은 다양한 양식이 한데 어우러진 성당으로
전면부는 13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높은 뾰족탑과 현란한 스테인드 글라스는 고딕 양식이다.
성가대석 오른쪽에 안치된 프리드리히 3세의 묘는 르네상스 양식,
그리고 이어진 주 제단 등은 바로크 양식으로 되여 있다.



비엔나의 상징이자 혼이라고 불리우는 이 성당은
빈의 역사를 지켜본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성당의 첨탑은 137m로 전 세계에서 3번째로 높다고 한다.
빈의 랜드마크라고나 할까?



이 곳에서 비운의 천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뤄진다.



모짜르트의 유해(遺骸)는 슈테판 성당의 안쪽 십자가 예배당에 안치되었다.
당시 모짜르트의 유해는 다른 네 사람의 유해와 함께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는데
현재까지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빈의 중앙묘지에 서 있는 모차르트의 기념비,
성마르크스 묘지에 있는 작은 모짜르트 비는 진짜가 아니다.



성당 중앙부에 있는 시계가 12시 9분을 가르키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딕 양식의 탑
하느님 가까이 가기 위한 인간들의 몸부림처럼 느껴진다.


꼭대기는 하얗고 아랫부분은 검은색인 이유는 위쪽부터 청소를 해 내려오기 때문



왼쪽은 닦기 전의 모습,오른쪽은 깨끗이 닦은 후의 모습



여러 각도에서 담아본다



슈테판성당 뒤편에서 본 지붕과 남탑(뾰쪽한 게 남탑,둥근 것은 북탑).
지붕의 북쪽면에는 성당을 재건한 연도인 1950년이 적혀 있으며
오스트리아 공화국의 문장과 비엔나 시의 문장이 그려져 있다.
우리 나라는 6.25로 피를 흘리고 있을 때 이들은 이 멋진 작품을 재건하고 있었다?


북탑은 ‘독수리탑’이라고도 부른다.
아마 그 아래에 ‘독수리 문’이 있기 때문인 듯 싶다.
북탑은 남탑의 장엄함에 비추어 규모면에 있어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원래 북탑은 남탑과 대칭하여 세우려 했다.



남탑은 비엔나의 상징이다.
그보다도 슈테판성당의 남탑은 영광스런 과거를
회상케 해주는 일종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주는 대상이다.
비엔나 사람이라면 비엔나에서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인 이 남탑에 대하여 마음이 약하단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첫 눈에 들어오는 장엄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주제단 천정쪽에 설치된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이 부신다.



주제단은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대오르간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이다.
이 좌대는 거장 안톤 필그림이 평소 사용하던 자(尺)와 콤파스를 들고 있는 자화상이 조각되어 있다.
오르간 좌대는 예술적으로 보아 일종의 도전적인 작품이다.
원래는 필그림의 자화상을 조각하여 넣지 않는 것으로 설계했다.
그 대신 매우 섬세하고 아름답도록 조각하도록 설계했다.
그러나 동료 석공들은 좌대가 너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어서
거대한 오르간을 떠 받치기 힘들다는 주장을 하며 필그림에게 조소를 보냈다.
화가난 필그림은 ‘주춧돌이 못한다면 내가 하겠다’고 대꾸하고 자기 얼굴 모습을 조각해 넣었다.
과연 필그림의 얼굴이 조각된 좌대는 전체 오르간을 어깨에 메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대오르간의 파이프



이 부조는 가장 위대한 고딕 예술의 하나인 강론대이다.
거장 안톤 필그림(Anton Pilgrim)이 제작한 것으로 후기 고딕 조각의 전형이다.



성당내부는 커다란 돌기둥이 지붕을 떠받들고 있다.
돌기둥마다 각종 조각들이 설치돼있고 돌기둥 하나 하나가 작은 예배당처럼 꾸며져 있다.



돌기둥마다 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인물들을 조각해놓았다.
조각들은 유럽 여느 성당에서 본 것보다 촘촘히 그림처럼 꾸며져 있다.



인증샷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마차투어용 마차들...
자유시간은 짧게 주고 근처에 있는 한국인 운영 면세점에 데려간다
서유럽 여행시 들렸던 인스부르크의 스와르부스키 매장에서 그 무섭던 가격이 생각난다.
오스트리아는 스와르부스키로 유명하다.
난 내가 좋아하는 클림트의 작품으로 만든 작은 우산하나와 가방을 사고 나왔더니
남편은 벌써 거리 투어에 나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혼자서 다시 나갔다.



특이한 복장 때문에 관광객들의 시선을 온 몸에 받으며 구름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슈테판 성당을 담는다



현지 가이드를 처음 만났을 때 한국은 35도 여기 현재 기온은 25도라고 했다
피서를 온 것처럼 여행내내 선선했다



슈테판 광장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비엔나에서 가장 화려하고 번화한 거리인 케른트너 거리를 활보한다.
멋지게 튜닝된 자동차 앞에서...


고급 선물 용품점, 부티크, 악세서리점, 레스토랑, 카페가 늘어서 있다. 반대쪽으로 링 거리와 교차하는 모퉁이에 국립 오페라 하우스가 있다.



명품 시계











호텔 아님 주택 같은데 곳곳에 석상들을 올려놓았다



슈테판 성당의 뾰족한 남탑이 어디서든 보인다.



혼자 돌아다녀도 두렵지 않다.랜드마크인 슈테판 성당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 명동인 셈이다.
남편을 찾아 이리저리 이 골목 저 골목을 쏘다니다
멀리서 담배피고 있는 남편을 찾았다.



씩씩하게...



아디다스 매장도 들러본다.원색의 색감이 화려하다.



호박가게..내 왼쪽손 엄지앞 목걸이, 갖고 싶더만 가격이 장난이 아님...



















다채로운 색채와 곡선이 인상적인 유명 건축가 훈데르트바서의 건축물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이상적인 주거건물을 지어보자는 빈 시당국의 건의로,
미술가·건축가이자 생태주의자인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1928~2000)가 1985년 10월 건설한 시영주택이다.
훈데르트바서는 삭막하고 특징이나 국적 없는 현대주택을 지양하고,
현대인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주거건축물을 목표로 하여
과거 왕이 살던 위엄 있는 왕궁과 같은 대중의 집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가 지은 건물은 강렬한 색채와 서로 다른 모양의 창틀, 둥근 탑, 곡선으로 이루어진 복도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그의 주택 지붕은 그의 주장대로 수백가지의 나무와 식물로 뒤덮여있다.
마치 스페인 가우디의 작품 까사밀라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비엔나 전차



한,일식 식당에서



오랜만에 본 밥이여!!!



점심 후 오후 2시에 비엔나를 출발 슬로베니아로 향한다.



휴게소에서 눈부신 태양아래 초록의 색감이 너무 좋아서 한 컷!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를 달리는데 바깥풍경이 바로 손에 잡힐 듯 다가와서
카메라를 아예 창문 쪽에 들이대고 있다.


파란 하늘과 너무도 조화로운 검빨강 지붕의 집들...



발코니에 내어 놓은 화분은 모두 제라늄이었으나 주인의 취향에 따라 집 색깔이 다르다



비엔나 숲속의 그림 같은 집



언덕위의 교회



요금 내는 곳...유럽와서 처음 보네



강도 지나고



언덕 위의 주황색 집을 마지막으로 국민소득 4만블의 나라 오스트리아를 떠난다.



입국심사가 제일 까다로웠던 슬로베니아,
다른나라는 한 번도 내린 적이 없었는데 40여분 정도를 기다려 통과했다



국경 모습



애완 동물 가게인가 보다.



슬로베니아를 거쳐 크로아티아에 도착..오늘도 하루에 세 나라를 밟았다



자연은 싱그럽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를 목전에 두고 조그마한 시골 마을 바라즈단에 7시에 도착
5시간여를 버스투어 한 셈이다.
바라즈단의 호텔은 그나마 괜찮은 편..집 떠나 처음으로 만난 욕조를 다들 반가워했다



저녁은 닭고기 육수에 국수를 넣은 스프



맥주에 샐러드



닭발,돼지고기수육 한 점.감자,야채 등 제일 맛있는 호텔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