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추위가
내 살속을 후빌 때면
그 추위를 녹여주던
한 그릇의 팥죽이 생각난다
중학교 교문앞에 몇 집이
우리들을 상대로
팥죽을 팔았다
진도의 매서운 바닷바람이
겨울엔 칼바람이 되어
교문에서 왁자한 우리들의 발목을
팥죽집으로 인도하였다
팥죽이랬자 멀건 팥국물에
칼국수를 넣은 것 뿐이었는데도
어쩜 그리도 맛있었는지
대학 다닐때 눈오던 날
포장마차에서 닭발에
소주 걸치고 나올 때처럼
추위를 녹여 주었고
출출하던 배를 포만감으로
채워주었으니 오산으로 내려가는
저수지 위에서 몰아치던
추위쯤 문제 없었고
배들이, 지막리를 거쳐
인적도 드문
지막리에서 벌포까지 그 먼 길
벌포 바닷바람도 능히 막아 주었던
얼마였는지 기억에 없지만
내 어찌 그 맛과
그 행복했음을 잊으리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팥죽을 좋아하여
수시로 팥죽집을 드나들지만
어찌 그때의 맛에 비교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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