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새벽 1시에 집을 떠나 5시 30분에 주산지에 도착.
.주차장에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가득이다. 해가 뜨려면 1시간여 기다려야 했다.
카니발 앞좌석에 다리를 구겨 넣고 새우잠을 자는데
갑자기 붉다란 큰 산이 앞을 턱 막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눈을 떠보니 날이 밝아오고 있다.
다른 일행 (남편 직장 동료들)은 깨우지 않고 살짝 남편만 깨워 나가려는데 이슬비가 내린다.
오늘의 목적지는 주산지와 주왕산인데..곧 그치겠지...
주차장에서 오솔길을 30여분 걸어서 도착한 곳.. 사진 작가들의 단골 메뉴가 되어버린 주산지..
가뭄에 고사목의 뿌리까지 드러나 있다.사진으로 보던 운치와는 느낌이 다르다.
하지만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에 젖어드는 주산지 풍광에 피곤은 온데간데 없다
주변의 산과 작은 호수 그리고 고사목의 만남..왠지 화려함보다 처연함이 느껴진다
가을비 내리는 산중은 그 자체로도 운치있으렷다...
비가 개일줄 알았는데 빗줄기가 더 세어졌다.사진의 하얀 물방울이 빗방울이다
주왕산행은 내년으로 미루고 굽이굽이 산굽이를 돌고돌아 영덕으로 나왔다
비안개 머금은 만추의 빛이 완연한 도로 주변의 산은 한적하였고 일행의 입에서 와!라는 탄성이 그치질 않는다
가다~~~~서다 만나는 산줄기마다 오색의 향연!!!!
동해 앞바다의 가자미들이 영덕 시장에서 물기를 털고 있다
영덕게로 아침을 먹고
어찌나 맛있게 먹었는지 게 다리 끝부분까지 쪽쪽 빨아먹는다.
영주 부석사 가는 길에 뜻하지 않게 조지훈님의 생가가 있는 영양 주실마을 간판을 보고 이건 나를 위한 여행이다라는 생각이 들다.
경북 일월산 자락에 있는 영양은 문인이 많이 태어난 ‘문향의 고장’이다.
청록파 시인의 한 사람인 조지훈, 순수시인 오일도, 소설가 이문열 등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문학을 사랑하는 여행객들의 방문이 잦다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 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로 시작하는 지훈님의 시 봉황수는 몰락한 왕조의 고궁을 소재로 하여 나라 잃은 울분과 수심을 표현한 시란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라.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들어서다.
귀에 익숙한 주옥같은 그의 시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숱하게 외웠던 그 유명한 승무를 조각으로 만나다
뒷동산에 올라 떨어지는 꽃잎을 보며 낙화의 시상을 떠올렸고
밤엔 귀촉도 울음소리에 잠 못 들며 승무를 써 내려갔을 그의 숨결을 느끼며 나도 절로 시인이 된 듯하더이다.
다시 부석사로 가는 길..길가 어디에서든지 쉽게 볼 수 있는 사과밭에 눈을 빼앗기다1
한 입 베어무니 꿀이 좔좔 흐른다..노동력이 없어 수확적기 인데도 따지 못하고 있단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는 죽령터널을 지나고 풍기I.C로 나와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달려 부석사를 향한다.
당간지주...부석사에서 이 돌만큼 온전히 천년의 나이를 먹은 유물이 어디 있을까?
어느 이름모를 석공의 손에 깨어지고 다듬어진 처음 모습 그대로
천년의 세월을 묵묵히 품어 안으며 변함없이 한자리에 서 있었겠지.
처음부터 그 흔한 장식하나 걸치지 않고 태어났기에 닳아 없어져 아파할 것 없고 애초부터 둘이 하나로 태어났기에 외롭지도 않았겠지.
그리고 바람에 휘청거릴 쇠장대를 숙명처럼 꼭 붙잡고 서 있었겠지.
범종루의 목어와 법고..부석사는 단청이 화려한 다른 절과는 달리 처마와 기둥, 문살 어디에도 단청의 빛이 없거나 아주 희미한데..
유독 이 목어와 북만이 오색 단청으로 화려한 채색을 입고 있다.
목어는 천년을 살았고 난 단지 하루 아니 몇 시간 머물었을 뿐
여의주를 물고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눈을 부라리지만 난 세속에 찌들어 그를 보지 못하네
몇년 전 최순우님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읽고 그 감동에 몸을 떨었었다.
그 분의 부석사에 관한 느낌을 인용해보면...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히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번이고 자문자답했다..중략
사회시간에 달달 외웠던 우리나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부석사 무량수전...그 곳에 내가 서 있다..안양루를 지나 극락으로 들어가련다 .
건축 전문가들이 우리나라 절 중에서 가장 빼어난 경관과 주변 경치를 가진 곳이 바로 부석사 라고 했다던가.
신라때 창건하여 고려 우왕2년(1376)년에 다시 지어진 이 전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중의 하나이고 주불인 아미타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국보 제18호이다
무량수전 앞에서는 차라리 침묵하자. 그 아름다움을 애써 표현하기에는 어떤 수식어도, 어떤 미사여구도 한낱 언어유희에 지나지 않으리...
배흘림 기둥의 높이와 굵기의 비례..또 전문적이 건축용어를 말하지 않아도 무량수전은 눈이 시리도록 감동적이다
부석사의 부석(浮石)은 우리말로 '뜬 돌'이다.돌이 실제로 떠 있을 수는 없어 자세히 보니 아래 돌과 틈이 벌어져 있다.
신라의 의상대사를 사랑했던 중국의 선묘의 아가페적 사랑이 바위를 들어올려 잡귀를 물리치고 부석사를 짓게 했을까?
부석사는 아래부터 차근차근 걸어 올라가면 하나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신비로운 그 모습을 한꺼번에 보여주지 않는다.
산자락 경사를 최대한 이용하여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양파껍질 벗 듯 하나씩 베일을 벗는다.
해탈의 경지가 결코 쉽지 않다는 뜻일까?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 , 천왕문을 지나 안양루, 안양루를 지나 무랑수전... 그 뒤의 조사당과 자인당 ..올려다보며 하나씩 통과한다.
저 먼 봉우리들이 자꾸만 아득해 지는 걸 보니 저녁이 오려나 보다.
조금 더 있으면 굽이굽이 넘실대는 저 봉우리 너머로 해가 지고 노을이 온 천지를 물들이겠지...
저녁 예불을 알리는 목어소리, 법고소리... 그리고 고즈넉한 산사에서 하룻밤 ....이 언젠가 다시 올까?
가녀린 석등 창살에 어둠이 내리고... 안양루 추녀끝에 걸린 붉은 해... 천년 동안 다져진 부석사의 앞마당을 거닐 그 언젠가...
사과꽃향기 그윽한 녹음 짙은 한여름에라도...다시 오고픈...
무량수전의 감동으로 인해 내 마음이 이처럼 붉다.
다시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에 서서 담담하고 평온한 맘으로 소백의 영봉들을 바라볼 날이 올까?
인생이 무미건조하고 답답할 때는 발붙이고 있는 곳을 벗어나 볼 일이다.
달아오르는 삶의 열정이 식어 감을 느낄 때는 현실을 뒤로 하고 낮은 곳으로 무조건 탈출을 감행해 볼 일이다.
지루함을 매는 구속에 얽매이기보다 물 흐르 듯 하는 유연함과 일탈의 자유로움을 마음껏 만끽하는 것! 그것이 여행이 아니던가?
여행의 묘미는 불확실성에 있다고 하더니... 비가 오지 않았다면 불편한 왼다리를 이끌고 주왕산 등산 했을거고
그랬다면 지훈 생가와 무량수전은 만나지도 못했을거다.
근처에 소수서원이 있고 예로부터 훌륭한 선비들를 배출해낸 고장답게 선비촌이란 이름으로 음식점과 관광의 터를 닦고 있었다.
선비촌에서 파전에 막걸리 목밥을 먹고 귀경
일요일 내내 잠을 잤다..의상을 사랑한 선묘가 되어 승무를 추는 꿈을 꾸면서...무량수전 베흘림 기둥에 서서 님을 기다리는 꿈을 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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