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의 일상/자운영의 앨범

전철타고 휙~ 다녀오는 운길산 수종사

올레리나J 2010. 2. 19. 20:31
지난해 겨울엔 유난히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교실에서 첫눈이 내릴 때 아이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유리창에 달라붙어 노래를 부르더니
개학해서 눈이 몇번 왔는데 애들이 시큰둥해서
"애들아 눈 온다!"
ㅋㅋㅋ
나 혼자만 유리창가에 서 있었습니다.
"이제 눈 지겨워요."
그렇지.무엇이든지 귀해야 대접을 받지
그렇게 쏟아부어대더니 애물단지 취급을 받지.
도심에서는 눈이 지겨울지 몰라도
눈 쌓인 산은 얼마나 아름답던가?
2월 17일 저녁 뉴스에 눈예보가 나온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내린단다.
어쩜 마지막 눈 소식 일지도 몰라
남편한테서 물려받은 묵직한 카메라 성능도 한 번 시험해볼겸
떠나자.
눈이 와도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 전철을 이용하여 가볼만한 곳이 어딜까?
인터넷 검색에 들어갔습니다.
1호선 용산역에서 용문행 중앙선으로 환승하여 운길산역까지 가서
수종사를 거쳐 정상을 둘러보는 코스로 정했습니다.









운길산 방향 표지판은 참 정겨웠습니다.
이정표마다 싯귀절이 새겨져 있어
시 한수 낭송하며 한숨 돌리고 그 의미를 되새기며 다시 올라갈수 있어
한결 여유롭습니다.









마을을 휘돌아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되었습니다.
바라던대로 많은 눈이 쌓이지 않아
약간 실망했지만 수종이 주로 소나무여서
독야청청... 앙상한 나무를 보는것보다 외롭지 않아 좋았습니다









3부 능선쯤에 팔각정이 있습니다.
팔각정에 올라 영랑의 시를 감상하고 있자니
진사들이 좋아한다는 양수리 두물머리도 눈에 들어옵니다.
끝없이 흐르는 강물 위에 사알짝 눈이 내려 앉아 있습니다.















드디어 수종사 입구에 왔나봅니다.
거의 운길산 정상에 있는 듯합니다.
입구를 지나고도 한참을 걸어서야
유서깊은 고찰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수종사에서 내려다본 양수리











수종사 경내입니다.
절 자체는 아담하고 고즈녁했으나
아래로 펼쳐지는 전망이 장관이었습니다.





















수령 500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가 해탈문 바로 앞에 웅장하게 서 있습니다.













운길산 정상까지 가보려고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까마득한 계단이...비탈의 각도가....... 왼쪽 무릎 통증과 더불어
가지 못하게 잡았습니다.
정상을 코앞에 두고 내려와야했지만
내려오는 길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정상을 밟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가까운 지름길을 놔두고
멀리 돌아내려오는 길을 택했는데
눈이 다 녹아 질퍽거렸습니다.
아이젠을 벗자니 군데군데 얼어있는 음지길이 무서워
신고 계속 내려왔더니 낙엽에, 흙에, 신발이 한짐입니다.





마을에 내려왔더니
오전에 쌓였던 눈은 온데간데 없고
따스한 봄기운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살얼음 밑으로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고 있더군요.









나의 심정이었습니다.

산 벚꽃 흐드러진
저 산에 들어가 꼭꼭 숨어
한 살림 차려 미치게 살다가
푸르름 다 가고 반 삭정이 되면
하얀 눈 되어
그 산 위에 흩날리고 싶었네....



나는 이렇게 겨울을 보내고 왔습니다.
봄을 보고 왔습니다.
묵직한 카메라는 귀찮아 자동모드로 찍었으니
카메라 성능 비교도 할 수 없었고
그날 저녁 반 송장이 되어 다음날 오전까지
일어나지 못하고 심한 몸살을 했습니다.
나이도 꺾어지고
겨울과 봄이 공존하는 이 계절이
참으로 힘이 드네요.
반 삭정이가 된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