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의 일상/자운영의 교단일기

너는 참 바보다./신형건

올레리나J 2013. 1. 22. 21:10

씹던 껌을 아무 데나 퉤 뱉지 못하고

종이에 싸서 쓰레기통으로 달려가는

너는 참 바보다.

개구멍으로 쏙 빠져 나가면 금방인 것을

비잉 돌아 교문으로 다니는

너는 참 바보다.

얼굴에 검댕칠을 한 연탄 장수 아저씨한테

만날 때마다 꾸벅 인사하는

너는 참 바보다.

호랑이 선생님이 전근 가신다고

아무도 흘리지 않는 눈물을 혼자 찔금거리는

너는 참 바보다.

 

바보라고 불러도 화내지 않고

씨익 웃어 버리고 마는 너는

정말 정말 바보다.

그럼 난 뭐냐?

그런 네가 좋아서 그림자처럼

네 뒤를 졸졸 따라디니는

나는?

 

그까짓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민들레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한참 바라보는

너는 참 바보다.

내가 아무리 거짓으로 허품을 떨어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머리를 끄덕여 주는

너는 참 바보다.

바보라고 불러도 화내지 않고

씨익 웃어 버리고 마는 너는

정말 정말 바보다.

그럼 난 뭐냐?

그런 네가 좋아서 그림자처럼

네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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